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살 먹은 자동차로 에펠탑 주위를 도는 체험. 이제 프랑스 파리가 아닌, 대한민국 제주에서도 꿈꿀 수 있다. 지난 12월 5일, 한불모터스가 제주 서귀포에 공식 오픈한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 덕분이다. 개장일에 맞춰 제주를 찾아 직접 시설을 둘러봤다.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은 과거로의 여행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근사하고 황홀했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사진 한불모터스
통념을 깨는 유쾌함, 시트로엥 2CV를 타다

맙소사! 70살 넘은 차가 버튼시동이라니, 뒤통수를 한 대 얹어 맞은 기분이다. 기어봉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괴도 루팡의 지팡이를 쏙 빼닮은 형태로, 밀고 당기며 좌우로 비틀어 4단까지 변속한다. 절반까지 당기면 중립, 바짝 당겨 왼쪽으로 비틀면 1단이다. 다시 오른쪽으로 비틀어 앞으로 쭉 밀면 2단이다. 공간도 최소한만 차지하고, 무엇보다 변속이 즐겁다.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시트로엥 2CV를 직접 몰아봤다. 1948년 데뷔한 소형차인데, 달팽이 닮은 외모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악플’에 시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덕분에 1990년까지 무려 40년 넘게 명맥을 이었다. 알고 보면, 2CV의 디자인은 필요가 낳은 결과다. 시트로엥은 2CV를 개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을 세웠다.

① 개인 운송수단의 새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 ② 농부가 밀짚모자를 쓰고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어야 한다, ③ 달걀을 싣고 시속 60㎞로 달려도 깨지지 않아야 한다, ④ 유지비는 말 한 마리, 마차 한 대보다 저렴해야 한다. 통념을 깨는 유쾌함은 주행감각으로 이어졌다. 너울너울 춤추듯 달리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프랑스 파리가 아닌, 대한민국 제주에서.
제주 서귀포 중문의 새로운 볼거리 등장

제주에 에펠탑이 뾰족이 솟았다. 12월 5일, 제주도 서귀포 중문의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우뚝 선 에펠탑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주위를 상큼한 하늘색 시트로엥 2CV를 몰고 ‘포롱포롱’ 달렸다. 개선문 사진과 조각상 어우러진 풍경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샹송과 더불어 더없이 이채롭다. 제주 속의 작은 프랑스였다.
국내에서 연매출 3조~4조 원 넘는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지었다면 그러려니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PSA 그룹의 현지 투자법인도 아닌, 공식 임포터 한불모터스가 110억 원을 투자해 세웠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PSA 그룹 내 브랜드 박물관이 프랑스 국경 넘어 문을 연 사례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이래저래 의미가 남다른 셈이다.

이번 행사의 시작은 렌터카 체험. 오전 제주 공항에 내린 취재진은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거리의 ‘푸조 시트로엥 렌터카 하우스’로 이동했다. 지난 2015년 8월, 한불모터스는 제주도에서 렌터카 사업에 나섰다. 국내 수입차 업체 중 최초였다. 연간 1,500만 명에 달하는 제주 관광객들이 푸조와 시트로엥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저렴하고 깨끗한 푸조·시트로엥 렌터카
2016년엔 4,958㎡(1,500평) 규모의 렌터카 하우스를 열었다. 어린이 놀이시설까지 갖춘 본관과 정비동, 주차장으로 구성했다. 현재 200여 대를 운영 중이다. 씨트로엥 DS3 카브리오와 그랜드 C4 피카소, 푸조 3008과 5008 등 13차종으로, 컨버터블부터 해치백과 세단, 미니밴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지금까지 누적 대여 수는 1만2,000여 대다.

이런 선입견을 갖기 쉽다. “수입차니까 요금도 비싸겠지.” 그런데 의외로 합리적이다. 이용료는 24시간 기준, 20만~30만 원. 그런데 비수기 85%, 성수기 75% 할인율을 적용한다. 따라서 실제 비용은 훨씬 저렴하다. 또한, 주행거리 5,000㎞ 미만의 신차급만 빌려준다. 냄새 나고 꾀죄죄한 렌터카 때문에 불쾌한 경험했던 ‘깔끔쟁이’들에게 희소식인 셈이다.
이날 난 푸조 5008로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가로질렀다. 누가 푸조 아니랄까봐 안팎 디자인에 특유의 개성이 물씬하다. 공간은 넉넉했고, 디젤 특유의 되알진 토크 덕분에 오르막도 평지처럼 사뿐사뿐 달렸다. 또한, 이 정도 짧은 여정으로 연료게이지 바늘을 끌어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족 단위로 제주의 풍광을 둘러볼 때 환상의 궁합을 뽐내는 짝꿍이었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끝에 완공

