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120년 동안 정통 수제 고집해온 발베니..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향 만드는 위스키의 성지

더프타운(스코틀랜드)/김아진 특파원 2018. 12. 22.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英 발베니 위스키 증류소
발베니 증류소의 위스키 숙성 창고. 총 47개 창고에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위스키부터 최근 것까지 오크통에 담겨 숙성되고 있다. / 발베니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스페이사이드. 세계 5대 위스키 중 하나인 스카치위스키 애호가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위스키 성지(聖地)'로 꼽는 곳이다. 우중충한 겨울 날씨에 영국을 찾는 방문객 중 뜨거운 위스키 한 잔이 생각나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다.

위스키 양조장만 50여 개가 있다. 그중에서도 더프타운이란 작은 마을에 위치한 '발베니'는 정통 수제 방식을 고수하면서 매년 한정 생산하는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다. 1893년 문을 열었다. 120여 년 역사를 자랑하듯 외관에서부터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증류소 어디에서나 향긋하면서도 묵직한 오크향이 코를 찌른다. 증류소 직원들은 이 향을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부른다. 매년 2%씩 자연 증발하는 오크통 안의 술을 천사에게 나눠준다는 뜻이란다.

위스키는 인고(忍苦)의 결정체다. 짧고 강한 목 넘김을 즐기기 위해선 적게는 3년 길게는 5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등의 블렌디드 위스키는 밀, 옥수수 등을 섞어 만들어 마시기 쉬운 데다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친숙하다. 반면 싱글몰트는 물과 보리, 효모만으로 만든 위스키 원액으로 가격도 비싸지만 맛과 향이 강하다. 커피로 따지면 '에스프레소'인 셈이다.

'위스키 성지' 발베니 증류소의 외관. / 김아진 기자

보통 싱글몰트는 몰팅, 당화, 발효, 증류, 숙성, 병입 등 6단계를 거쳐 생산된다. 이 과정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이는지 알고 난 뒤 위스키를 맛보면 맛과 향이 훨씬 깊게 느껴진다.

몰팅 공장에선 껍질을 까지 않은 노란색 보리를 인위적으로 싹 틔운다. 이를 위해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100% 천연수에 보리를 넣어 불린다. 그런 뒤 다시 말리는데, 9명이 한 팀인 장인들이 삽처럼 생긴 도구를 들고 하루에 몇 시간씩 보리를 들었다 놨다 한다. 이 과정이 하도 고돼서 '몽키 숄더(monkey shoulder·원숭이 어깨)'란 말이 생겼다.

완벽한 건조를 위해 한 번 더 석탄을 때서 물기를 쫙 빼주면 바삭바삭한 맥아가 완성된다. 한 움큼 쥐어 입에 넣으면 씹을수록 구수하다. 이 보리는 잘게 부숴 당화공장에서 60~70도로 끓인 물과 합쳐진다. 이후 전나무로 만들어진 발효통으로 옮겨온 보리즙은 효모(당분을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하는 미생물)를 섞어 2~3일의 발효를 거친다. 이때부터 후끈한 맥주 냄새 같은 알코올 향이 진동한다. 맛은 시큼한 식혜 같다. 구리로 만든 10여 개의 단식 증류기가 있는 증류공장에서 소량 증류하면 60~70% 도수의 투명한 위스키 원액이 탄생한다.

오크통을 만드는 쿠퍼리지(cooperage)도 꼭 들러야 한다. 오크통은 위스키 맛의 70%를 결정한다. 어떤 오크통에서 숙성됐느냐에 따라 색과 향이 다르다. 바닐라향, 달콤한 과일향, 구운 아몬드향, 시나몬향 등이다. 발베니의 세컨드네임은 오크통에 따라 더블우드, 캐러비안 캐스크, 포트우드 등으로 달리 불린다. 오크통도 장인 12명이 직접 손으로 만든다. 1주일에 오크통 1000개를 제작한다. 오크통에서 숙성이 끝난 위스키 원액에 물을 첨가해 알코올 도수 40%대의 제품을 만들어 병에 넣으면 비로소 황금빛 발베니를 맛볼 수 있다.

발베니 생산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드(73). 위스키를 만드는 모든 단계를 치밀하게 관리해 발베니 맛과 향을 수십년간 이어온 주인공이다. 발베니 병 라벨에도 스튜어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숙성 햇수를 12·14·15·17·21·30년, 그 이상으로 할지 역시 그가 정한다. 현재 발베니 창고에서 가장 오래된 술은 아직 출시된 적 없는 57년산이다. 1962년 17세였던 스튜어드는 견습생으로 입사해 1974년 몰트 마스터가 됐다. 이제 자신을 이어 발베니를 이끌고 갈 수제자를 키우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서른 살의 여성이라는 것이다. 전통을 중시해온 위스키 발베니로서는 파격이다. 증류소 투어를 마치고 나면 인근 레스토랑에서 스페이사이드의 특산물인 연어나 양고기를 먹으며 싱글몰트 위스키 한잔 곁들여 보시길.

여행 정보

영국 런던에 도착해 히스로·개트윅 공항 등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면 스코틀랜드 에버딘까지 1시간가량 걸린다. 여기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 더 이동해야 한다. 위스키 증류소 투어는 각 브랜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주로 평일 오전, 오후 1~2회 투어를 진행한다. 한꺼번에 10명 안팎까지만 가능하다. 발베니의 경우엔 3시간 정도 증류소 투어 후 12년산부터 30년산까지의 다양한 위스키를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기회가 주어진다. 에버딘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 몇 편밖에 없어서 1박 하는 것을 추천한다. 숙박 시설을 갖춘 증류소에 머무는 것도 방법. 투어 전후에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든버러에 들른다면 위스키 박물관(The Scotch whiskey Experience)에 방문하는 것도 위스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