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우리 선수] ④ 김종건 서울 오주중학교 감독 & CB 안은영

(베스트 일레븐)
환호와 박수가 없어도
축구하는 게 행복한 소녀
2010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 여자 축구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2010 FIFA U-20 여자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했고, 이어 열린 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선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그 덕에 한국 여자 축구의 인기는 높이 치솟았다. 그해 여름, 뜨거운 여자 축구를 만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 여자 축구 지도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기자님, 따님 축구 시킬 생각 있으세요?” 그 질문에 즉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렇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여자 축구는 홀대받고 있다. 그래서 여자 축구 선수는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 냉엄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묵묵히 축구화를 신는 소녀가 있다. 서울 오주중학교의 대들보 안은영이다.
“축구가 좋았어요.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도 자주 갔고요. 보는 축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머잖아 하는 축구를 시작했죠. 아, 선수로 바로 시작한 건 아녜요. 클럽 축구팀에서 취미로 했어요. 물론 제 주변 여자 친구들 중에 축구하는 건 저밖에 없었고요.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축구가 좋았으니까요.”
안은영은 주말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옆 보조 구장에서 열린 클럽 축구에 참가했다. 축구만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럽 축구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남자의 눈에 안은영이 포착됐다. 그 남자는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여자 축구부가 있는 우이초등학교 감독이었다. 그는 또래보다 월등한 안은영의 축구 실력과 파워에 반했다. 안은영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었다.
“처음에는 부담도 크고, 걱정도 많이 됐죠. 정식 축구 선수를 하는 거였으니 당연했죠. 무엇보다 그저 놀이로만 축구를 즐기던 제가, 선수로서도 잘할 수 있느냐가 걱정이었어요. 솔직히 그때는 자신 없었어요. 기본기가 많이 부족했으니까요. 그런데 다행히 부모님께서 응원해 주셨어요. 제 도전을 믿어주셨어요.”
앞서 어느 축구 감독의 질문에 즉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자신의 딸이 여자 축구 선수의 길로 접어든다면, 선뜻 허락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안은영의 부모님은 아니었다.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아니 환영했다. 축구를 좋아하고, 그 길로 가겠다는 딸을 응원했다. 안은영은 축구 선수를 시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부모님의 반대가 아닌 응원과 함께 출발했다. 축구를 좋아해 선수에 도전하겠다는 소녀의 다짐도 기특하지만, 그런 딸의 도전을 두 팔 벌려 환영한 부모도 칭찬받을 만하다.

“처음엔 기본기를 연마하는 데 모든 걸 쏟았어요. 특히 리프팅 연습을 많이 했죠. 일단은 공과 친해져야 했으니까요. 혼자서 정말 많이 훈련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아빠가 고등학교까지 축구 선수를 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학교 훈련이 없는 날이면, 항상 아빠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나갔죠. 거의 매일 그랬어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초등학교 6학년 때엔, 기본기를 갖춘 힘 좋은 센터백으로 성장했다. 스피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었지만, 다른 것들은 ‘선수’란 호칭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이 됐다. 1년 만에 그 정도로 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스스로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서울 오주중학교로 진학했어요. 지소연 선배가 나온 학교죠. 중학교로 진학하니까, 선배들이 정말 축구를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욕심이 발동했죠. 선배들만큼 잘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선배들의 특징을 파악한 뒤,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정말 노력 하나는 대단하다. 안은영은 중학교 진학 후 선배들을 따라잡기 위해 관찰과 연습을 병행했다. 예를 들면 중거리 슛을 잘하는 선배가 있으면, 그 선배를 잘 관찰한 후 열심히 따라 하는 것이다. 그 선배처럼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노력은 빛을 발했고, 안은영은 어느덧 오주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수비수로 성장했다. 지금은 중앙 수비수는 물론이고 측면 수비도 볼 수 있으며, 공격 상황에서는 코너킥과 프리킥을 전담하기도 한다. 만능 축구 소녀가 된 셈인데, 이게 다 노력 덕이다.
“꿈이요? 계속 축구할 수 있는 거예요. 실업 선수가 되고 싶고, 국가대표도 하고 싶고, 은퇴 후에는 축구 행정가나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하여튼 계속 축구랑 있고 싶어요. 참, 제 여동생이 지금 우이초 6학년인데요, 걔도 축구를 해요. 포지션도 수비수고요. 자매 축구 선수인 셈이죠. 그런데, 저보다 동생이 좀 더 잘하는 것 같아요. 하하.”

