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탄약고 속 '미끄럼틀과 사슴'..예술공간으로 바뀐 캠프 그리브스

홍진수 기자 2018. 8. 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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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명범의 ‘플레이그라운드 제로’(사슴). 경기관광공사 제공

탄약고 안 미끄럼틀과 그네, 미국군 막사 문을 열고 들어가 만난 북한군 소년병.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반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니 느낌은 또 달라졌다.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반세기 이상 미군이 주둔해온 경기도 파주 ‘캠프 그리브스’가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안보관광·군부대 체험이란 식상한 용도로 쓰이던 곳에 예술이 더해졌다. 특히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를 보러 방문했다가, 이런 반전을 만난다면 신선함을 2배로 느낄 수도 있겠다.

캠프 그리브스는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고작 2㎞ 떨어진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다. 이 때문에 단체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매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2004년 미군 철수 뒤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2007년부터 경기도가 안보체험시설 등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6년 방영된 <태양의 후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캠프 그리브스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2만명을 넘는다.

거기까지였다. 흔하지 않은 장소에 있는 흔한 관광지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DMZ 평화정거장 사업’을 시작하자 문화예술 공간이란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예술창작 전시는 평화정거장 사업 중에서도 핵심이다. 지난 8일 기자단 공개행사에서 만난 이은경 DMZ 평화정거장 예술총감독은 “캠프 그리브스가 품은 역사성을 살리면서 (그 상흔을) 문화예술로 중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명범의 ‘플레이그라운드 제로’(미끄럼틀과 그네). 경기관광공사 제공

올해 예술창작전시에는 김명범, 박찬경, 정문경, 정보경 등 초청작가 4인과 강현아, 박성준, 시리얼타임즈(강민준, 김민경, 송천주), 인세인 박, 장영원, 장용선 등 공모선정작가 6팀이 참여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명범의 ‘플레이그라운드’ 연작이다. 전쟁무기를 보관하던 탄약고 한곳에는 미끄럼틀과 그네를, 다른 한곳에는 박제된 큰 사슴을 설치했다. 작가가 아파트 철거 현장 등지에서 가져온 미끄럼틀은 남과 북으로만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미끄럼틀 위에는 항복, 영역표시 등을 상징하는 하얀 수건을 달았다. 실제로 캠프 그리브스에서 사용하던 수건이라고 한다.

나무만한 거대한 뿔을 달고 탄약고 한가운데 서있는 사슴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 뿔에 진짜 나뭇가지를 연결해 만들었다. 작가는 “어릴 때 사슴을 보고 동물과 식물이 합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며 “사슴의 비폭력적인 상징성도 주목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슴은 미국에서 왔다. 작가는 “한국에는 이렇게 큰 사슴이 살지 않아 미국의 흰꼬리 사슴으로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박찬경의 ‘소년병’. 경기관광공사 제공

박찬경의 영상 ‘소년병’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역사를 몸으로 쓰다’전에 이미 선을 보였던 작품이다. 그러나 과천의 미술관에서 전방의 미군기지로 전시장소가 달라지면서, 작품의 무게 역시 변했다. 미군 막사 안에서 북한 소년병이 노래하고 기타치는 영상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이전에는 12분짜리였던 것을 16분 분량으로 재편집했다.

시리얼타임즈가 만든 ‘117kb’. 경기관광공사 제공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게임같은 작품’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게임이다. 시리얼타임즈가 만든 ‘117kb’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유명한 게임 ‘지뢰찾기’를 관객이 마우스가 되어 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뢰를 건드리면 실제 지뢰 폭발 이후 생긴다는 이명소리가 막사를 가득 채운다. 이은경 감독은 “게임의 가벼운 속성과 전쟁의 무거운 주제 아래서 관람객은 행위의 주체가 되어 작품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 ‘117kb’는 1990년대 나온 지뢰찾기 초기버전의 파일 용량이다.

박성준의 ‘YOUR FLAME Ⅱ’. 경기관광공사 제공

박성준의 ‘YOUR FLAME Ⅱ’ 역시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다. 포연과 괴성이 가득한 공간에서 관객은 이라크전의 실제 총격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게 된다. 스크린 속 군인들은 총격을 받아 말 그대로 게임처럼 쓰러지고 소멸된다. 방심하던 관객은 이곳이 50여년전에는 전쟁터였음을 그때서야 실감한다.

강현아의 ‘기이한 DMZ 생태누리공원’. 경기관광공사 제공

캠프 그리브스 철조망 주변 산책로에는 처음보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불안함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신경쇠부엉이’, 지뢰가 인근에 있으면 잎끝이 빨갛게 변하는 ‘지뢰탐지 고비식물’, 등허리에 북방한계선,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처럼 줄무늬가 있는 ‘등털라인 산양’ 등 14종이나 된다. 물론 모두 가상의 동식물이다. 강현아 작가가 구성한 ‘기이한 DMZ 생태누리공원’이란 작품이다. 산책로 입구에는 동식물을 설명한 안내 책자까지 준비되어 있다.

탄약고에 설치된 놀이터와 사슴, 막사에 있는 북한군 소년병 영상은 내년 7월31일까지 볼 수 있다. 기이한 DMZ 생태누리공원, 117kb 등이 포함된 ‘평화의 정원’은 올해 10월31일까지 유지된다. 정비고와 스튜디오 BEQ에서는 오픈스튜디오, 아티스트 워크숍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함께 열린다.

폭염이 한풀 꺾이고 여름이 끝자락으로 접어들 때 한번 쯤 가볼만한다. 다만 개인이 차편을 이용한 관람은 매우 번거롭다. 주말에 임진각까지 오면 하루 3번 왕복하는 셔틀을 타고 예약없이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신분증은 필요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군 검문소를 통과하는 것부터가 이 색다른 전시의 시작이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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