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알고 있다, 연구실에서 재떨이 던지는 괴물을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ㆍ61개 대학 4500명 교수 정보 등록, 잔잔한 파문 던지는 ‘김박사넷’…교수 갑질 대학원 사회, 을의 반란
재떨이가 날아왔다. 재떨이에 맞은 사람의 반응은 무엇일까. 1번 화를 낸다. 2번 신고한다. 3번 맞받아 던진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돈을 모아 전자담배를 선물했다. ‘아니, 뭐 이렇게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어를 찾아보자. 재떨이를 던진 자는 대학교수, 날아온 재떨이에 전자담배를 바친 자는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이다. 2015년 제자에게 똥을 먹인 교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덜 놀랄 수도 있다. ‘갑질 교수’의 존재는 그만큼 익숙한 얘기다.
전자담배를 받은 교수는 재떨이 던지기를 멈췄을까. 혹시 다른 것을 던지진 않았을까. 연구실 밖 사람들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어떤 연구실에 재떨이를 던지는 괴물이 서식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곳에 지원하는 학생 수는 크게 줄 것이라는 점이다. 탄생 10개월 된 교수평가사이트 ‘김박사넷(www.phdkim.net)’이 대학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다.
김박사넷은 지난 1월25일 문을 열었다. 학생들의 알 권리를 위해 각 대학 교수별 평가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이다. 연구실적과 실질인건비, 학위를 따기까지의 기간, 지도교수의 성품 등 지인이 입소문으로 전해주기 전엔 알기 어려운 정보를 보여주며 누적 방문자 수 45만명을 넘었다.
교수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평가한 ‘한줄평’ 콘텐츠는 환호와 우려를 동시에 받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재떨이 교수’의 일화 역시 김박사넷의 한줄평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사회의 지성을 대표해야 할 대학 연구실에는 2018년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가 집약돼있다.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 갑질, 인맥사회, 제값을 받지 못하는 노동 등. ‘교수도 평가받아야 한다’며 김박사넷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견고한 상아탑에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을까. 김박사넷 논란을 통해 대학사회의 오늘을 짚어봤다.
김박사넷에서 교수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름을 검색하면 해당 교수 페이지가 뜬다. 교수의 사진과 소속, e메일, 홈페이지 정보가 공개돼 있다. 인적 정보 옆에는 교수와 연구실에 대한 평가 정보가 있다. 평가 정보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연구실적과 졸업생 정보 등 객관적 데이터, 다른 하나는 대학원생들이 직접 평가한 주관적 데이터다.
“교수도 평가받아야 한다” 대학원생들이 쏘아올린 촌철살인 ‘한줄평’
■ 김박사넷은 알고 있다
객관적 데이터는 김박사넷 운영진이 입력한다. 최근 5년을 기준으로 교신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수(교수가 연락 가능한 저자로 이름을 등재한 논문), 피인용 횟수(다른 논문에 레퍼런스로 인용된 수), 박사졸업생 수, 졸업까지 필요한 평균학기 수 등을 공개하고, 이를 종합해 동일계열의 다른 연구실과 비교한 그래프로 표시한다. 그래프 속 초록점의 위치에 따라 연구실의 수준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평점과 한줄평은 대학원생들이 익명으로 작성한다. 평점은 연구실 분위기, (교수의) 인품, 실질인건비, 논문지도력, 강의전달력 등 5개 항목으로 나뉘어 A+부터 F까지 ‘채점’한다. 평점은 오각형 그래프로 표시된다.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볼 수 있다.
히트작은 단연 한줄평이다. 교수홈페이지나 학교홈페이지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생생한 평가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서울대 공대 소속 ㄱ교수 한줄평엔 연구실의 일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돼있다. “근무시간 오전 8시~오후 10시, 토요일 랩미팅 후 오후 12시 퇴근. 휴가 없음, 대체공휴일 휴무 없음, 학회 지원 X·사비등록, 학생운전수 역할, 교수 가족에 관련된 일·사적인 심부름.” 같은 대학 ㄴ교수 한줄평은 이렇다. “프로젝트로 돈을 정말 많이 버시지만 학생들은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요구하심. (사례 : 택시 같이 타도 학생들이. 놀러 가서 술값은 각출).”
연구 실적 등 객관적 데이터 운영진이 입력
학생들은 익명으로 해당 교수 평가 연구실 분위기·인품·실질 인건비 등 5개 항목 A+에서 F까지 채점
힘든 생활을 에둘러 표현한 한줄평도 많다. “당신의 삶은 소중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버킷리스트가 인생 낭비라면 지원하세요.”
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카이스트 전산학부 김주호 교수의 한줄평은 칭찬 일색이다. “수업, 연구지도, 인품, 유머감각, 영어 실력 등등등 흠잡을 곳이 없음…완벽 그 자체” 등등.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 페이지도 좋은 평만 가득하다. “다른 교수들과 달리 평소에 공부하시는 티가 팍팍 남. 논문지도력이 특장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몇 안되는 참 과학자임” 등등.
TV 출연과 대중강연으로 유명한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의 한줄평엔 비판과 칭찬이 엇갈린다. “교수님이란 직위를 이용해서 학생들을 더 아래로 취급하거나 이런 거 전혀 없으시고 정말 자상하세요.” “TV에서는 자주 볼 수 있으나 연구실에선 보기 힘들다.” “장점 : 대내외적으로 유명하다, 단점 : 대내외적으로 유명하다.” ‘본인 연구는 잘하지만 연구지도는 못한다’ ‘교수는 좋은데 연구실에 갑질하는 선배가 있다’ ‘인건비를 잘 챙겨주지만 학생을 편애한다’ 등 소소하지만 어디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정보들도 많다.
