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130년 전통 맛집 '야탈라 파이'에서 얻은 교훈

정영선 2018. 7. 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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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파이들
[푸드 트래블-24]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파스타, 일본의 스시, 인도의 탄두리 치킨, 베트남의 쌀국수, 영국의 피시 앤 칩스, 음… 프랑스는 너무 많고, 우리나라는 불고기쯤 되겠다. 호주로 떠나기 전, 호주의 대표 음식은 뭘까, 찾기 시작했다. 금방 떠오르는 요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을 다녀올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다른 나라에는 없거나 만나기 힘든 호주만의 요리를 찾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민자들이 많은 호주는 다문화 국가로 서로 다른 나라의 음식들이 공존한다. 이 때문에 호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호주 음식이 있기보다는 다양한 인종들이 만들어 내는 음식들, 예를 들면 멕시코, 그리스, 말레이시아, 타이 음식들이 모두 '현지 음식'인 셈이다. 난 이 사실을 알면서도 좀 더 현지스러운 음식을 찾겠다며 캥거루 스테이크라도 먹어야 한다는 일념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맛본 캥거루 고기는 소고기보다 약간 질긴 식감으로, 특별하진 않았다.)
호주 브리즈번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호주 브리즈번. 호주 3대 도시라고 불리는 브리즈번 공항은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다. 1년 365일 중 360일이 날씨가 좋다는 브리즈번의 하늘은 예상대로 맑았고 신선한 공기, 친절한 사람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날씨까지 완벽했다. 나를 맞아준 브리즈번에 살고 있는 지인은 한국에서 파티시에를 하다가 호주에 정착하게 됐는데, 그녀는 제과는 물론 다양한 요리에 능숙한 터라 그녀의 집에 머무는 동안 난 맛있는 음식을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아침에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먹고 저녁엔 그녀가 만든 훠궈를 먹었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녀 덕분에 다문화 호주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었지만 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호주의 대표 음식이 뭐야?" "음… 글쎄요. 미트파이?" "응? 그건 영국 요리 아니었어? 너무 특색 없잖아." 하지만 내가 만난 호주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호주 음식은 바로 '미트파이(Meat Pie)'였다.

다양한 종류의 파이들

'미트파이(Meat Pie)'는 영국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호주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호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호주 외에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도 즐겨 먹는 음식이다. 기원도 꽤 오래된 음식으로 기원전 9500년께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시작은 다양한 곡물에 꿀을 넣어 만든 음식의 형태였는데, 이 음식이 그리스로 전파되면서 고기를 넣은 미트 파이가 등장했다. 처음에 파이 윗면은 돌처럼 단단해서 안의 내용물을 보호하는 용도였으나, 이후 윗면이 바삭한 크러스트의 형태로 변형됐고 십자군 원정을 떠났던 군인들에 의해 중세 유럽에 전파되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 자리 잡았다는 게 알려진 유래다.

미트 파이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페이스트리 반죽(파이 반죽) 안에 다진 소고기와 채소를 그레이비 소스(gravy sauce : 고기에서 나온 육즙으로 걸쭉하게 만드는 소스)에 버무린 뒤 채워서 구워내는 것이다. 안에 넣는 재료는 소고기 외에도 양고기, 버섯, 카레, 베이컨, 채소, 닭고기 등 다양하게 넣을 수 있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종류도 달라지고 스타일도 달라지는데, 만약 소고기와 요구르트, 토마토를 넣어 구웠다면 중동 스타일이 되고, 소고기에 양파와 페타치즈를 넣어 구우면 그리스 스타일이 된다.

130년 전통의 야탈라 파이(Yatala Pies)

브리즈번 시내에서 맛본 미트파이의 맛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받아 온 냉동 파이를 데워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딜 가나 비슷한 맛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브리즈번 근처에 있는 골드코스트를 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다가 유명한 미트파이 집을 발견했다. 이름은 야탈라 파이(Yatala Pies)로, 130년 전통에, 호주에서는 꽤 유명한 파이 집이다. 고속도로에 위치한 맛집이라길래 난 우리나라 국도에 있는 작은 맛집을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크고 모던한 건물의 파이 집이 나왔다. 처음에는 작은 파이 가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원만 70명이 넘고 하루 3500개 이상의 파이를 판매하는 큰 매장으로 성장했다.

야탈라 파이의 내부 모습
청키 스테이크 파이

메뉴는 미트파이, 스테이크 파이, 스테이크 머시룸, 베이컨과 치즈, 치킨과 채소, 커리 스테이크, 시금치와 페타치즈 등 다양했다. 우리 일행은 서로 다른 4가지 종류의 파이를 주문했다. 내가 고른 건 청키 스테이크 파이로 고기를 다지지 않고 덩어리째 넣어 씹는 맛도 좋고 포만감도 높은 파이였다. 치킨과 버섯이 들어간 모르네이 소스 파이는 좀 짭짤하긴 했지만 모르네이 소스(Mornay Sauce·베사멜 소스에 치즈를 더해 만든 부드럽고 진한 치즈 맛의 소스)와 버섯의 만남이 바삭한 파이와 어우러져 좋았다. 따뜻하게 구워져 나오는 탓에 파이 크러스트도 눅눅하지 않았고 육즙이 느껴지는 미트파이의 맛도 좋았다. 디저트로 애플파이도 하나 주문했는데, 그동안 많이 보던 사과를 캐러멜라이즈해서 만드는 애플파이가 아닌 사과의 사각거리는 식감을 살린 새콤달콤한 맛의 애플파이였다.

130년 전통의 야탈라 파이(Yatala Pies)

미트 파이는 세계 각지에서 많이 먹지만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내가 러시아에서 만난 러시아식 파이인 '피로그(pirog)'는 다른 나라의 파이에 비해 속을 더 잘게 다져 놓고 꽉 찬 느낌이었으며 재료를 감싼 반죽은 페이스트리가 아닌 빵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인도의 '사모사(Samosa)', 스페인의 '엠파나다(Empanada)',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고기만두도 미트파이와 비슷한 음식일 것이다. 호주에서 맛있는 미트파이를 먹고 난 뒤, 난 호주 음식을 찾겠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야탈라 파이는 분명 맛있었지만, 호주 음식의 정체성은 호주의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로 다양한 나라의 음식문화를 담아내는 것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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