한편, 박물관의 에펠탑은 막연한 예상보다 훨씬 더 높았다. 실물의 10분의 1로 줄였는데도 33m나 된다. “업체를 몇 차례나 바꿔가며 힘들게 만들었어요. 탑이 워낙 무겁다 보니, 네 다리는 워낙 단단해 가공조차 쉽지 않은 ‘옥돌’로 떠받쳤어요. 원가가 비싸 우리끼린 ‘억돌’이라고 부릅니다(웃음).” 한불모터스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는 이정근 팀장의 설명이다.
에펠탑 컬러와 관련해 이정근 팀장이 귀띔해준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파리의 에펠탑 컬러 기억나세요? ‘에펠 타워 브라운’이라는 컬러인데, 막상 RGB 코드에 맞춰 조색해서 칠하고 보니 회색에 가까운 거예요. 수천만 원 들여 수입한 도료인데 큰일이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갈색 기운이 돌기 시작하더라고요. 모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죠.”

한불모터스 송승철 대표는 “2년 동안 제주를 100번 넘게 왕복하며 부지를 찾았는데, 결과적으론 공부가 부족했다. 매입한 부지에 상하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해 예상 못한 지출을 했다”고 밝혔다. PSA 그룹에서 올드카를 임대하는 과정도 예정보다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부지를 매입한 지 3년이 지나서야 문을 연 배경이었다.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알리기 위한 투자

에펠탑 뒤로는 박물관 건물이 자리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 구성으로, 연면적(8,264㎡)이 프랑스 소쇼의 푸조 박물관보다도 넓다. 1층엔 푸조와 시트로엥 전시장, 후추 분쇄통부터 다이캐스팅 자동차까지 파는 헤리티지 스토어, 16개의 디스플레이로 시트로엥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트로엥 오리진스’가 있다. 향후 카페도 문을 열 계획이다.
이날 송승철 대표는 한불모터스가 제주도 렌터카와 박물관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이유도 설명했다. “푸조와 시트로엥은 각각 200년, 100년 역사를 자랑해요. 오랜 세월 동안 창의적 발상으로, 자동차사에 큰 획을 그은 성취를 셀 수 없이 남겼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인지도가 낮죠.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인지도 높일 방법을 고민한 결실이에요.”

지하 1층엔 수장고가 자리한다. 주기적인 교체 전시를 위해 대기 중인 올드카를 보관하기 위한 장소다. 바다에서 가깝다 보니, 수장고는 습기와 전쟁 중이다. 강력제습기와 공기청정기를 쉴 새 없이 돌리면서 왕년의 명차들 컨디션을 보존하는데 열심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보완할 점이 나올 때마다 투자를 거듭해야 한다.
물리적·시간적 제약 뛰어넘은 과거 여행


박물관 2층엔 푸조의 200년 역사를 담았다. 푸조의 과거를 장식한 17대 등 총 20여 대를 전시 중이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모델은 타입 139A 토르피도. 1911년형이니 100살을 훌쩍 넘겼다. 복원과 관리를 거쳤지만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직렬 4기통 3,817㏄ 16마력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얹고, 시속 75㎞까지 달렸다.


1930년형 201C 세단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세 자리 숫자로 차체 크기와 세대를 암시하는 푸조 고유 작명법의 시작점이 된 모델이다. 직렬 4기통 1,122㏄ 23마력 엔진과 3단 수동변속기를 짝 지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80㎞였다. 한때 기아자동차가 만든 604도 만날 수 있다. 복도를 거닐다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현재 타고 있는 206CC를 만났기 때문.
애마가 ‘올드 타이머’로 늙어가는 현실이 애잔했고, 한편으론 역사에 방점을 찍은 차종이란 사실에 가슴 뿌듯했다. 투어를 마친 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느덧 앞마당엔 짙은 어둠이 깔렸다. 이제 피날레를 장식할 순간. 일제히 조명을 켜자 에펠탑이 프랑스 국기 색으로 예쁘게 물들었다. 국경과 시간을 뛰어넘은 과거로의 여행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황홀했다.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주서로 532
전화: 064-742-2055
휴일: 설, 추석, 국가지정 공휴일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성인(6,000원)/중고생(4,000원)/초등학생 및 어린이(2,000원)
*푸조 시트로엥 제주렌터카하우스
홈페이지: www.peugeotjeju.com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일장중길 100(도두 1동)
전화: 064-742-2008/064-739-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