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의 This is America] 요세미티, 그 이름에 숨겨진 비경

2018. 11. 19.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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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를 지켜내는 수호자처럼 늠름하게 솟은 요세미티의 바위들. 그 곁은 온통 아득한 숲이다.
미국 여행에서 단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국립공원을 찾을 것이다. 수많은 국립공원 중 어딜 가겠느냐 묻는다면 요세미티(Yosemite)라고 답할 것이다. 요세미티에는 중력을 거슬러 솟구치는 간헐천 같은 놀라움도, 두 발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협곡의 거대함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황량함도 없다. 우리가 아는 숲과 바위, 산과 강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계곡의 품에 들어서는 순간 깨닫게 된다. 요세미티, 네 음절의 이름 속에 얼마나 많은 자연의 신비와 경이가 숨겨져 있는지를.

요세미티는 본래 이 지역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던 인디언 부족을 일컫는 말이었다. 워낙 호전적인 사람들인지라 주변 부족들은 이들을 인디언 언어로 '죽이는 자들(Those who kill)'이란 뜻의 요세미티(Yos s e'meti)라고 불렀다. 원주민들은 계곡을 '거대한 입'이라는 뜻의 아우니(Awooni) 혹은 아와니(Ahwahnee)라고 불렀다. 계곡 벽면이 마치 곰이 입을 벌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이후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이 깊은 계곡에도 백인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요세미티 부족의 테나야 족장은 손짓 발짓을 동원해 그들에게 계곡 이름을 설명하려 애썼지만 제대로 소통될 리 만무했다. 후에 인디언과 백인 간에 마리포사 전쟁이 발발하고 계곡은 결국 백인들 손아귀에 들어갔다. 백인들은 한때 이 땅의 주인이었으나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인디언들을 기린다며, 계곡 이름을 요세미티로 부르기로 정했다. 본래 이 땅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침략자의 교만한 자비였다. 어찌 됐든 인디언들은 이름으로나마 이 계곡에 남겨지게 됐고 우리는 기억할 수 있게 됐다.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산이 부르니, 나는 가야만 한다(The Mountains are calling and I must go)."- 존 뮤어

요세미티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뮤어다. 스코틀랜드 태생인 그는 1868년 처음으로 미국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탐험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모두가 땅과 금을 차지하는 데만 미쳐 있던 탐욕의 시기, 그는 미 서부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삶 전체를 헌신했고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격상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요세미티 밸리부터 북미 최고봉인 휘트니봉까지 시에라 산맥의 척추를 가로지르는 341㎞ 길(존 뮤어 트레일)이 그에게 헌정된 이유다.

요세미티에서는 새의 노랫소리에 눈을 뜨고, 폭포 소리에 이끌려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낙차가 729m에 달하는 북미 최대 요세미티 폭포를 찾아 나선다. 싱그러운 내음과 반짝이는 햇살이 가득한 계곡 풍경은 어딘가에서 요정이 날아올 것만 같이 신비롭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폭포의 고함은 커지고 대기는 촉촉해진다. 하늘 높이 솟은 폰데로사 소나무 기둥 사이, 하얀 물보라를 피워내며 쏟아지는 물줄기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두 개의 나무 기둥 사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라던 뮤어의 말이 진짜였을까. 형용할 수 없이 푸르고 청명한 숲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요세미티 계곡은 빙하의 작품이다. 100만년 전부터 빙하가 침식하며 거벽들을 세우고 계곡을 조각했다. 녹아내린 물은 그 사이로 흘러들어 폭포와 강이 됐다. 터널 뷰 전망대에 오르면 요세미티 밸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이 2308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단일 화강암 바위 엘 캐피탄을 시작으로 말꼬리 폭포, 구름 휴게소, 하프 돔, 보초병 바위, 대성당 바위, 그리고 신부의 면사포처럼 우아하게 흩날리는 브라이덜 베일 폭포까지 모든 것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하나의 세계를 지켜내는 수호자처럼 늠름하게 솟은 바위들 곁은 온통 아득한 숲이다. 간밤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계곡이 거대한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잎사귀 하나하나에 색이 입혀지고 산맥의 어깨에는 햇살이 내려앉는다. 경이로움과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나는 결코, 이 장엄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으리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뒤덮은 수많은 봉우리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하프 돔(Half Dome)이다. 계곡 어디를 가도 하프 돔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 없어, 종일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인디언들은 이 거대한 바위를 티싸악(Tis-sa-ack)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요세미티 계곡에 도착한 파이우트 부족 여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그림자가 반쯤 드리워진 하프 돔 모습이 정말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의 옆모습처럼 느껴진다.

요세미티에서의 마지막 시간도 이 바위를 바라보며 보내기로 한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미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하늘을 기어 내려오던 태양이 이윽고 바위와 하나가 돼 찬란하게 빛난다. 시에라 산맥의 심장처럼 아주 붉고, 아름답게.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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