남자 축구에서 시작하고,
여자 축구에서 완성하다
김종건 서울 오주중학교 감독은 현역 시절 기술과 체력을 겸비한 수준급 미드필더였다. 1980년대 중반,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울산은 국가대표급 자원이 즐비한 팀이었는데, 그곳에서도 당당히 주전을 꿰차며 이름 꽤나 날렸다. 그러나 지도자가 된 지금, 김 감독이 있는 곳은 남자 축구가 아니다. 여자 축구다. 시작부터 여자 축구였고, 지금까지도 줄곧 여자 축구다.
“제가 울산에서 차범근 감독님 밑에 있었어요. 은퇴할 즈음에 차 감독님께서 울산 현대고등학교에 여자 축구부가 창단하는데, 그곳에 갈 생각 없냐고 물으시더군요. 차 감독님 권유니 따랐죠. 그렇게 시작됐어요. 여자 축구와 인연. 그곳에서 7년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오래 있었죠.”
처음엔 그렇게 오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부터 선수 생활을 하는 이가 많지 않아서,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어떤 선수는 인사이드 패스도 몰랐단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르쳐야 했다. 패스할 때 발목 쓰는 법부터 말이다. 남자 프로축구 무대를 휘젓던 김 감독의 성에는 안 찰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반대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도해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걸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발전하는 제자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 것이다.
“현대고를 나온 뒤엔 남자 선수들을 좀 지도하고 싶었어요. 여자 선수들은 해봤으니까요. 그래서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 들어갔죠. 그곳에서 연령별 남자 대표팀 선수들을 가르치거나, 유망주들을 지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들어간 직후, 유소년 여자 파트가 생기더군요. 우수한 여자 선수들을 대한축구협회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거죠. 제가 현대고에서 여자 선수들을 가르쳤단 이유로, 여자 유소년 전임 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렇게 다시 여자 선수들 곁에 머물게 됐다.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 여자 유소년 전임 지도자 임무를 마친 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지금의 오주중이었다. 서울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여자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에서, 그를 부른 것이다.
“돌아보면 20년이 넘은 것 같네요, 여자아이들을 지도한 지 말입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있을지 몰랐어요. 아마 여자 축구 지도자 중에서는 제 또래도 별로 없을 겁니다. 시간이 그만큼 많이 흘렀네요.”
오주중은 여자 축구 중학교계의 강자다. 과거 지소연과 김혜리 등을 배출했고, 지금도 대표급 선수를 꾸준히 성장시키고 있다. 특히 지소연과 김혜리가 호흡을 맞췄을 때는 전국 대회에서 적수가 없었다. 전국 대회 전관왕이나 60연승 돌파 등이 당시 오주중이 세운 기념비적 기록이다.
“요즘요? 요즘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약해졌죠. 그때는 적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1등은 아닌 거 같아요. 솔직히 지금은 울산에 있는 현대 청운중학교가 조금 더 잘하는 거 같습니다. 제가 분발해야죠. 하하.”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여자 축구의 현실은 열악하다. 금전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주위 환경도 계속 나빠져만 간다. 특히 정부에서 공부하는 축구 선수 육성을 외치면서 합숙 및 기숙사를 없애고 있는데, 서울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주중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못 하게 되면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남자 선수들이야 고등학교 축구부가 곳곳에 많아 선택지가 많지만, 여자 선수들은 오주중 하나라 좋든 싫든 이곳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도 이 때문에 요즘 참 많이 괴롭다.
“걱정입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인데, 기숙사가 없으면 축구를 하기 위해 몇 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야 할 수 있어요. 정부 정책은 적극 동의하지만, 여자 축구가 처한 현실을 좀 고려해줬으면 해요. 참,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남종현 그래미 회장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 회장님께서 매년 우리 축구부를 후원해 주시거든요. 저희는 딱히 해드리는 것도 없는 데, 정말 고마우신 분입니다. 이 얘기 꼭 좀 전해 주세요.”
김 감독은 남 회장이 오주중 여자 축구부에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남 회장은 과거 강원 FC 대표이사를 맡아 국내 축구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남 회장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축구계에 헌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좋은 선수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긴 한데요, 그래도 미디어를 통해 나가면 더 경각심을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기초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해요. 기초는 중학교 때 완성해야 합니다. 축구를 기능적으로, 전술적으로 잘하는 건 고등학교 이후에도 늦지 않아요. 하지만 기초는 지금 아니면 안 됩니다. 우리 선수들, 아니 다른 선수들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네요.”
고마운 남 회장에게 그리고 지금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한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축구 팬, 나아가 국민들을 향해서도 입을 열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신나게 축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작은 관심입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시면, 여자 축구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겁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 ‘우리 팀, 우리 선수’는 유명하지 않으나, 한국 축구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우리 주위의 팀과 선수를 찾아 조명하는 코너다. 지금은 음지에 있는 그들이 성장해, 언젠가 밝은 양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담았다./ 편집자 주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안은영·김종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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