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그녀의 심청> [만화로 본 세상]
ㆍ심청은 왜 ‘승상 부인 수양딸’ 제안을 거절했나
승상 부인은 심청을 수양딸로 삼고 싶어하며 공양미 300석을 대신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죽지 않고도 아버지가 약속한 공양미를 마련할 방법이 심청에게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심청은 이를 거절한다. 어째서일까?
심청전은 ‘효성 깊은’ 심청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심청의 아버지는 눈을 뜨게 해준다는 말에 몽은사 주지 스님에게 공양미 300석 시주를 약속한다. 심청은 공양미를 마련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질 산 제물을 찾는 뱃사람에게 자신을 판다.

다른 판소리계 소설처럼 심청전 또한 출판된 지역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전주에서 인쇄된 완판본이다. 완판본은 서울에서 출판된 경판본에 비해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장승상의 ‘부인’이다. (승상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직위의 관리다. 심청전은 중국과 조선의 요소들이 혼재된 사회, 혹은 가상의 공간 ‘유리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승상 부인은 심청을 수양딸로 삼고 싶어하며 공양미 300석을 대신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죽지 않고도 아버지가 약속한 공양미를 마련할 방법이 심청에게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심청은 이를 거절한다. 어째서일까? 웹툰 〈그녀의 심청〉은 이 질문에서 시작된 심청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다.
원전에서 심청은 수양딸이 되어달라는 승상 부인의 말을 거절하며 “길러준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만 대목에서 철학자 이진경씨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책 〈파격의 고전〉을 통해 심청의 결정이 효행이 아니라 오히려 ‘효를 부정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후 아버지는 혼자가 돼버렸고, 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 속에 괴로워했다. 심청이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심청전은 효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효가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텍스트라는 말이다.
웹툰 〈그녀의 심청〉 역시 ‘심청전’을 이루는 세계의 합리성에 관해 묻는다. 그러나 뒤를 잇는 질문은 달라진다. 이 작품의 관심은 효에 있지 않다. 〈그녀의 심청〉은 ‘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생산해 낸 세상의 구조를 파헤치는 데에 관심이 있다. 이 작품은 ‘심청전’의 여성 인물들을 다양하게 입체화하는 데 공을 들인다. 효를 포함한 각종 이데올로기와 성별 규범이 작동하는 방식과 효과에 관해 묻고 그것을 재현한다. 이것은 심청이라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세상을 보다 개연성 있게 재구성해보려한 시도이기도 하다.
원전에서 나이 지긋한 여성이었던 승상 부인은 웹툰 속에서는 오빠의 출세를 위해 늙은 승상의 재취 자리로 오게 된 젊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선택은 두 여성 간의 에로스적 만남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처한 처지가 계급에 따라 어떻게 다르거나 같은지를 섬세히 그려낼 수 있게 한다.
이 작품 속에서 승상 부인과 심청이 서로 죽기를 소망한 순간에 만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만남은 동질성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나로 살 수 없는 삶, 출구 없는 고통이 하루를 채운다. 그들이 겪는 갈등과 고난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규범을 벗어나려는 여성이기 때문에 온다. 이러한 젠더 규범은 현실사회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머리카락이 짧다거나 ‘메갈’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폭행을 당하는 일이 초현실이 아닌 세상이다. 남성 4명이 여성 2명을 폭행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당당함은 어떻게 구성되는가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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