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빵빵한 회사로 '조출'.. 땡볕 겁나 '사무실 회식'
서울의 한 IT 기업에 다니는 이지은(25)씨는 요즘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한다. 이씨는 "집을 나와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이 너무 더워서 아예 일찍 집을 나선다"고 말했다. 가구 회사에 다니는 김영래(29)씨도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40분씩 일찍 출근한다. 김씨는 "에어컨 잘 나오는 회사가 최고"라고 했다. 주 52시간 도입으로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자발적으로 일찍 회사에 나오는 조출족(早出族)들이다.
낮에는 폭염특보, 밤에는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직장인과 학생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장인들은 "더운 집보다 시원한 회사가 낫다"며 일찍 출근하고, 학생들도 등교 시간보다 한 시간씩 일찍 학교에 나온다. 사람들의 동선(動線)이 바뀌면서 음식점, 전통시장도 희비(喜悲)가 갈린다.

회사원 박지연(26)씨는 요즘 동료들과 "회사콕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더울 때는 회사에 콕 박혀 있는 게 낫다'는 뜻이다.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박씨는 "어제도 동료와 분식을 시켜 빈 회의실에서 간단히 먹었다"고 했다. 김민지(27)씨는 "직장인의 낙(樂)인 점심 후 산책도 포기했다"며 "더위 때문에 사무실 회귀 본능이 생겼다"고 했다.
회사콕들 덕에 배달 음식 주문은 늘어났다. 음식 배달 전문 업체인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서울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기록한 지난 17일 평일 점심(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배달 건수는 일주일 전인 지난 10일 같은 시간보다 13% 증가했다. 10일에는 서울 최고기온이 27도였다. 기업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도시락 전문점은 이번 주 들어 점심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에서 '본도시락'을 운영하는 한상훈(38) 점장은 "폭염이 시작된 후로 점심시간 직전에 도시락 20~30개씩을 단체 주문하는 회사가 하루 서너 곳씩 꼭 있다"고 했다.
학생들도 학교 에어컨을 찾아 일찍 등교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더위가 시작되자 학생들이 평소 등교 시각(오전 8시)보다 1시간 일찍 학교에 오고 있다"고 했다. 이 학교는 교실에 학생이 2명 이상 오면 에어컨을 틀게 해준다.
하교 시각을 앞당긴 학교도 있다. 경기도 김포의 한 중학교는 지난 16일부터 5분씩 단축 수업을 하고 있다. 평소 오후 3시 30분이던 하교 시각을 3시로 조정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에어컨을 틀어도 교실이 덥다"며 "온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학생들을 일찍 집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공원을 찾던 노인들은 폭염 때문에 에어컨이 있는 인근 가게로 몰려들고 있다. 서울 탑골공원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박진주(25)씨는 "최근 노인 손님이 체감상 30% 정도 늘었다"고 했다. 유성(80)씨는 "커피값이 1000원으로 싼 데다 사람들 눈치를 덜 봐도 돼서 편하다"며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서너 시간씩 얘기하다가 간다"고 했다.
학원가에서는 더위 때문에 수강생의 불만이 늘자 '분반(分班) 수업'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공무원시험학원은 수강생 200명짜리 대형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2개 강의실에 분산했다. 절반가량의 학생은 강사 대신 대형 TV 화면을 보며 공부하지만 "시원해서" 만족한다고 한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무더위로 손님이 줄어 걱정이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 중앙시장엔 손님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젓갈을 파는 박선영(54)씨는 "오늘은 오후 4시까지 2만원어치밖에 못 팔았다"고 했다. 손님의 발길을 잡기 위해 서울 수유 전통시장은 시장 천장에 수증기 분사 장치를 설치했다. 최진호 수유 전통시장 상인회 전무이사는 "이 장치로 시장 온도가 바깥보다 2~3도 내려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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