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비·캐러멜 작가의 <지옥사원> [만화로 본 세상]
ㆍ무엇이 인간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가?
누구나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걸 가로막는 건 누구인가. 그게 비단 가난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그걸 질문하는 주체가 천사도 신도 아닌 악마라는 것이 이 만화의 핵심이다.

오래전 친구들과 막걸리 주점을 개업하려 했던 적이 있다. 자주 가는 단골 서점에서 작은 창고를 내줄 테니 자유롭게 쓰라고 했고, 공부방 삼아 그곳을 들락거리며 우리는 이런저런 상상을 펼쳤다. 서점이 위치한 곳이 대학가였으므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강사의 요금을 별도로 책정하자는 것이었다. 똑같은 김치전이라도 주문한 사람이 교수인 경우 1만2000원, 강사의 경우 8000원, 대학생 6000원 하는 식이었다. 이 계획은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막걸리 주점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도 전에 친구들이 서로 다퉈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곧 모두 졸업하여 서점에도 들르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계획은 상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 이후 우연한 기회에 누구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돈을 내는 식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름만큼은 수차례 들어보았던 ‘문턱없는 밥집’이었다. 이곳은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도 더 혁신적이었다. 밥값이 정해져 있지 않고, 먹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불한다는 것이 운영방침이었다.
가난한 청년에게 빙의한 악마
‘문턱없는 밥집’의 시도는 매우 실험적이다. 실제로도 ‘문턱없는 밥집’은 한 번 폐점했다가 다시 열기도 했다. 평등한 밥상을 찾아보기도 어렵거니와 유지하기도 어려운 건 당연한 말이지만 현대사회의 식문화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웹툰 〈다이어터〉로 유명한 만화가 네온비·캐러멜이 새로 낸 만화 〈지옥사원〉은 악마를 매개로 하여 불평등한 음식문화를 조명하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웹툰 〈지옥사원〉은 인간에 빙의한 악마가 인간사회의 문법을 하나씩 배워가며 사회 최고 계층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사회에 내려온 악마 ‘쿼터’는 인간 ‘고순무’에게 빙의하는데, 고순무는 고시원 한 칸에 거주하며 발레파킹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오고 있던 20대 청년이다. 순전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인간사회에 내려왔던 쿼터는 가진 돈이 없어 편의점 음식 등으로 때워야 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가난한 청년에게 없는 것은 돈뿐만이 아니다. 지옥에서는 좁은 방에 갇히는 것이 형벌로 여겨지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일상인 데다가(고시원), 갑질에도 늘 고분고분하게 허리를 숙여야 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고순무에게 빙의한 쿼터는 고순무가 당했던 교통사고의 가해자를 만나 이에 대해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해자는 대기업 ‘선호식품’의 이사인 데 비해 쿼터가 빙의한 인간 고순무는 이사가 자주 다니는 식당의 발레파킹 아르바이트생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쿼터는 본인이 상위 계층의 사람이 되어야만 돈도 벌 수 있고 복수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이를 위해 선호식품에 입사 지원한다.
고졸에 마땅한 자격증이나 영어점수 하나 없는 인간 고순무의 이력서는 대기업 입사에 부적합하다. 하지만 때마침 선호식품에서 학력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특채 전형을 열고, 여기에 쿼터가 본래 갖고 있던 악마의 능력(20개 국어 구사, 식품 성분 분석하기 등)을 더하여 고순무의 몸을 빌린 쿼터는 비교적 순조로이 선호식품에 입사하게 된다. 이후 쿼터는 신입사원 연수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여러 과제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사회의 예의범절, 의사소통 방식 등을 본격적으로 학습한다.
