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자마자 찢겨진 15억원짜리 뱅크시의 그림, 왜?
[경향신문]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 마지막 순서로 영국의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의 2006년작 ‘풍선과 소녀’ 그림이 소개됐다. 두 명의 전화 입찰자가 경쟁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당초 20만~30만 파운드 선에서 팔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경매 수수료를 포함해 총 104만 파운드(약 15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뱅크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비싸게 팔린 편에 속했다.

예상 밖의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낙찰봉 소리와 함께 작품 아랫부분이 찢겨 액자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작품’을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뱅크시는 “진행 중, 진행 중, 완료(Going, Going, Gone)”이라는 인스타그램 글을 남기며 그림을 파쇄한 이가 작가 본인임을 넌지시 알렸다.
논란이 이어지자 뱅크시는 다음날 액자 안에 원격조정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공유하며 “몇 년 전 그림이 경매에 부쳐질 경우를 대비해 액자 안에 몰래 파쇄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파괴의 욕망은 곧 창조의 욕망이기도 하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도 덧붙였다. 작품 파손이 작가의 의도이자 작품의 일부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뱅크시는 지난 수십 년간 대중 앞에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2007년 영국 우체국 건물에 “CCTV 아래 하나의 국가”라는 낙서를 남기는 등, 주로 기성 체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뱅크시가 유명해지면서 건물주들이 그가 거리에 남긴 벽화들을 고가에 파는 일도 늘기 시작했다. 뱅크시는 2013년 뉴욕타임스에 “애초에 판매 목적으로 창작된 것이 아니라면, 그래피티가 원래 속해 있는 길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무도 그것들을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그림이 상업적으로 사고팔리는 데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작가의 소신과는 달리 작품 가치는 파쇄 이후 오히려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전세계 언론의 이목이 쏠린데다, 작품의 ‘자기파괴’라는 점에서 예술사적 가치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워싱턴포스트는 런던의 한 온라인미술품경매 사이트 관계자를 인용해 “작품 가치가 최소 50%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더비 수석디렉터 알렉스 브란크칙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뱅크시당한 것 같다(It appears we just got Banksy-ed)”며 “경매 역사상 작품이 스스로를 찢어버리는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낙찰자의 신원은 공개할 수 없지만 “작품을 낙찰받은 사람은 개인 수집가이며 다음 단계를 논의 중”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파쇄 장치가 내장된 액자가 경매 전문가가 알아차릴 정도로 두꺼웠고, 작품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연단이 아니라 벽에 붙어 전시됐다는 점을 들며 소더비 측이 파쇄기 설치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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