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호빵의 봄방학 [만화로 본 세상]
ㆍ섣부른 도움보다 ‘섬세한 선의’가 필요
아무도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돌보며 학생과 선생이 인격적으로 동등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학생에게도 선생에게도 학교는 비로소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
웹툰 〈야채호빵의 봄방학〉(작가 박수봉)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며, 제목처럼 ‘봄방학’ 같은 시간을 그리는 만화다. 이 만화는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 속에서 등장인물들 모두가 각자 짊어진 고통을 조금씩 해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화의 주인공은 ‘야채’로, 요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고등학생이다. 야채는 혼자 도시락을 싸와서 먹다가, 나중에는 ‘라비’, ‘호랑’, ‘봄이’, ‘조연’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 작품 초반에 라비는 중학교 시절 오랫동안 폭력적인 왕따를 겪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등장한다. 호랑은 라비의 쌍둥이 남매로 라비가 따돌림당하던 중학교 시절에 라비의 고통을 몰라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라비와 같은 곳으로 진학하여 살뜰히 라비를 챙겨준다. 중학교 시절 라비와 같은 학급 학생이었던 봄이도 당시 왕따당하던 라비를 보호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금 라비는 봄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친하게 지내려 하지만, 봄이는 라비를 속이고 있다는 마음까지 더해져 스스로 괴로워한다. 라비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봄이와 호랑은 과거의 죄책감에 묶여 있다.

고통이 있는 친구들을 위한 도시락
주인공인 야채 역시 평탄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야채는 중학교 때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며 학교와 학원을 바쁘게 오갔고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수시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야채가 모든 것을 중단하고 일반계고로 진학한 건 처음으로 야채가 부모가 아닌 자신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우연한 사고로 찾게 된 병원에서 야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야채는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취미도 없고 목적도 없이 그저 공부에 매달려 온 삶 속에서 야채가 찾은 한 가지의 기쁨은 바로 요리다.
야채는 어렵게 찾아낸 자신의 기쁨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 매여 있는 다른 친구들을 위하여 사용한다. 친구들이 뭘 먹으면 좋아할지를 매일같이 상상하며 점심 도시락을 만들고, 점심을 다 먹자마자 내일 점심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또 즐겁게 고민한다. 이들에게 밥이란 함께 충만해지는 계기로서 작동한다. 야채에게 요리란 그저 음식을 만들어 먹어치우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여 메뉴를 생각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그릇에 담아내고, 다음 날을 위해 설거지까지 마치는 일련의 과정이다. 각각의 고통을 안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야채가 대단히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야채가 친구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위해 요리하는 매일의 의식만으로도 라비·호랑·봄은 과거와 직면하고 싸울 용기를 조금씩 얻는다.
사실 과거와 직면한다는 건 굉장히 모호할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므로 책임을 묻는 계기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구태여 과거를 다시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봄이는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는 자신들을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상처받았던 라비를 위하여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봄이는 자신이 라비와 친하게 지내도 되는지를 매 순간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라비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라비의 학급에서 라비가 왕따당하던 것을 그저 방관했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이다. 사실 봄이는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라도 라비와 친해지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는 라비가 왜 왕따당하는지 알려 하지 않고 외면하고 방관했던 것을 후회하며, 지금에서라도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봄이는 매번 괴로운 마음을 감추고 라비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나중에는 중학교 동창을 찾아가 라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왕따가 시작된 계기가 무엇인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다.
선의에도 때때로 억제가 필요하다
자신이 얻은 기쁨을 기꺼이 나누고자 하는 야채,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과거의 행위를 속죄하고자 하는 봄이 등은 〈야채호빵의 봄방학〉 이외의 학원물 만화에서 선뜻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다. 특징적인 캐릭터들은 또 있다. 바로 선생님들이다. 이 만화에는 소소한 역할로서 학생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조력자가 되어주는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물론 자신의 가치관을 학생에게 강제로 주입하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학생을 제압하려는 선생도 있지만, 진심으로 학생 개개인을 배려하고 걱정하는 선생님들의 모습들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중학교에 비해 갑작스럽게 살이 많이 찐 야채를 위해 담임선생님은 야채의 면담 시간에 “안에만 있었더니 갑갑하다. 산책 좀 하자”며 교무실 바깥으로 나간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을 살뜰히 관찰하고, 학생들이 하는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심스럽게 해나간다. 뿐만 아니라 학급 내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이를 외면하지 않고 책임 있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선생님들 역시 완성된 주체는 아니어서, 때때로 마주치는 상황들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야채호빵의 봄방학〉의 윤리는 성인과 청소년을 사회적 통념대로, 틀에 박혀 재현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 만화는 청소년을 그 자체의 성찰하는 인격체로 재현할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선악으로 양분되지 않고 나름의 가치관 속에서 흔들리는 주체로서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학교는 바로 이러한 주체들이 모여 상호소통하는 공간으로서 작동한다. 누군가의 가치를 주입하거나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돌보며 학생과 선생이 인격적으로 동등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학생에게도 선생에게도 학교는 비로소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
재미있는 건 〈야채호빵의 여름방학〉이 학교의 시스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만화는 일부 학생이 아니라 전체의 학생이 길을 잃지 않도록, 선생님의 선의가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장치로서의 학교를 말한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선생님, 학교라는 체제에 이르기까지)은 모두 타인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보다 가능한 방안으로 조심스럽게 도움을 주려 한다.
이러한 한에서, 결국 라비·호랑·봄은 각자 자신의 의지로 고통을 극복해나간다. 물론 그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도움이 고통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이 만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건 선의에도 때로는 억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선의를 행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섬세한 선의’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만한 뒤 섣불리 나서기보다 그저 평화로운 일상으로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 이 만화의 ‘봄방학’은 바로 그런 작은 ‘선의’들이 쌓이는 시간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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