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저널] 자동차공학과 기구학
운동을 통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의 부품 중에서 기계의 목적에 맞는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강체의 조합을 기구(Mechanism)라고 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엔진의 경우, 연소압에 의해 움직이는 피스톤의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을 바꿔주는 슬라이더-크랭크, 흡기와 배기 밸브를 여닫는 캠, 크랭크의 회전운동을 다른 부분으로 전달하는 벨트, 체인, 기어 등을 기구라고 하며, 자동차 엔진과 같이 아무리 복잡한 기계도 위와 같은 단순한 기구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자동차의 변속기, 현가장치, 차동장치 뿐만이 아니라 자동차를 생산하는 다양한 공작기계, 로봇 등도 기구학의 기여로 탄생된 기구이다. 본 고에서는 기구학(Kinematics of mechanisms)이라는 학문은 무엇이고 기구학이 자동차분야에서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구와 기구학
기구의 일반적인 정의는 기구를 구성하는 강체인 링크들이 조인트에 의해 연결되어 구속된 상대운동을 하며 입력 링크의 운동, 힘, 또는 토크 등을 다른 링크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이른다. 다른 학문과 달리, 기구학에서의 가정(Assumption)은 단 하나뿐이다. ‘기구를 구성하는 모든 링크는 강체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생각하면 문제 풀이에 가정이 하나밖에 없는 학문은 얼마나 쉬울까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여러 개의 가정 하에서 문제의 해를 구할 수 있는 학문분야에서는 풀이의 결과가 실제와 다르다면 사용한 가정에서 벗어난 경우라고 하면 되지만 기구학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기구를 강체로 가정하므로 기구를 구성하는 링크의 변형이나 조인트의 간극 등의 실제적인 사항을 고려하지 않는 기구학이 과연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기계를 설계함에 있어 기구학은 그 기계가 목적하는 운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최적의 골격을 찾아내어 설계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어 논리와 강력한 구동 장치가 있어도 기본적인 기구의 설계가 잘못되면 그리 효율적이지도 내구성이 높지도 않은 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윗몸 앞으로 굽히기’ 대회에 출전시킬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데 허리보다 다리가 긴 로봇을 만들어 놓고 열심히 허리를 굽히라고 명령해봐야 로봇도 허리만 아파하지 않을까?
기구학을 분류하면, 기구의 형태와 링크의 치수가 결정된 기구의 운동을 해석하는 기구 해석(Kinematic analysis)과 기구의 설계 조건이 주어지면 이를 만족하는 기구를 합성하는 기구 합성(Kinematic synthesis)으로 나눌 수 있으며, 기구 합성은 기구의 형태를 결정하는 형태(Type) 합성과 형태가 결정된 기구에 대해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만족시키는 각 링크 치수를 결정하는 치수(Dimensional) 합성으로 나뉜다.
기구 해석
기구 해석과 관련하여 기구학이 자동차분야에서 가장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은 3차원 운동의 해석과 설계 기법의 적용이 필요한 현가장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가장치가 공간운동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에 2차원적인 방법으로 정의된 현가장치 관련 용어가 아직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 전에 자동차회사에서 현가장치설계를 담당하는 분과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분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자동차회사에서는 그동안 쌓아 놓은 현가장치에 대한 많은 Know how가 있으나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축적된 2차원적인 정보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우리는 제대로 된 3차원 운동 해석에 기반한 현가장치를 설계할 수 있다.” 그 후 그 분은 멀티링크형 전륜 현가장치와 독자적인 능동 현가장치 등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반적인 3차원 공간 운동은 한 축에 대한 회전운동과 동일한 축에 대한 병진운동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축을 스크류(Screw) 축이라고 하며, 이에 관한 스크류 이론을 이용하면 공간운동을 쉽게 표현할 수 있고, 따라서 공간운동기구의 이해와 해석, 더 나아가 3차원 공간운동 기반 설계가 가능하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이제 웬만한 기구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그 운동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구 운동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면 더 좋은 설계에 기여할 수 있다.