만화 〈지옥사원〉은 작품 초반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무엇이 인간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가?’를 탐구한다. 쿼터는 선호식품 입사 이후 회사에 적응하기 위하여 인간사회를 깊이 있게 관찰한다. 관찰하면서 쿼터도 인간사회의 부조리함을 매번 경험하는데, 이때 쿼터가 느끼는 부조리함은 인간사회의 규칙들이 윤리·도덕이 아니라 합리성을 위반하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실력이 있더라도 그럴듯한 이력이 없으면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는 것, 같은 노동인데도 몸으로 하는 노동은 머리로 하는 노동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것 등이 그렇다. 악마인 쿼터에게는 감정과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자신의 감정과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에 기반하여 판단하는데, 쿼터에게는 둘 다 없으니 그때그때 상황들을 종합하고 합리적으로 엮어 쿼터가 그 나름대로 인간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칙을 만들어나간다.
음식은 곧 계급의 문제다
쿼터가 인간사회를 관찰하고 생존법칙을 만들어나가는 이 전체적인 서사 속에서 ‘음식’은 〈지옥사원〉이 다루고 있는 핵심적인 소재다. 본래 쿼터가 살던 지옥에서 악마들은 인간이 불행해질 때마다 만들어내는 불행 구슬을 먹고사는데, 이 불행 구슬은 (쿼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흙 맛이 난다. 쿼터는 악마 중에서도 훈련된 우수인재로 선발되어 인간사회로 파견됐다가, 인간사회의 다채로운 음식들에 매료되었다. 그런 쿼터가 다시 인간세계로 내려와 입사하게 되는 회사는 대기업인 선호식품이다. 선호식품은 인스턴트 식품부터 고급 호텔 음식까지 폭넓은 층을 타깃으로 외식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쿼터가 입소한 신입사원 연수과정에서 받는 과제도 대개 음식을 주제로 한다. 얼마 전의 에피소드에서는 ‘환경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미래식품’을 주제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주제에서 쿼터는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미래식품’으로 발표하면서, 가공식품이 당장엔 더 맛있어 보여도 결국 가공식품 역시 자연을 모방하며,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합성첨가물이 아니라 고기·채소 등 원재료를 섭취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원재료를 먹으면 되는데 현대인들은 왜 기꺼이 가공식품을 택하는가. 요리를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고,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이 때로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선호식품에서는 3D프린터를 사용한 음식 등 점점 더 편리하게 음식을 소비시킬 방법을 궁리하는데 쿼터는 한결같이 맛좋고 질 좋은 음식을 찾아 나선다. 선호식품과 쿼터의 이해관계가 서로 어긋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옥사원〉에서 여러 번 표현된 것처럼 음식은 곧 계급의 문제다. 가난한 사람은 비싼 음식을 먹기 어렵고, 비싼 음식이란 곧 원재료에 가까운 음식이다. 일 혹은 돈에 치여 많은 사람은 결국 저렴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택하는데, 가공식품은 맛도 떨어지거니와 건강에도 해롭다. 모두 그 사실을 알면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쿼터는 선호식품 입사 면접장에서 식품회사가 타사 제품의 맛을 복제하는 것을 두고 “맛에는 윤리가 없다”고 언급하고, 이에 이어 “상표라면 모를까, 맛에는 저작권이 없지” 하는 면접관의 독백이 이어진다. 확실히 지금 식품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실제 음식의 맛이나 질이 아니라 브랜드다. 소비자는 브랜드에 비싼 값을 치르고 가격보다 질이 떨어지는 음식을 섭취한다. 〈지옥사원〉의 맥락을 따라갈 때, 외식업계 대기업은 음식의 계급성을 강화하는 데에 일조하는 중요한 주체다.
〈지옥사원〉은 최근 쏟아지듯 나오는 음식 콘텐츠들이 한결같이 외면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짚는다. 누구나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걸 가로막는 건 누구인가. 그게 비단 가난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그걸 질문하는 주체가 천사도 신도 아닌 악마라는 것이 이 만화의 핵심이다. 지옥에서마저 음식(불행 구슬)만큼은 모든 악마에게 평등하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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