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브랜드 히스토리] ② 모터스포츠의 역사 '영국·스웨덴·프랑스'

특히 유럽의 자동차회사는 모터스포츠와 역사를 함께한다. 브랜드 역사가 모터스포츠 역사로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았다.
◆재규어
재규어는 영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회사다. 올해로 83주년을 맞았으며 자동차 전문가와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다. 1922년 스왈로우 사이드 카에서 시작, 1935년 회사 명칭을 재규어(Jaguar Cars Limited)로 변경했다.
창립자 윌리엄 라이온스 경의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중 살아있는 생명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동차’라는 철학에 부합하도록 뛰어난 퍼포먼스, 매혹적인 디자인,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를 갖춘 차를 선보인다.
자동차 내구레이스인 르망 24시에서 총 7차례 우승을 기록하며 영국 자동차메이커 중 가장 성공적인 모터스포츠 역사를 자랑하는 재규어는 60년이 넘는 레이싱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세단, 스포츠카, SUV에 걸친 재규어 전 모델은 브랜드 슬로건인 ‘아트 오브 퍼포먼스’를 충실히 반영한다.
최근엔 큰 변화를 준비 중이다. 2012년 선보인 ‘XJ e-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프로토타입’으로부터 시작해 2015년에 제작한 ‘이보크-e 프로젝트’를 지나 전기차 시대를 준비해왔다. 2016년 FIA 포뮬러E 챔피언십에 출전, I-PACE 콘셉트와 I-TYPE 포뮬러 E 경주차 등으로 신기술을 확장했다.

◆랜드로버
랜드로버는 탁월한 전지형 주행성능과 강력한 성능으로 지난 70년간 세계를 누볐다.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어보브 앤 비욘드’(Above and Beyond) 브랜드 슬로건처럼 랜드로버는 지난 수년간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기차를 끌었고, 가파른 댐 벽을 달렸으며, 거대한 과속 방지턱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카보다 빠른 SUV로 가파른 999개의 계단을 달려 산 정상에 올랐다.
1947년 로버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였던 모리스 윌크스는 웨일스 앵글시 모래사장 위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 콘셉트를 스케치했다. 그는 로버의 임원이었던 그의 형, 스펜서에게 혁신적인 디자인을 제안했고 랜드로버를 상징하는 디펜더(Defender)는 이렇게 탄생했다.
1948년 영국의 모리스 윌크스와 스펜서 윌크스가 신개념 자동차인 4륜구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오직 4륜구동차만 만들었다. 강력한 힘과 견고한 차체, 탑승자의 안전을 기본 콤셉트로 어떤 거친 길도 달릴 수 있는 개척자이며 선구자로 꼽힌다.
랜드로버는 ‘럭셔리(Luxury)’, ‘레저(Leisure)’, ‘다목적성(Dual-Purpose)’의 3가지 필라(Pillar)로 구분되는 라인업을 구축했다.

◆볼보자동차
최초의 볼보자동차는 1927년 스웨덴 예테보리 공장에서 처음 출시됐다. 이후 볼보자동차는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며 안전과 혁신기술 면에서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힌다. 기업 및 브랜드 전략은 ‘사람중심의 디자인’이며 이런 전략은 비즈니스, 제품, 기업문화의 바탕이다.
1920년부터 기업활동을 중단한 볼보의 재정 후원 기업 SKF가 1926년 8월에 회사를 다시 가동시켜 볼보자동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SKF는 1915년에 설립, 자동차 베어링을 제조해 판매하던 회사로 기업명이 ‘볼보’(VOLVO)였다.
볼보라는 이름은 SKF의 한 직원이 생각해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언어로도 발음하기 편하고 철자가 틀릴 위험도 적은 데다 회사의 비즈니스 활동을 연상시키는 상징적인 이름이기도 했다.
‘볼보’라는 단어는 ‘굴러간다’는 뜻의 라틴어 ‘Volv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1인칭 단수 형태가 ‘volvo’다.
볼보는 스웨덴 예테보리와 벨기에 겐트에 소재한 주요 생산공장 이외에도 1930년대부터 스웨덴 셰브데(Skovde)에 제조공장을 뒀고 부품은 1969년부터 스웨덴 올로프스트롬(Olofstrom)에서 생산한다. 또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는 조립공장을, 덴마크 코펜하겐과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개발센터를 뒀다. 스웨덴 예테보리, 미국 카마릴로, 중국 상하이에는 디자인센터가 있다.