기구 합성
기구학이 자동차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으로는, 설계하고자 하는 기구의 자유도, 기구의 복잡성, 사용 가능한 조인트의 종류 등의 조건이 주어지면 이를 만족하는 기구의 형태, 즉 몇 개의 링크가 어떤 종류의 조인트에 의해 어떻게 결합되어 기구가 구성되어야 하는가를 찾아내는 기구의 형태 합성이다. 만약 우리가 다빈치와 같이 천재적인 창의성이 있다면 기구를 스케치해가며 새롭게 개발하고자하는 기구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체계적인 형태 합성법을 이용해야 한다.
새로운 기구의 형태 합성을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기구학적인 그래프(Graph)를 이용하는 것이다. 기구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링크는 점으로, 링크와 링크를 연결하는 조인트는 선으로 나타내어–기구를 구성하는 링크의 길이나 형상에 상관없이–기구의 형태를 결정하는 링크의 연결성을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림 1> (a)는 기어 5절 기구의 기구 선도로 5개의 링크와 6개의 조인트로 이루어진 기구이다.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그림 1> (b)와 같이 기구를 구성하는 링크와 조인트, 링크의 연결성, 기구가 갖는 독립 루프의 수 등이 표현된다. 만약 이와 반대로 <그림 1> (b)의 기구 그래프가 주어지면 그래프에 표현된 링크의 연결성과 조인트 정보를 이용하여 <그림 1> (a)의 기구 형태를 찾아낼 수 있다. 이와 같이 기구의 그래프는 기구의 형태를 찾아낼 수 있는 일종의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합성하고자하는 설계 조건에 맞는 그래프를 모두 열거하고 이를 이용하면 새로운 형태의 기구를 찾아낼 수 있으며, 기존의 특허가 존재하는 기구의 경우에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면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적용한 하나의 예로, 다양한 체형의 운전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운전자의 체형에 따라 브레이크 페달의 위치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절식 브레이크 페달 기구(Adjustable pedal apparatus)를 설계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설계하고자하는 기구는 운전자가 페달을 밟는 입력과 페달의 위치와 방향 조절을 위한 입력이 독립적으로 필요하므로 2자유도 기구가 되어야 하고, 평면운동기구로 구현이 가능하다. 기구의 복잡성을 나타내는 독립 루프의 수를 2개로, 사용할 수 있는 조인트를 1자유도를 허용하는 회전(R) 조인트와 병진(P) 조인트로 제한하면 링크의 수는 7개, 조인트의 수는 8개가 되어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도록 열거한 그래프의 일부와 열거된 그래프를 이용하여 형태를 도시한 기구는 <표 1>과 같다. 형태를 찾아낸 기구 후보 중에서 구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적합한 형태를 선택하고 체형이 서로 다른 운전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위치 조절이 가능한 치수 설계를 한 후에 기구학적 해석 및 근전도(EMG) 검사 등을 통한 효용성 확인 절차를 거쳐 출원한 특허 기구는 <그림 2>와 같다. 이와 같은 체계적인 기구 형태 합성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구를 도출하고, 도출된 기구에 대한 치수 합성과 해석을 통해 최적의 기구를 설계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자동차 엔진용 연속가변밸브(Continuously variable valve lift)기구 등과 같은 자동차 관련 다양한 기구에 대한 형태 합성도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개발이 가능하다.
본 고에서는 기구학이라는 학문과 이의 간단한 응용 사례에 대해 알아 보았다. 기구학은 기계 설계의 초기 단계에서 설계하고자 하는 기구가 갖추어야할 적합한 형태를 결정해 줄 수 있고, 다양한 해석과 설계 기법의 적용을 통해 기계가 구현해야하는 본질적인 운동의 구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학문으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자동차공학 분야에 앞으로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학문 분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