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재평가 필요한 '송편의 가치'
추석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송편이다. 요즘엔 대부분 송편을 사서 차례상에 올리지만 가족이 모여 직접 빚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함께 송편을 빚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시간은 가족 간 정을 돈독히 하는 기회였다. 예쁘게 송편을 빚으면 예쁜 배우자를 만날 수 있고 볼품없게 빚으면 배우자 외모가 볼품없다는 말이 있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는 사람은 예쁜 자식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었다. 이는 송편 모양새를 보기 좋게 빚도록 유도하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송편에 들어가는 소의 종류는 콩, 깨, 밤을 비롯해 팥앙금, 찐 고구마살, 단호박, 다진 대추, 곱게 간 땅콩, 호두, 말린 과일 등 다양하다. 아이들은 깨에 설탕을 섞어 넣은 달달한 송편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송편 반죽에는 지역에 따라 특색 있는 재료가 들어간다. 경상도의 칡송편은 칡가루를, 충청도의 호박송편은 말린 늙은호박가루를 멥쌀반죽에 넣는다. 여러해살이 풀인 띠의 어린 새순을 삘기라 하는데 전라도의 삘기송편은 삘기가루를 멥쌀가루와 섞어 만든다. 강원도의 감자송편은 감자전분만 반죽재료로 사용해 속이 비치도록 빚었다.
송편은 색깔을 조절할 수 있고 웰빙트렌드에 맞춰 건강에 좋은 각종 식재료를 넣을 수도 있다. 도토리가루로 만든 송편은 갈색을 띠며 도토리가 함유한 아콘산은 체내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흡수·배출시켜 준다. 모싯잎가루가 들어가는 모시송편은 짙은 녹색으로 색감이 좋을 뿐더러 식이섬유와 칼슘 등이 풍부하다. 아로니아생즙를 넣어 반죽하면 보라색 송편이 만들어진다. 슈퍼푸드로 불리는 아로니아에 다량 함유된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항암효과가 있으며 심혈관계질환 예방, 피부노화 방지, 안티에이징, 면역력 증가, 안구건조증 개선에도 효능을 나타낸다.
시루를 쓰던 시절에는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깔아 시루 구멍을 덮고 그 위에 송편을 한줄 놓고 다시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또 송편을 놓는 식으로 차곡차곡 쌓았다. 송편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솔잎을 까는 것이지만 향긋한 솔잎 향이 배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 이런 연유로 ‘소나무 송(松)’자에 ‘떡 병(餠)’자인 ‘송병’ 또는 ‘송엽병’이 송편의 원래 이름이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이 저술한 <성호사설>에도 “떡 속에 콩가루 소를 넣고 솔잎으로 쪄서 만드는데 이는 송병이라는 것이다”라고 나온다.현대과학은 솔잎이 위생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솔잎에서 발생하는 살균물질 피톤치드는 세균이 범접하는 것을 막아 오랫동안 부패하지 않게 해준다. 소나무는 숲 속 다른 나무들보다 10배나 강하게 피톤치드를 발산한다.

추석에 먹는 송편을 둥근 보름달이 아닌 반달 모양으로 만드는 까닭은 뭘까.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는 의자왕(재위 641~660년) 말년인 660년 음력 6월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들사슴 같은 개 한마리가 서쪽으로부터 사비하 언덕에 와서 왕궁을 향해 짖더니 잠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모든 개가 노상에 모여 짖거나 울어대다가 얼마 후 흩어졌다. 귀신 하나가 대궐에 들어와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고 크게 외치다가 곧 땅으로 들어갔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했다. 석자가량 파내려 가니 거북이 한마리가 나왔다. 그 등에 ‘백제는 달과 같이 둥글고 신라는 달과 같이 새롭다’라는 글이 있었다. 왕이 무당에게 물으니 ‘둥근 달 같다는 것은 가득 찬 것이니 가득 차면 기울며 초승달처럼 새로운 달은 점점 차게 된다’고 말하니 왕이 노하여 그를 죽여 버렸다. 어떤 자가 말하길 ‘둥근 달 같다는 것은 왕성하다는 것이요, 초승달 같다는 것은 미약한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왕성해지고 신라는 쇠약해진다는 것 아닌가 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기뻐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의자왕은 무당의 해석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당연합군 공격이 임박했을 때도 백제의 국세를 둥근 달로 인식하는 등 신라의 공격에 자신감이 충만해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는 삼국통일을 했다. 신라에서는 달이 점점 커져서 보름달이 되는 반달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으며 신라의 번성을 빌었다. 지금은 크지만 앞으로 기울어질 보름달보다 작더라도 앞으로 커져갈 반달의 모양으로 떡을 만드는 마음가짐은 시대 변화가 빠른 현대에 당장 좋은 것만을 추구하기보다 앞으로 발전해나가는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달 모양 송편에 대한 또 다른 유래로는 달 숭배사상을 갖고 있던 선조들이 달 모양을 본떠서 떡을 빚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송편은 소를 넣고 접기 전에 보름달 모양이었다가 소를 넣어 접으면 반달 모양이 되므로 송편 한개에 달의 발전 과정과 변화를 담았다는 것이다.
송편을 다른 모양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평안도 해안지역에서는 조개가 많이 잡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개 모양으로 만들고 황해도에는 커다란 만두처럼 만들어 손으로 꾹 눌러 손가락 자국을 내는 송편이 있다. 제주도는 둥그렇고 납작한 비행접시 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충청남도 홍성의 국화송편은 국화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전라도의 꽃송편은 송편 윗부분에 꽃잎 모양을 내며 떡 반죽에 호박, 오미자, 검은콩, 마, 연잎 등을 사용해 전통 오방색(황, 적, 흑, 백, 녹)의 송편으로 예쁘게 꾸며낸다.

추석이 아닐 때 송편을 먹은 기록이 의외로 많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귀양살이 할 때 유배지에서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이전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한 <도문대작>에는 봄에 송편을 먹는다고 나온다. 실학자 정약용이 지은 시에도 봄에 송편을 빚는 내용이 나오며 조선중기 문신 신흠은 <상촌고>에 남긴 오언율시에서 송편을 유두절 음식으로 노래했다. 영조시대 문인 이의현은 정월에 떡국, 대보름에 약식, 삼짇날에 송편을 먹는다고 했다.
조선후기 시인 조수삼의 시문집 <추재집>에는 정월대보름(1월15일) 차례 음식으로, <동국세시기>에는 농사철 시작을 기념하는 중화절(2월1일)에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떡으로, 유척기의 <지수재집>에는 삼월삼짇날(3월3일) 시식으로, 이식의 <택당집>에는 사월 초파일(석가탄신일 4월8일) 시식으로, 조선시대 관혼상제 의식을 적은 <사례의>에는 단오(5월5일)와 유두절(6월15일)에 송편을 빚는다는 기록이 나온다.
추석(8월15일)에 송편을 먹은 최초 기록은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 나온다. 추석의 송편은 올해 농사지어 수확한 햅쌀로 빚었다는 의미로 ‘오려송편’이라 불렀다. ‘오려’는 제철보다 일찍 익는 벼를 일컫는 말인 올벼의 옛말이다. 송편이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해방 이후 추석이 휴일로 지정된 이후로 추정된다.
간편식이 확산되는 지금은 송편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어떤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영양이 풍부하면서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맛을 낼 수 있고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다. 서양의 빵이나 과자에 비할 수 없는 훌륭한 간식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58·5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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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재테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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