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마을에 가다①]소외된 아이들의 보금자리..존속위기 직면

박대로 2018. 7. 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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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출 '소년의집' 변화의 물결 중심에
원생 감소에 응암2구역 재개발 맞물려
부지내 중학교 신설 압박..원생 사생활 어떻게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 은평구청에서 백련산 자락을 따라 나지막한 경사로를 올라가다보면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서울시 꿈나무마을이 나온다.

꿈나무마을은 1975년부터 서울지역 요보호아동을 키워온 시립 양육시설이다. 부모 잃은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이곳에는 현재 약 400명의 청소년과 영유아, 그리고 150여 직원이 생활하고 있다.

꿈나무마을의 뿌리는 부산에 있는 '소년의집'이다. 미국인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와 그가 창설한 마리아수녀회는 1969년 자체 교육기관을 가진 보육 시설인 소년의집을 부산 서구 암남동에 건립했다. 소년의집에는 1973년 국민학교, 74년 중학교, 76년 기계공고가 차례로 개교했다.

소년의집은 서울로 영역을 확장했다. 부산 소년의집을 익히 알고 있던 김현옥 관선 부산직할시장은 1966년 서울시장으로 발탁된 뒤 서울에도 같은 시설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김 시장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알로이시오 신부를 직접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하면서 서울에 소년의집을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알로이시오 신부는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마리아수녀회는 1973년 서울시와 위탁약정을 체결했다. 1975년 1월1일자로 서울 소년의집이 정식 개원했다. 부지 면적은 4만8385㎡다.

소년의집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초등학교 때는 서울 소년의집에 있는 초등학교에 모여 초등교육과정을 밟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부산에서 중고교를 다닌 뒤 주로 부산·경남지역 기업에 취직, 자립해왔다.

그러던 소년의집은 21세기 들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입소자 수백명이 단체로 숙소에서 지내는 집단생활 방식이 청산해야할 유산으로 취급됐다. 실제로 아이들은 한방에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30여명까지 함께 지내야 했다.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는 생활환경은 집중 공격대상이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후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소규모 양육시설로 가는 요보호아동이 줄어든 것도 소년의집에 악재가 됐다. 입소아동이 줄어드니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문을 닫는 소규모 양육시설이 늘었고 폐업한 시설주들은 소년의집을 비난했다. 서울시내에서 발생하는 미아와 기아를 거의 대부분 수용하는 소년의집은 이들에게 질시의 대상이었다.

이같은 여론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학업을 마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오랜 전통도 사라졌다. 일부 서울시의원이 '소년의집 입소아동이 중고교를 다니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은 선택권 침해'라고 지적하면서 교차 이주는 점차 줄었다. 2009년부터 서울 소년의집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부산에 있는 중학교로 가지 않고 은평구 내 중학교에 입학했다. 2013년부터는 서울과 부산간 교류가 아예 끊겼다. 게다가 사회 전반적인 여건이 나아지면서 신규 입소자가 급감하자 서울에 있던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는 2015년에 폐교되기에 이르렀다.

잇따르는 공격 속에 소년의집은 이름마저 뺏겼다. 소년의집이 범죄소년·촉법소년·우범소년을 보호하는 소년원을 연상시킨다며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는 상금 100만원을 걸고 새 이름을 공개모집했다. 이를 통해 소년의집은 꿈나무마을이란 새 이름을 달게 됐다.

꿈나무마을의 침체는 지속됐다. 꿈나무마을 안에 설치돼 1982년부터 35년간 소외된 사람들을 진료했던 도티기념병원 역시 지난해 문을 닫았다. 환자가 줄고 인근에 대체 진료소도 늘어난 탓이다.

시설 축소와 입소아동 감소 속에 바로 옆에 위치한 응암2구역에서는 대규모 재개발까지 추진됐다. 재개발은 꿈나무마을에 또다른 시련을 가져다줬다.

관할 교육청인 서부교육지원청과 서울시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응암2구역 내 중학교 건립 계획을 취소했다. 이후 꿈나무마을 안에 중학교를 짓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조합원이 '꿈나무마을 안에 새 중학교를 지어야 한다'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 꿈나무마을에 압력을 가했다.

조합원들이 꿈나무마을 원생 수 감소 문제까지 거론하며 중학교 건립 민원을 넣는 통에 꿈나무마을 아동과 청소년들은 심란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꿈나무마을 부지 안에 중학교가 생기면 입소아동은 심리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입소아동들은 등하교 때 학교 바로 옆 숙소를 오고가는 것 자체가 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고스란히 알려야하는 그 심정을 이해하는 탓에 꿈나무마을 직원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다행히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꿈나무마을의 동의 없이 부지 안에 학교를 짓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게다가 재개발 공사로 인한 소음과 분진으로 0~2세 영유아들이 잠을 설치고 있다. 영유아들이 지내는 시설인 '연두꿈터'는 공사장 바로 옆 건물에 있다. 꿈나무마을 직원들은 불만스러워 하면서도 자칫 아이들이 지역주민의 눈총을 받을까봐 항의도 못하고 있다.

꿈나무마을의 존속 여부 역시 고민거리다.

신규 입소자가 줄어들어 꿈나무마을 직원들은 고용 불안을 느끼고 있다. 초등학교에 이어 도티기념병원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직원들은 시설의 존속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

꿈나무마을 관계자는 "시에 고용불안에 대해 몇차례 얘기했다"며 "시에서는 꿈나무마을에 지내는 아이들을 남녀 50명씩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으므로 유지하게 하겠다고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꿈나무마을은 지역주민과의 공간 공유를 절대 거부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시설 내 유휴공간이 생기면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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