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아빠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 [만화로 본 세상]
ㆍ소비자 선택을 받으려면 고민해야 할 것들
자영업자는 물건을 그냥 팔아서는 안 된다. 내가 파는 메뉴는 어떠한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찾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최소한의 과정일 뿐이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이 질문은 직장인들에게 매일 찾아오는 고민이자 즐거움이다. 나도 그랬다. 잠깐이었지만 직장생활의 지루한 반복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점심 메뉴를 고르는 정도였다. 중국집에서 먹을지 한식을 먹을지. 중국집에서 먹는다면 면을 먹을지 밥을 먹을지. 면이라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트리 구조로 뻗어가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메뉴를 고르기 위해 내 정신은 이미 점심시간에 도착해 있었다. 다만 식사는 그저 배만 채우면 된다고 믿던 직장 상사의 폭압으로 그마저도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말이다(혹시라도 직장 후배에게 메뉴를 강요한 적이 있다면 지금 당장 사과하시라).

손님이 아닌 식당주인 입장에서 보면
매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만화 주인공도 있다. 드라마로 더 알려진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과 퇴근 후 한 잔의 술과 안주 선택에 최선을 기울이는 〈와카코와 술〉의 와카코, 택배로 도착한 배달음식을 먹기 위해 곧장 집으로 달려가는 〈주문배달의 왕자님〉의 이이다 요시미가 그들이다. 그리고 너무 잘 알려진 〈크레용 신짱(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아빠 노하라 히로시 역시 이 대열에 합류한다. 만화 〈짱구아빠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이하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은 외근이 잦은 노하라 히로시가 그저 점심 메뉴를 고르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짱구 팬들에 의하면 짱구네 가족은 도쿄에 마당이 있는 커다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노하라 히로시는 항상 고가의 브랜드 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금수저로 추정된다는 재미있는 분석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만화에서 그는 서민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점심 메뉴를 선택한다.
내가 계속해서 임금근로자였다면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을 짱구아빠의 입장에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자영업자가 되어 있었고, 점심 식사를 파는 것은 아니었지만 손님의 선택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식당주인의 입장에서 이 만화를 읽게 되었다. 조금 꾸며보자면 자영업자는 어떻게 소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다가가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2017년의 자영업 폐업률이 90%라는 뉴스로 떠들썩했다. 물론 이런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해당 수치는 4대 업종에 대한 폐업률이고, 이것도 87.9%를 올림해서 과장스럽게 보이려는 꼼수다. 게다가 90% 폐업률이라는 것은 10곳의 자영업 중에 9곳이 망했다는 뜻이 아니라, 새롭게 10곳이 개업하고 9곳이 폐업했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신규 대비 폐업 비율’로 고쳐 써야 한다. 폐업률을 정확히 계산하려면 전년도 자영업 전체사업자 수를 올해 자영업 폐업자 수로 나누면 알 수 있다. 개인사업자 기준 2017년 13.8%였고, 폐업률은 수년간 감소세에 있다. 잘못 해석한 통계가 여기저기 인용되면서 갑자기 위기가 닥쳐온 것처럼 떠들었지만,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다만 통계자료 중 생존율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존율은 창업 후 일정 기간 이내 폐업하는 비율이다. 우리나라 요식업의 2년 생존율은 42.3%, 5년 생존율은 17.9%이다(2015년 기준). 당신과 함께 퇴사한 열 명이 동시에 창업할 경우 2년 내에 여섯은 폐업한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체감하기에도 이런 수치가 과장은 아니다. 나는 신촌에서 장사하며, 며칠 전 밥을 먹었던 식당이 갑자기 문을 닫고 최근에 오픈한 매장이 몇 개월 만에 사라지는 모습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프랜차이즈도 예외가 아니다. 배경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지막지한 임대료, 들쑥날쑥한 재료비, 인건비의 증가, 결제방식의 변화로 인한 수수료 부담, 상권의 변화 등이 우선 떠오른다. 물론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외부요인은 자영업자가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임대차보호법 등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변화는 당신이 망해가는 속도보다 느긋하게 다가올 것이다.
점심 한 끼, 대강 고르는 게 아니다
장사가 시원찮은 날이면 항상 이유를 붙인다. 비가 와서, 눈이 내려서, 날이 맑아서, 너무 더워서, 추워서. 아니면 오늘은 휴일이라 다들 야외로 놀러 갔겠구나. 오늘은 평일이라 사람들이 집에서 쉬겠구나. 현실판 우산장수와 부채장수가 따로 없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자영업자 본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창업의 실패 원인을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추린다.
첫째, 준비 부족. 급하게 창업을 하게 되어 자신이 하는 사업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는 경우다. 특히 요식업에서는 식당에서 몇 달이라도 일을 해보고 창업하라는 조언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그러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퇴직 후 마땅한 일을 찾다가 창업하는 중장년의 경우 남의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자존심 상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고용자와 피고용자를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계급의 차이처럼 받아들이는 문화가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정보력 부족. 지금은 모든 것이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새로운 미디어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모두 휴대전화에 배달앱을 깔아 주문하는데 그들은 열심히 전단지만 돌리며 효과가 없다고 투덜댄다. 허위·과장광고에 속아 창업하는 경우도 많다. 대박 아이템이라는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아무도 실패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 진위를 구분하는 것이 정보력이고 대부분의 경우 거짓말이다.
셋째, 창의력 부족.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많던 주스 가게는 어디로 갔을까. 똑같은 제품을 팔아서는 경쟁력이 없다. 나만의 것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외부요인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해야 한다. 물론 말로만 쉽다.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의 짱구아빠가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염두에 두는지 보았다. 히로시는 든든하게 먹고 싶을 때 돈가스 덮밥을 먹고, 큰 거래를 성사시키고 축하하고 싶을 때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지하철에서 엿들은 대화 속의 ‘고등어된장조림’를 기어이 찾아내기도 하고, 출장을 가면 그 지역의 음식을 꼭 챙기기도 한다. 때로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싸다고 기억해 두었던 닭튀김을 먹고, 날씨가 너무 추운 날에는 냄비우동으로 몸을 데우기도 한다. 소비자는 단순히 하나의 음식을 고르는 것 같지만, 단순하지 않은 많은 상황을 고려한다. 자영업자는 물건을 그냥 팔아서는 안 된다. 내가 파는 메뉴는 어떠한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찾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최소한의 과정일 뿐이다.
‘소확행’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올랐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먼 미래의 내집 마련 같은 거대하지만 불투명한 행복보다 지금 당장 즐길 수 있는 확실한 행복에 사람들이 돈을 쓴다는 뜻이다. 노하라 히로시가 점심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오늘 맛있는 음식 하나를 먹는다면 그것이 우리의 작고 확실한 행복이다. 하지만 ‘확실’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많은 자영업자가 그 근거를 마련하기를 희망한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 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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