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미대생들 한글사랑 26년.."팔색조 글꼴에 푹 빠졌죠"

강인선 2018. 10. 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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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인과 '한글꼴연구회'
개성 강한 글씨체부터
감상용 글자까지 '척척'
유명 서체디자이너 산실
작년엔 SNS계정 열어
대기업서 합작 제의도
매해 여름 불가마 속을 방불케 하는 대구광역시. 한글 사랑에 심취한 미대생들은 까맣고 두꺼운 촛농으로 '대구'를 구성하는 자음과 모음을 흐물흐물하게 녹인다. 그렇게 녹아내린 듯한 '대구'라는 두 글자로 무더위를 표현한다. 단어 '한옥마을'은 멀리서 봤을 때 한옥의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의 'ㅏ'에서는 지붕에서 기둥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한옥의 실루엣이 엿보인다. 받침이 없어 비어 보이는 '마' 글자의 아랫부분에는 처마를 연상시키는 빗금이 자리 잡았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의 소모임 '한글꼴연구회' 회원들은 1992년부터 한글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올해 신입생인 27기 회원들의 26년 선배들은 '안상수체'로 유명한 안상수 전 홍익대 교수로부터 '타이포그래피'를 전수받았다. 글자로 하는 예술인 '타이포그래피' 개념을 처음 접한 학생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글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긴팔원숭이의 팔에서 영감을 받아 모음이 길쭉하고 둥근 '긴팔원숭이체' 등 개성 강한 글씨체를 만들거나 '대구' '한옥마을'처럼 '감상하는 글자'를 만드는 '레터링' 작업을 하는 식이다. 한글 사랑 정신에 놀이가 결합되면서 30년 가까이 쏟아져 나온 타이포그래피의 산물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시회에 출품돼 학교 선후배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구회 전통이 길어지면서 안삼열·류양희 서체 디자이너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1992년 창립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소모임 `한글꼴연구회` 27기 학생들이 얼굴과 손가락으로 `ㅎ`을 형상화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글꼴연구회]
신혜원 한글꼴연구회 26기 부회장(20)은 타이포그래피의 재료로서 한글의 매력을 '복잡함'에서 찾았다. 영어는 알파벳 26개를 해당 폰트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에 그친다. 한글을 한 폰트로 완벽하게 구현하려면 3만개 이상의 단어를 해당 폰트에 맞게 디자인해야 한다. 빈출하는 글자만 만들어도 2000개가 넘기 때문에 폰트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문자다. 초성-중성-종성만으로 글자 조합을 구분해 가장 간단하다고 여겨지는 '세벌식' 방식으로도 짧아봐야 6개월, 길게는 3~4년까지 폰트화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글을 애틋하게 여기는 이들의 마음은 다음 질문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한글도 자모를 디자인한 후 조합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각'이라는 글자에서 초성의 기역과 종성의 기역은 모양이 다르다. 받침이 쌍기역이 됐을 경우, '흙'에서의 'ㄺ'과 같이 다른 자음과 함께 받침이 되는 경우의 기역은 다 다르다고 신씨는 잘라 말했다.

한글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활동을 외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연구회는 지난해부터 레터링 작업 결과를 게시하는 SNS 계정도 열었다. 얼마 되지 않은 계정임에도 연구회의 활동을 눈여겨본 브랜드나 스튜디오에서 '합작' 제의도 두 번이나 받았다. 그 결과로 지난 8월에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과 협업도 진행했다.

이들에게 한글날이 갖는 의미는 의외로 단순했다. '사람들이 한글에 관심을 가져줘 고마운 날'이 그들의 답이었다. 신씨는 한글날에 맞춰 전시회를 열 생각도 해봤지만 보통 9월에 열리는 여름 전시회와의 시간차가 짧아 2년째 추진하지 못했다며 멋쩍어 하기도 했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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