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 팬심 울리는 아이돌 '대리찍사' 사기

김찬호 기자 2018. 9.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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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고화질 사진 보내 주겠다” SNS로 유혹 후 돈만 챙겨
ㆍ메일·계좌번호 외엔 몰라
ㆍ경찰 신고해도 보상 어려워

“180915 뮤직뱅크 오막포+백사투 데이터 양도, 그룹과 멤버 이름 적어서 디엠 주세요.”

마치 암호 같은 용어로 조합된 이 문장은 이른바 ‘대리찍사’(돈을 받고 아이돌 사진을 대신 촬영해주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광고글이다. ‘180915 뮤직뱅크’는 2018년 9월15일 KBS 2TV 뮤직뱅크 생방송, ‘오막포’는 캐논의 ‘EOS 5D 마크4’ 카메라, ‘백사투’는 캐논의 ‘EF 100-400 F4.5-5.6 L IS USM’ 렌즈의 약칭이자 별명이다. 고속·망원 기능을 갖춘 카메라·렌즈 가격을 합치면 수백만원대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고화질 사진을 가지고 싶은 팬들이 대리찍사를 찾는다. 고가의 카메라를 살 수 없는 청소년 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최근 ‘대리찍사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가 늘고 있다. 양모양(14)은 지난달 18일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서울 콘서트를 한 대리찍사에게 의뢰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계좌번호를 받아 7만원을 입금했다. 공연이 끝날 때쯤 대리찍사로부터 “콘서트 관계자에게 걸려 촬영한 사진을 모두 지웠다”며 “환불해줄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계좌번호를 알려줬지만 2주가 넘도록 환불을 받지 못했다.

양양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는 정보가 계좌번호 하나뿐이고, 10만원 이하 소액이라 대리찍사를 잡아도 돈을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양양은 “고소를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 동의가 필요했다”며 “데이터를 사려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양(18)은 지난달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대만 콘서트를 어느 대리찍사에게 의뢰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찾은 그는 e메일 주소를 계좌번호로 쓰는 페이팔(paypal)로 20만원을 입금해 줄 것을 요구했다. 콘서트 당일 “감시가 심해 사진을 찍지 못했다”며 “환불해줄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후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환불 날짜를 미뤘다.

김양도 경찰을 찾았지만 “환불 약속을 했고, 대리찍사와 연락이 되는 등 사기로 단정하기 어려우니 기다려보라”는 말을 들었다. 김양은 “메일 주소 말고는 아는 게 없다. 돈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리찍사 사기’ 사례를 분석하면 몇 가지 공통점이 나온다. 우선 사진 데이터를 사고팔기 때문에 계좌번호 외에는 사기범 정보를 알지 못한다. 연락 수단으로 신원확인이 어려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다.

다른 공통점은 사기범들이 피해자에게 마치 환불해줄 것처럼 연락한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이 약속을 믿고 신고를 하지 않는다. 사기범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약속한 환불 날짜를 미룬다. 참다 못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기다려 보라”는 말만 듣게 된다. 피해자들은 같은 사기를 당한 사람들을 모아 경찰에 신고하거나 환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SNS에서는 사기를 친 대리찍사의 계좌번호를 공개하고 피해자를 모으거나 조심하라는 경고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손모양(16)은 “나만의 사진이 갖고 싶어 대리찍사를 의뢰했는데, 사진을 받은 며칠 뒤 인터넷에 해당 사진이 공유되고 있었다”며 “사진을 유통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받은 것도 아니어서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받은 사진이 고화질이 아니었다거나 수백장을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수십장만 받았다는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소액이라도 금전 피해를 보면 사기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반환이 어렵지 않은 소액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반환 거부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 사기죄가 성립된다”며 “문자를 통해 대리 촬영을 부탁할 경우, 언제까지 촬영물을 보내주지 않으면 대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약속해 두라”고 조언했다. SNS 계정이나 계좌번호에다 휴대폰 번호 같은 추가 정보도 미리 확인해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수입에 대한 신고 및 납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1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한 대리찍사는 “한 달에 평균 15~20번 정도의 대리찍사를 나가고, 수입은 150만~200만원 정도다. 사업자등록을 하거나 세금을 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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