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노 팬츠' 유행 1등 공신은 남성미의 상징 스티브 매퀸

남보람 2018. 7. 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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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47] 1. 필리핀에서 돌아온 치노 팬츠

열대 필리핀에서 군복무를 마친 미군 장병들은 치노 팬츠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치노 팬츠를 입고 1940년대 중반의 미국 직장, 더러는 복학한 학교를 누볐다. 신축성 있고 구김성 적으며 튼튼하기도 한 치노 팬츠는 실내와 실외, 학교와 작업장을 막론하고 잘 어울렸으며 유용했다.

1950년대에 치노 팬츠는 '슬랙스(Slacks)'라고 불렸다. '편하게 막 입고 다니는 바지'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하면 '막바지' 정도 될 것 같다. 동네 어른들이 "요즘 애들은 왜 저렇게 '막바지'를 입고 다니죠"라고 말하며 혀를 차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이때까지도 학교에 청바지를 입고 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아무 데나 앉고 뒹구는 남자 아이들에게 입히기에 이 막바지만 한 것이 없었다.

2. 치노 팬츠와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은 치노 팬츠를 유행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해병대에 복무했던 그는 전역 후 배우가 됐고 1950년대 중반부터 남성성 풀풀 풍기는 역으로 필모그래피를 꽉 채우기 시작했다. 매력 넘치는 배역만큼이나 그의 일상도 대중에게는 흠모의 대상이 됐는데, 특히 무신경한 듯 입고 다니던 치노 팬츠는 곧 당대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이 됐다.

영화, 화보, 일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치노 팬츠를 소화한 스티브 맥퀸 /출처=핀터레스트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치노 팬츠를 애용했다고 한다. '격식 따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격식 있는 자리에 늘상 나가야 하는' 유명인사였기 때문이다. 줄 잡아 다린 치노 팬츠 위에 양복을 걸치고 나가면 적어도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는 수근거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치노 팬츠를 입고 있는 아인슈타인 /출처=핀터레스트

그런데 덧붙이자면 아인슈타인이 치노 팬츠를 입은 사진은 찾기 쉽지 않다. 양복 정장이나 울로 된 바지를 입은 사진이 있을 뿐이다. 일상에서 찍었을 법한 인터뷰 사진들은 전부 상반신 컷뿐이어서 그가 어떤 바지를 입었는지 알 수 없다. 왜일까?

국가를 막론하고 학생 장래희망 1순위가 '과학자'였던 당대에 아인슈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세계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패션도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아래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의 패션 감각은 꽝이었다. 학생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할 그가 반바지에 여성용 샌들을 신거나 울 양복바지에 양말 없이 털슬리퍼를 신은 모습을 신문이나 방송에 내보낼 순 없었다. 치노 팬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계 지성의 정상에 있는 인물이 '막바지'로 불리는 치노 팬츠를 입고 강의를 하거나 연구를 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전할 수 있을 만한 시대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의 패션 센스는 좋지 않았다.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재앙에 가까웠다. /출처=위키피디아

3. 무난하고 편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치노 팬츠

치노 팬츠는 어느 자리에나 입고 나가도 무난하다. /출처=http://theessentialman.com/the-essentials-the-chino-pant/

오늘날 남성용 바지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치노 팬츠다. 미국 캐주얼웨어 3대 브랜드인 'Dockers' 'Brooks Brothers' 'Gap'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전부 치노 팬츠가 등장한다. 치노 팬츠가 이처럼 인기 있는 이유는 이 옷이 캐주얼이면서도 정장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만나는 편한 자리에 티셔츠와 함께 입고 나가도 되고, 업무상 회의가 있는 곳에 정장 상의와 함께 입고 나가도 무난하다.

이 '무난함'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 이 중 하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중년'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어디 가서 못났다는 소린 듣지 않을 정도의 인물들. 문화적 취향도 나쁘지 않고 요리도 제법 하지만 특출하지는 않다. 이런 무난한 남자의 상태를 묘사하는 장치 중 하나가 카키색 혹은 네이비 블루의 치노 팬츠다.

그러고 보니 장맛비 내리는 토요일 도심 변두리 커피숍에서 이 원고를 쓰고 있는 나도 옅은 치노 팬츠를 입고 있다.

[남보람 전쟁사 연구자·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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