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치원 대안 '놀이학교'도 깜깜이 운영

김효혜,고민서,이진한 2018. 11.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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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비 속이고 교사 자질 미흡
교습비보다 특활비가 더 많기도
양질 교육 기대 학부모 뒤통수
정부 관리 안되는 사각지대
최근 유치원과 어린이집 대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유아학원인 '놀이학교'에서도 급식비 부풀리기나 교사 경력 속이기 등 상식 밖 행태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설학원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정부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고 제재하기가 쉽지 않아 놀이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8일 매일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국내 반일제 이상 놀이학교는 45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놀이학교는 월 평균 60만~80만원 정도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비해 다소 많은 교습비를 받으면서 학급당 정원을 10명 내외로 줄여 더 나은 교육과 돌봄을 제공할 것이라고 홍보한다. 학부모들 역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하며 놀이학교를 택하지만 열악한 운영 실태를 접하면서 깜짝 놀라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A놀이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정 모씨는 "유명 유기농 업체를 통해 유기농 식재료를 제공받는다고 학부모들에게 공지했으나 해당 업체 측에 문의해보니 식자재 대금을 체납해 재료 공급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양도 매우 적어서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항상 배가 고프다고 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A놀이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다른 학부모들은 퇴직 교사들로부터 "식단표에는 '국내산 돼지고기'를 쓴다고 표기해놓고 수입산을 사용한데다 생선은 통조림 꽁치를 먹여왔다"는 내용을 전해들었다.

교사 자격 요건과 관리가 엉망인 곳도 적지 않았다. 학원이다보니 교사 채용이 전적으로 원장의 재량에 달린 까닭이다. 서울 B놀이학교를 이용하는 학부모 김 모씨는 "유아교육 전공자만 뽑는다고 하더니, 부담임교사가 조선족이었다"며 "담임교사는 어린이집 교사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았고 조선족 부담임교사에게는 최저임금도 안 준다고 해 도대체 교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아찔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놀이학교 교사 월급이 80만~100만원 선에 불과한 곳이 의외로 많았다. 사실상 아르바이트 수준에 불과한 처우다. 그러다보니 교사들도 수시로 바뀐다. A놀이학교는 "아이들의 정서를 보살핀다"며 심리상담 교사까지 두고 있다고 학부모들에게 광고했으나 해당 교사는 그만뒀고, 부원장 역시 3개월에 한 번씩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놀이학교에서 보조교사를 했던 당사자들조차 교사 자격에 의문을 표한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놀이학교 보조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C씨는 "유아교육과 전혀 연관이 없는 대학생들이나 무경험자들도 교사로 근무하는 데 지장이 없다"며 "교사 채용 때 범죄 경력 등도 거의 따지지 않아 지인들에게는 놀이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걸 권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기타경비' 부풀리기 문제도 심각했다. 유아학원들은 크게 기본 교습비와 기타경비(급식비, 차량비, 재료비, 피복비 등), 특별활동비(수행성경비)를 합친 금액을 원비로 받고 있다. 기본 교습비를 제외한 나머지 비용은 단가 책정에 있어 기준선이 없다. 대부분 유아학원은 기본 교습비만큼은 교육당국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이드라인대로 청구한다. 하지만 기타경비와 특별활동비는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노려 적지 않은 학원이 배(기본교습비)보다 배꼽(기타경비·특별활동비)이 더 큰 기형적인 원비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 학원이 따로 요구하는 기타경비나 특별활동비는 적게는 월 30만원에서 많게는 월 1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A놀이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정 모씨는 "교재비로 매달 30만원씩 냈는데 뒤늦게 알아보니 그만큼 교재도 사지 않은 점을 알게 됐다"고 호소했다.

특히 이런 기타경비나 특별활동비는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곳이 대다수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윤 모씨는 "그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내면서 영수증 한 번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우 모씨는 "현금 결제분에 대해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니 갑자기 부가가치세 10%를 더 부르는 걸 보고 속으로 기가 찼다"고 전했다. 학원은 부가가치세 면세 사업자이기 때문에 10% 부가가치세를 추가로 내라고 요구하는 건 불법이다. 환불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3개월치 교습비를 현금으로 선납하길 요구하고, 중간에 그만둬도 돌려주지 않는 식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놀이학교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정부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교육당국은 학원 형태가 다양하고 실태 파악도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서울 강남권에는 놀이학교가 수십 개에 달하는데 서울시교육청이 파악하고 있는 놀이학교는 단 2곳에 불과했다.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는 "영어유치원 등 유아를 대상으로 한 학원은 학원법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유치원처럼 주기적으로 감사를 받지 않는다"며 "주로 해당 학원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면 실태조사에 들어가는 등 지도와 감독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김효혜 기자 / 고민서 기자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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