◆푸조
푸조는 200년 역사를 자랑한다. 브랜드 철학은 스타일(Style), 다이내미즘(Dynamism), 신뢰성(Reliability)의 3가지로 요약되며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스타일과 탄탄한 기술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 자동차산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이다.
1810년 프랑스 벨포르(Belfort)에 가문의 이름을 딴 철강업체 ‘푸조 형제 회사(Peugeot-Frère et Compagnie)’가 설립됐다. 장 피에르 푸조의 두 아들은 낡은 정곡 공장을 주조 공장으로 개조하고 본격적인 철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자손들은 이를 토대로 커피 그라인더, 자전거, 스쿠터, 모터사이클 그리고 자동차로 사업영역을 확장시켜 오늘날 자동차 브랜드 푸조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푸조 형제 회사’의 주요 생산물품은 철제 생활용품이다. 톱, 시계 부품과 시계기구 등 각종 생활 용품을 생산하고 뛰어난 품질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생활용품 제조 브랜드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후추 그라인더는 현재 고급 레스토랑에서 쓰일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그라인딩 기술 특허를 활용해 세계최초로 커피 그라인더도 만들었다.
1897년 설립된 푸조자동차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 국경 지역인 소쇼(Sochaux)에서 푸조 자동차의 역사를 열었다. 소쇼 지역에는 지금도 푸조 박물관을 비롯, 푸조의 생산공장이 있다.
푸조는 독일에서 엔진 개발에 집중하며 모터 구동식 마차를 개발한 고틀립 다임러와 프랑스의 유명 엔지니어 에밀 르바소를 만나 내연기관차 개발을 시작했고 1890년 함께 개발한 최고시속 16km의 4인승 TYPE 2가 공개됐다. 이후 1896년 다임러와의 관계를 끝내고 엔진을 자체개발하기로 하고 이듬해인 1897년 푸조 자동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푸조는 1970년 대 중반부터 시트로엥의 지분을 흡수하며 기업 인수를 추진한다. 1919년 설립된 시트로엥은 당시 반켈 엔진 라이선스 비용 지불 및 반켈 엔진 상용화 등으로 인해 재정 상황에 문제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약 3년에 걸쳐 시트로엥 인수를 진행했고 인수 후에는 크라이슬러의 유럽 부분까지 인수한다.

◆시트로엥
시트로엥은 1919년 앙드레 시트로엥이 설립했다. 1913년 자동차의 기어를 만드는 하청업체로 시작해 유럽최초 대량생산차종인 ‘Type A’를 생산하며 자동차기업으로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앙드레 시트로엥은 두개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 첫째 대중에게 차를 대량 공급하는 방법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조립공정(assembly-line) 뿐이다. 둘째 광고와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차 판매의 승부를 가른다. 이는 시트로엥이 유럽의 다른 자동차 업체보다 시작이 늦은 만큼 자동차제작은 물론 광고와 마케팅분야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르노
르노는 1898년 루이, 마르셀, 페르낭 르노 세 형제에 의해 설립됐다. 루이 르노는 호기심 많은 엔지니어였다. 우연한 계기로 친구들과 내기를 했고, 게임을 위해 소형차라는 뜻을 가진 ‘부아트레’(Vuiturette)를 만들어 가파른 언덕 오르내리기에 성공했다. 이때가 1898년.
1905년부터는 대량생산기술을 확보하고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추진했다.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인 1906년에 버스와 화물차를 생산했다. 사업영역을 탄약과 군용기 엔진제작, 탱크까지 확장했다. 당시 르노는 파리의 한 렌터카 회사와 세단 AG1의 1500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르노 AG1은 1205㏄ 배기량에 2도어 택시와 4도어 세단이 판매됐다.
1903년 마르셀 르노, 1909년 페르난도 르노가 생을 마감하자 루이 르노는 1910년 회사명을 르노자동차로 변경했다.아픔도 있었다. 2차 대전 발발 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은 르노의 최대 생산시설인 빌랑코트 공장에서 탱크를 생산했다. 당시 푸조는 생산을 거절, 생산시설이 폭파됐다.
빌랑코트 공장은 1942년 3월3일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됐고 독일로부터 해방된 이후 르노는 나치의 협력자로 비춰졌다. 루이 르노는 1944년 9월27일 샤를 드골을 만나 르노 공장을 국유화 하기로 했다. 공장을 없애는 것보다 국가에 넘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1947년 르노는 리어 엔진 4CV를 출시, 1961년까지 110만대를 생산하는 등 꾸준히 독자 모델을 생산했다.
이후 1994년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민영화를 결정했다. 당시 르노의 수장을 맡은 인물은 루이스 슈바이처 회장이었고 그는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사장을 영입했다. 그는 르노에 합류해 효율이 떨어지는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방식을 바꾸는 결단을 강행한다. 이와 함께 부품을 표준화하고 신제품을 쏟아냈다. 한편으로는 R&D 구조 개혁을 통해 개발 비용을 줄였다. 카를로스 곤 사장이 비용절감의 귀재로 불린 배경이다.
1999년 3월27일에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2000년에는 한국의 삼성자동차 지분 80%도 인수하며 르노삼성자동차의 역사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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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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