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추상미술'에 감동하는 까닭 [책과 삶]

김유진 기자 2018. 12. 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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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ㆍ에릭 캔델 지음·이한음 옮김
ㆍ프시케의숲 | 252쪽 | 1만8800원

바야흐로 통섭의 시대라지만, ‘미술과 뇌과학’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는 것만 같다. 꿈틀대는 본능과 감성이 좌우하는 예술, 그리고 냉철한 이성과 회의에 기반한 과학.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시각 처리의 초기 단계(V1)를 나타내는 그림. 시지각 경로는 크게 ‘어디경로’와 ‘무엇경로’의 두 가지로 나뉜다. 편도체와 시상하부, 도파민 경로는 시각적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감정 반응에 관여한다. 가쪽 뒤통수엽에서는 시각과 촉각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프시케의숲 제공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미술과 뇌과학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도 없다. 미술은 인간의 여러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주로 자극한다. 눈앞의 미술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느낀다. 때로는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이미지와 비슷한 것처럼 연상되기도 한다.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캔델(컬럼비아대)은 뇌과학과 미술, 특히 현대 추상미술과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둘 다 인간 경험의 특성을 연구하는 인문학의 질문과 목표를 공유한다는 까닭에서다. 캔델은 2016년 미국에서 출간된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원제 Reductionism in Art and Brain Science)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뇌과학도 인간 존재의 가장 심오한 문제들에 답하려고 애쓴다”는 점과 “추상화가들도 과학자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방법론을 써서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뇌과학과 추상미술을 잇는 열쇳말은 ‘환원주의’다. 과학적 방법론으로서의 환원주의는 “가장 단순한 표현 형태를 탐구해 유달리 복잡한 문제를 푸는 전략”으로 정의된다. 환원주의는 20세기 현대 물리학과 생물학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20세기 중반, 생물학자들은 단세포 생물인 세균을 연구하면서 유전자와 DNA(특히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고, 생명의 비밀을 해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단순한 표현 탐구해 복잡한 문제 푸는 과학의 환원주의 개념 투영 보이는 대로 그리는 구상미술과 달리 뇌로 감상하며 창의적 이해 감성적 예술과 이성적 과학의 이질적 조화, 인문학적 소양도 확장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뇌과학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저자는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인데, 군소(바다 달팽이) 신경회로 연구로 학습과 기억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군소의 신경세포는 약 2만개로, 사람의 신경세포가 뇌에만 1000억개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단순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군소 내에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신경세포를 하나씩 정확하게 따져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면 기억이 형성되는 원리, 학습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보편적 원리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세포와 분자 수준에서 기억의 토대를 이해한다면, 자아의 본성을 이해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인간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활동인 학습과 기억을 좀 더 잘 이해할수록,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이해도 확장된다는 뜻이다.

피터르 몬드리안 작품의 시기별 변화를 보여주는 세 작품

‘구성 II 선과 색’(1913)
‘구성 III, 빨강, 파랑, 노랑, 검정’(1929)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 프시케의숲 제공

그렇다면 기초적인 구성 요소를 통해 전체를 설명하는 환원주의적 태도가 미술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20세기 들어 대두한 추상미술은 사물이나 사람을 보이는 대로 재현하려는 구상미술과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보인다. “이미지를 형태, 선, 색, 빛이라는 본질적인 요소로 환원함으로써 시각적 재현의 본질을 탐구”한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은 특히 1940~50년대 뉴욕을 거점 삼아 활동한 뉴욕학파 화가들의 작품 세계에서 두드러진다.

네덜란드 출신의 피터르 몬드리안은 초기 추상화가 중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환원주의를 채택한 화가다. 몬드리안은 처음에는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브라크 등 입체파들의 영향을 받아 대상을 기하학적으로 탐구하고 주변과 엉켜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다가 1913년작 ‘구성 Ⅱ 선과 색’에 이르면 직선과 최소한의 색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에 있는 그 어떤 형상도 참조하지 않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 단순한 기하학적 형상에 토대를 둔 새로운 미술 언어”를 개발한 것이다.

몬드리안은 이후 ‘구성 Ⅲ, 빨강, 파랑, 노랑, 검정’(1929)이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에서 형태는 물론 색에까지 환원주의적 전망을 밀어붙인다.

몬드리안 작품을 특징짓는 수직선과 수평선은 뇌과학의 눈으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뇌의 1차 시각 피질(V1)은 망막을 통해 인체에 들어온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문이다. 1959년 뇌과학자들은 이곳의 신경세포가 특정한 방향으로 놓인 단순한 선과 모서리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자는 “이 선들은 형상과 윤곽의 구성단위”라며 “뇌의 고등한 영역들은 이 모서리와 각을 기하학적 모양으로 조립하며, 그것이 바로 뇌에서 표상되는 심상”이라고 설명한다. 1차 시각 피질은 ‘어디경로’와 ‘무엇경로’의 두 가지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후자는 사물이나 얼굴, 색깔 등 미술 감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무엇경로의 최고 수준에서는 주의, 기대, 연상, 기억, 학습과 같은 고차원적인 정신 기능과 관련된 ‘하향 처리’가 일어난다. 하향 처리는 미술 감상자가 미적 감동을 느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잭슨 폴록의 ‘32번’(1950) 프시케의숲 제공

‘행위화가’로 분류되는 빌럼 데 쿠닝이나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환원주의가 나타난다. 쿠닝은 1950년 그린 ‘발굴’에서 형상과 인물의 경계를 지우고, 화폭 전체에 율동적인 선을 그려 넣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 쿠닝은 붓질의 속도를 변화시켜 추상화에 질감을 부여한다. 쿠닝과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활동한 폴록은 캔버스에 물감을 쏟아붓는 ‘액션페인팅’을 창시하면서 예술 창작 과정 자체를 전달한다. 저자는 폴록의 대표작 ‘32번’(1950)을 두고 “우리 눈이 질서를 찾아서 화폭 전체를 훑으면서 몇 가지 방향을 선택해 따라갈 자유를 준다”며 “내 마음에 결코 끝나지 않을 심상 전쟁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고 적는다. 마크 로스코는 이미지를 아예 색으로 환원했다.

뇌과학이나 환원주의를 통해 미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혹시 제대로 된 감상을 저해하지는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때때로 난해하게 느껴졌던 현대미술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뇌과학에 대한 흥미마저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과학자이면서도 인문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교양인답게, 평이한 언어로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그는 추상미술이 “미술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추상미술에는 감상자의 몫이 있고, 감상자와 함께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저 평면적인 직사각형에 불과해 보이던 로스코의 그림을 보다가 목구멍에서부터 뜨거움이 밀려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저자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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