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 통보관을 추억하며, '에너지 예보'를 꿈꾸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2018. 9. 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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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發光] 에너지전환형 일기예보를 보고 싶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1990년대까지 한국의 TV 일기예보는 단연 김동완 기상통보관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하얀 지도 위에 검은 매직펜으로 등압선과 전선의 배치를 마술사처럼 그려내며 친근한 표현을 통해 내일의 날씨를 전했다. 창의적인 기법과 실력도 경탄할만한 것이었지만, 기상의 원리를 시청자에게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면서 날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였던 것이 굉장히 큰 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김동완 통보관의 일기예보는 지금 TV와 웹사이트의 일기예보들 보다 훨씬 깊이 있고 맥락적이었다. 기상도는 그 자체로 중요한 정보일 뿐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기상 감수성과 이해도를 진작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고기압과 저기압들의 크기와 관계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 눈과 비의 확률과 강도, 태풍의 진로까지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설령 내일의 날씨가 그의 예보와 맞지 않더라도, 왜 그날의 날씨를 맞추기 어려웠는지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일기예보들은 그에 비하면 너무 단편적이고 평면적이다. 하루 전 한주 전과 비교하여 오늘과 내일의 온도, 습도, 강수확률, 자외선과 오존, 미세먼지 농도를 숫자로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 적중률 높은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지역별 시간대별로 더욱 세밀한 예측이 가능해졌고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화면 구성이 가능해졌지만 시청자들이 앉아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오히려 적어졌다. 방송 코너들의 호흡이 짧아진 만큼 한 회의 일기예보에 할애되는 절대 시간도 짧아졌다. 가끔씩 기상전문기자나 기상예보관이 스튜디오에 초대되어 깊이 있는 기상 전망을 전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일기예보에서 기상도를 돌려달라

김 통보관은 퇴임 후 한 언론매체의 인터뷰에서, 여성 기상캐스터만 일기예보 방송을 맡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급적 기상학을 전공한 사람이 날씨 정보만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해설을 할 필요가 있으며, 일기예보 방송시간도 최소 5분 정도는 주어져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날씨를 제대로 분석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는데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관련 기사 : 1호 기상캐스터 '국민 날씨아저씨' 김동완 前기상청통보관)

어쨌든 지금의 일기예보는 시청자들을 매우 수동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우산 준비, 나들이 준비, 복장 준비 같이 일상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정보들을 전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날씨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김동완 통보관이 활약하던 시절보다 훨씬 커졌다. 산업 생산량과 교통량이 비약적으로 많아졌고 이에 따라 에너지 수급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특히 에너지 수요는 날씨, 특히 온도와 거의 비례하여 반응한다.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은 시간별 일조량과 풍속에 좌우되는 탓에 재생가능에너지원 역시 날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말하자면, 이제 일기예보는 곧 '에너지 예보'이기도 하다.

최근의 에너지전환 논의는 전기요금의 저렴함과 이용의 편리함에 만족하며 플러그만 꽂고 잊어버려도 되는(plug in and forget) 수동적인 에너지 소비자를 넘어서, 핵발전의 위험성을 염려하고 복잡한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에 관심을 갖는 능동적인 '에너지 시민'이 요청됨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에너지 시민은 에너지 수급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하고,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관계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맥락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시민이 취해야 할 정보에는 날씨 정보가 중요하게 포함되어야 하며, 역으로 날씨 정보에 에너지 정보를 접목할 필요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재생가능에너지 일기예보의 가능성

그런데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예보하는 일기예보가 실제로 시도되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벨기에 등 5개국이 참여한 "EnergizAIR"는 유럽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정보를 일기예보에 접목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가 일단락 된 2012년에 250만 명의 시청자에게 송출된 시범 방송을 보면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태양열난방의 세 범주에 따라 일기예보와 같이 에너지 생산 정보를 전한다. 그날 날씨는 태양광발전이 해당 지역의 전력 수요를 몇 퍼센트 충당하게 해주는지, 풍력발전은 몇 가구의 전력을 공급하는지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유럽 각국이 일기예보 방송뿐 아니라 신문과 라디오에도 가져다 쓸 수 있는 모듈화 된 데이터를 제공하며, 29명의 숙련된 재생가능에너지 캐스터도 양성했다. 프로젝트 개발자들은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재생가능에너지를 생활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이용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림] EnergizAIR의 방송 화면


한국의 일기예보 방송도 많은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하루에 몇 회씩은 기상도 그래픽을 삽입하는 게 좋겠고, 흐르는 자막을 통해 더욱 많은 데이터와 기상-에너지 정보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의 날씨와 연결하여 재생가능에너지의 종별, 지역별 발전 예상량을 예보하고 이와 관련하여 시간대별 예상 전력예비율과 공급예비력을 알려준다면 자연스레 에너지전환형 일기예보가 될 수 있다. 기상캐스터가 "내일은 정오 전후로 폭염이 절정에 달하고 전력 수요도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점심시간을 좀 길게 가지시고 냉난방기를 몇분만 덜 가동하시면 공급예비력이 5% 더 올라갈 수 있겠습니다"라고 말해준다면, 가정과 기업 소비자의 DR(수요관리) 참여는 더욱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전환형 일기예보는 시민들에게 에너지전환이 유익할 뿐 아니라 재미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생활 에너지 박사로 만들어주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 적응과 에너지 전환에 일기예보도 적응하고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고, 내일도 최선을 다하는, 뉴스룸 같은 일기예보의 변신을 기대해 본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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