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에 성공한 게임 '갓 오브 워'

*** 이번 글은 게임 '갓 오브 워'의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를 요합니다.***
[게임의 법칙-95] ◆오딘과 토르가 나오지 않는 북유럽 신화 게임의 의미
우리는 지난 글에서 2018년 상반기 대형 액션 어드벤처 게임 '갓 오브 워'의 구성을 살펴봤다. 북유럽 신화라는 새로운 배경을 단출한 무대와 배경에서 다루지만, 게임은 세밀한 구성을 통해 '미드가르드'를 포함한 아홉 개 세계를 상당한 설득력하에 만들어낸 바 있다. 밀도 높고 짜임새 있는 무대 배경에서 북유럽 신화는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된다.
오리지널 북유럽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 캐릭터는 당연히 오딘과 토르다.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다채롭게 인용되는 이 둘은 북유럽 신화를 정통으로 다룬 '갓 오브 워'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딘의 경우 까마귀를 풀어 주인공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 부자를 계속 감시하는 정도로만 언급되며, 토르 또한 게임 본편에서는 실물로 등장하지 않는 대신 여러 서브 퀘스트 등에서 존재가 언급되는 형태로만 나타난다.
오딘과 토르가 없는 북유럽 신화 이야기는 단지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선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3부작일 것으로 널리 알려진 2018년의 '갓 오브 워' 시리즈의 2, 3부 후속 이야기에서 등장이 어느 정도 예고됐기 때문에 그들의 출연 여부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할 점은 전통적으로 주인공 포지션에서 다뤄졌던 이들 캐릭터가 게임 '갓 오브 워'에서는 상당히 악랄해 보이는 역할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각종 서브 퀘스트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몇몇 퀘스트에서 죽은 뒤, 아직 세계에 남아 있는 망령들은 주인공 일행에게 토르의 만행을 이야기한다. 아무 이유 없이 함대 하나를 전멸시키고, 자신을 숭앙하는 인간들을 때려죽이기도 하는 등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주변에 도움을 주는 신으로서 모습은 게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토르가 농사에 도움을 주어 농민들에게 숭배받던 원전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게임 초반에 튜토리얼 겸으로 등장하는 깡마른 적 캐릭터는 북유럽 신화에서 빛의 신이자 불사의 축복을 받은 발두르인데, 그 또한 신화 속에서 모두에게 칭송받고 사랑받던 느낌이 아니라 광기 가득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게임 시작과 함께 강렬한 액션을 선사하는 주인공으로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선한 신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발두르가 광기에 휩싸여 크레토스와 주먹을 주고받는 배경에는 오딘의 흉계가 자리한다. 라그나로크(신들이 멸망하는 최후의 전쟁)를 막기 위해 거인의 군대가 주둔한다고 알려진 요툰하임에 가는 길을 찾던 오딘은 어머니로부터 불사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세상 모든 것에서부터 얻는 감각을 상실해 실의에 잠긴 발두르에게 축복을 푸는 열쇠가 요툰하임에 있다고 속여 그 열쇠를 알고 있다는 크레토스 일행을 추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 신화에서 선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입장을 드러내던 북유럽 신화의 주요 신들은 한결같이 악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면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에서 신들과 맞서고 대립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는 주인공 일행과 소통하고, 일행의 여정을 도우며 주요 신들과 달리 전혀 난폭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로 자리한다. 주요 신들과 대립하는 로키와 로키의 아들들(요르문간드도 로키의 아들이다)은 요르문간드를 제외하면 이번 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원래 신화에서 괴물로 여겨지며 신들의 적으로만 묘사되던 요르문간드가 선한 모습으로 플레이어에게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뱀의 크기만큼이나 이 게임 이야기에 있어 중요한 시점 하나를 알려준다.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 북유럽 신화: 그들은 왜 괴물로 불렸는가
'갓 오브 워'에서 재해석되는 북유럽 신화는 일종의 되받아쓰기(write-back) 양식을 취한다. 문학에서 탈식민주의적 입장으로 원전을 새롭게 비판적으로 재인식하는 방식으로서 주창된 되받아쓰기, 이를 테면 '로빈슨 크루소'가 가진 서구 제국주의 백인 남성 중심의 시각을 되받아쓰면서 노예로 등장하던 프라이데이 시점을 드러낸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일 것이다. '갓 오브 워'가 문학에서 사용된 의미를 고스란히 차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원작의 관점을 견지할 때 놓칠 수 있었던 많은 지점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갓 오브 워'의 서술 시점은 유의미하다.
예를 들면 요르문간드가 대표적이다. 인간에게 무척이나 혐오스러운 생물인 뱀의 모티프를 가진 채로 괴물로 불리며 라그나로크 때 세계 멸망의 주인공이 되는 요르문간드는 언제나 혐오스러움 그 자체였다. 반면 그와 신화 속에서 끝없이 대립하는 토르는 상대적으로 세계의 수호자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요르문간드는 사실 로키의 세 아들들이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예언 때문에 오딘에 의해 바다에 버려진 존재다. 북구 신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라면 처음 등장하는 요르문간드를 보고 도끼를 다잡으며 전투 준비를 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다정해보일 정도로 평온한 거대 뱀의 얼굴을 보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발두르의 이야기 또한 원전 신화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신화에서 발두르는 동생에 의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고, 이를 슬퍼한 어머니 프리그는 세상 만물에게 모두 발두르를 해치지 않을 것임을 맹세받는다. 그 와중에 전혀 위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겨우살이는 가볍게 넘겼는데 로키의 장난질로 인해 겨우살이로 만든 창을 동생 회드르가 던짐으로써 발두르는 죽는 이야기가 원전 신화다.
하지만 '갓 오브 워'는 그 불사의 축복을 축복이 아닌 저주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바로 발두르 자신의 목소리로부터다. 만물로부터 어떠한 위해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게임은 세상 모든 것과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는 일종의 결계이자 격리로 해석한다. 발두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머니의 과보호로 인해 격리된 자신 때문에 고통받으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처지를 저주로 받아들인다.
두 관점의 차이는 결국 생의 주인인 나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축복은 때로는 저주일 수 있다는, 다분히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가 '갓 오브 워'의 발두르 해석에 크게 작용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요르문간드 이야기와 함께 엮어 보면 게임의 신화 해석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단서를 알 수 있다. 괴물이나 (부모 입장에서의) 자식, 다시 말해 타자로만 자리했던 이들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을 통해 고전적인 신화를 현대적 의미로 꺾은 것이다.
언제나 타자로만 등장하던 신화 속 캐릭터들에 대한 '갓 오브 워'의 재해석은 북유럽 신화 핵심인 라그나로크의 주인공이자 최대 악역인 로키의 정체를 보여주는 마지막 대단원을 통해 현대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고전 신화를 재해석하는 작업에 거대한 방점을 찍는 성과를 거둔다. 북유럽 신화 3부작의 서막인 제1부만 열렸을 뿐이지만 여기서 제시된 이후 이야기가 가질 큰 줄기의 흐름은 이미 그 구성 면에서 북유럽 신화의 현대적 재구성 성공 사례로 게임 '갓 오브 워'를 거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를 쌓아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되받아쓰기는 단지 신화 서사를 재해석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고 한 겹의 이야기에 덧씌워 새로운 공감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플레이어와 일심동체를 이루며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아버지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라는 부자 관계에 얽힌 이야기는 신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엮이면서 보다 독특한 이야기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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