웹툰 <가담항설> [만화로 본 세상]

2018. 10. 24. 09: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떠도는 소문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문은 그 시대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세상을 부수고 다시 짓는 말들은 거리를 해방구로 삼기도 한다. 비판과 저항의 말이 흐를 공공의 언로가 좁거나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때 거리의 말은 어떠한 힘을 가지게 될까.

웹툰 〈가담항설〉은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물이다. 첫화에서 과거를 보러 떠난 도련님을 위해 기도하던 노비 ‘복아’는 갑자기 바위가 변해 사람의 형상이 된 존재와 조우한다.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정신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이 존재는 어찌된 이유인지 ‘가담항설’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그 말이 그의 이름(항설→한설)이 된다.

랑또 작가의 만화 <가담항설>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가담항설(街談巷說)은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뜻하는 말이다. 소문이란 출처도 근거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거짓이거나 부풀려진 이야기로 취급된다. 그러면서도 소문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안에 그들이 듣고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소문은 그 시대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세상을 부수고 다시 짓는 말들은 거리를 해방구로 삼기도 한다. 비판과 저항의 말이 흐를 공공의 언로가 좁거나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때 거리의 말은 어떠한 힘을 가지게 될까.

거리에 떠도는 소문이 가진 힘

〈가담항설〉의 세계에서 말은 특별한 힘을 가진다. 말은 의지를 담는 그릇이다. 의지를 담은 말을 글로 새겨넣을 수 있게 되면(‘각인’의 능력) 강력한 물리력이나 치유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의지가 담긴 간절한 기도는 돌과 같은 자연물을 사람으로 바꾼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는 ‘천명’이라는 것을 가진다. 한설(항설) 역시 누군가의 기도에서 태어났다. 한설의 천명은 ‘왕에게 내가 아는 것을 전하러 가는 것’이다. 그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왕을 향해 가려고 한다. 그 ‘무엇’은 이 여정을 통해 구체화되어 간다.

복아는 과거를 보러 떠난 도련님이 돌려보내서 마을로 돌아오지만, 마을의 보물인 천동지(소원을 적으면 이루어지는 종이)가 사라지고 마을사람들은 다 몰살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도련님이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복아는 한설과 함께 왕도로 향한다. 이들의 여정에 함께 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천대받던 존재들이다. 백정 ‘정기’, 그리고 여자 장사 ‘홍화’.

이 세계관에서 ‘장사’란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특별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다. 신분이 높은 남자로 태어났다면 무관으로 입신양명할 수 있지만, 서자이거나 여자라면 불행한 길을 걷는다. 홍화는 ‘재수없다’며 어릴 때 남사당패에 팔렸다. 홍화의 정인은 인품이 높고 능력이 출중했으나 왕에게 바른 말을 하다 참수당한다. 정기의 동생들은 천동지를 빼앗으러 온 이들에게 살해당한다. 홍화와 정기는 복수를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니 한설이 전하러 가는 것은 폭정에 신음하는 이들이 토하는 ‘항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에 찬 목소리나 울분에 그치지 않는다. 한설 일행은 길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상처를 통해 배운 사유를 나누거나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나누어준다. 항설이 길에서 배워가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받아들이는 법, 진실을 향한 용기를 내는 법,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과 같은 것들이다. 세상을 바꿀 지혜와 통찰을 담아가는 것이다.

〈가담항설〉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신룡이다. 나라에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자 왕은 날씨를 다루는 힘을 가진 용을 만나 간곡히 부탁했다. 백년을 기도해 사람을 만들고 천년을 기도해 불로불사를 만들어 나라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해주겠다고. 천재지변을 멈추어 달라고. 그러나 용은 날짜를 세는 관리의 실수로 1000일이 되기 하루 전에 깨어난다. 용은 불로불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인간을 위해 완벽한 신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그의 ‘천명’이었기 때문이다.

계절은 조화로이 흐르고 태평성대가 찾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용을 죽일 자객을 보낸다. 애초에 용이 1000일에 하루 못미쳐 깨어난 것은 왕의 계략이었다. 불로불사의 몸이 된 용이 왕가의 권위를 위협할 존재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배신당한 용은 잔혹한 지배자가 되어버린다. ‘신룡’은 그의 뜻을 거스른 자가 있으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마을 전체를 몰살시킨다. 그것은 인간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저항의 가능성을 봉쇄하고자 함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사건의 피해자를 없앨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연대 의지 또한 꺾는 것이다.

신룡은 자신을 해하려 했던 왕의 여러 아들 중 단 한 명만을 남겨 허수아비 왕으로 세운다. 그는 후궁 소생으로 왕위 계승권에서 가장 밀려나 있던 왕자였다. 아비와 형제들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현장에서 ‘살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이였다. 신룡은 그에게 “침묵이 너의 목숨을 지켰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허수아비 왕의 완전한 침묵이 그를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신룡이 저지르는 폭정의 오명을 대신 뒤집어쓴 채 궁 안에서 그림자처럼 머물 뿐이다.

폭력에 맞서는 약자의 언어와 연대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는 “내 침묵은 나를 지켜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신룡은 침묵하게 하고 저항의 연대를 부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약자들의 싸움은 언어와 연대, 그 두 가지 무기를 되찾아오는 데에서 시작된다.

〈가담항설〉에서는 같은 단어를 해석하는 두 가지의 방식이 끊임없이 나온다. 침묵을 깬다는 것은 그저 소리내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자에게 포획된 언어를 해방시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서 존재와 세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로드는 그에 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 진심을 이야기할 때마다, 지금도 여전히 찾고 있는 그 진실들을 이야기하려 할 때마다 나는 다른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차이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우리가 믿는 세상에 맞는 언어는 무엇일까 탐색해볼 수 있었지요. 이 여성들 모두의 배려와 보살핌 덕분에 나는 내 삶의 본질들을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복아의 도련님 ‘영명’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는 조건(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하지 않겠음)에 놓여 있으나 과거를 보러 왕도로 간다. 영명은 복아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약점은 오로지 완벽한 불행일 뿐일까? 약한 건 악한 거니?”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나의 약점은, 나의 불행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되게 만들지. 그리고 그건 날 강하게 만들어. … 우리가 서로의 약한 순간을 위해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 평생 약해지는 걸 두려워하며 살아야만 해.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으러 가려 해.” 이것이 약자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길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