한줄평의 내용이 사실인지 허위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한줄평 작성은 해당 연구실을 이미 떠난 학생도, 옆 연구실 학생도 할 수 있다. 한줄평을 작성한 e메일 정보는 ‘김박Ⅱ사넷 익명로직’ 시스템에 따라 작성 즉시 암호화되기 때문에 누가 썼는지 운영진도 알 수 없다. 해당 교수가 지워달라고 요청하면 삭제하지만, ‘이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블락처리되었습니다’라는 글은 빨간색으로 남겨둔다. 최근 허위장부를 만들어 연구비 수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한 교수 페이지는 모든 한줄평이 빨간색으로 블락처리돼있다.
한줄평에 빨간 줄이 많을수록 해당 교수에겐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을 수밖에 없다. 김박사넷 운영진에 따르면 악평과 호평은 5 대 5 정도다.
『-특별한 교수님: 연구실 보다 TV를 자주 보는 교수님 장점: 대내외적으로 유명하다 단점: 대내외적으로 유명하다 TV에서는 자주 볼 수 있으나 연구실에서는 보기 힘들다.
-정신 수련에 도움을 많이줌. 웬만한 일에는 멘탈이 흔들리지 않게됨. 부임하시고 6년동안 랩 나간 사람들로만 축구팀 창단 가능, 과학계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이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블락처리 되었습니다
-연구에 큰 뜻을 품고 온 사람들이 학문을 그만두고 돈을 벌러 가게 해주심.프로젝트로 돈을 정말 많이 버시지만 학생들은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요구하심 (사례: 택시같이타도 택시비는 학생들이, 놀러가서 술값은 각출)
이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블락처리 되었습니다
-정말 다좋다. 돈도 많이 받고 교수님도 성격도 좋으시고 자립심 까지 키울 수 있다.석사과정도 혼자서 모든것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한다.
-장점이라면 풍족한 연구비와 좋은 시설. 좋은 평판. 단점이라면 의미없이 유사논문 찍어내는 공장 같다는 점, 그리고 겉과 속이 많이 다른 교수. 얼마전 기술이전 많이했던데 솔직히 뒷감당 어려워 보임.
-분야의 특성이 랩분위기와 퍼포먼스에 영향을 많이 주는 곳. 흥미롭고 중요한 분야이지만, 정말 오래 걸림. 졸업 스트레스 누적->전체적으로 분위기 해침. 교수님의 본심은 좋으신 듯 하나, 일 문제로 종종 심한 독설이 나오심. 인건비 적음. 학생 모두를 micro control하는 세심함과 지도력은 생명과 내탑급. 하지만 학생을 잘 믿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않음. 논문 완성을 위한 본인의 기준이 너무 높아 추가 실험이 많아져 학생들이 지치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짜증 좀 그만 냈으면...
-수준 미달들조차도 다독여 이끌고 가는 성향은 아니지만.인성 쓰레기 소리들을 정도는 아님.학생에게 너무 많은걸 바라긴 하지만..그 기대치에 부응하려고 노력한 극소수는 IF10~20내고 졸업함. 못 견디고 나간 학생과 졸업생의 성과를 비교해 보길. 연구실 분위기는 좋다. 인건비도생명과학과나 다른 의과학대학원 소속 연구실과 비교했을때 꽤 많이 주는 편이다. (물론 공대랑은 비교 불가) 인품과 논문지도력은 생략하겠다.
-연구인프라는 최고인 듯. 학생들 사이의 분위기 좋은 편이고, 졸업생들이 대부분 잘 풀림. 인건비, 연구실 분위기 좋고,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주심...그만큼 대학원생들에게 논문 실적에 대해 압박을 많이 함. 보통 박사 3.5년 또는 4년에 졸업함.
-커뮤니케이션이 힘듭니다. 말씀을 드려도 학생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를 잘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아하고 더 공부하고 싶던 분야였는데 계속할 자신도 열정도 사라진 상태입니다.어떤이유로 뽑혔든 오지마세요
이 한줄 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삭제되었습니다
-연구실 실험 장비는 잘 갖춰져 있는 편이지만 절대 가면 안되는 연구실, 연구실 학생들끼리는 좋다고 홍보하는데 옆에서 지켜본 결과 속지 마세요.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심. 존댓말로 학생에게 말씀하시는거 보면 누구나 다 앎
-지금 없는거 알지만 과거에 인건비 반납한 적 분명히 있었음. 업데이트 안된 졸업생이라면 남길 수 있는 코멘트라고 생각함. 연구실 사람들은너무 빡쳐하지 말기를. 사실은 사실이었으니. 참고로 그시절에 출장비도 실비 빼고 회수했음.
-지도가 없어 자생력을 키우기 좋은 연구실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함. 인생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시는 지도력.
이 한줄 평은해당 교수의 요청으로 삭제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어서 졸업하고싶다.
이 한줄평은 해당 교수의 요청으로삭제되었습니다
-도망가세요. 졸업하기 정말 힘든 연구실입니다......상당히 좋아보이는 교수님인데 이상하게 실적이 있는 연구실 학생들은 다 나갔음』
■ 마녀사냥 VS 오죽하면
반응은 뜨겁다. 처음엔 서울대 공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등의 이공계 학과 관련 정보만 제공됐으나, “우리 학교, 우리 교수도 추가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면서 지난 16일 기준으로 61개 대학, 4500명 교수의 정보가 등록됐다. 한줄평은 6760건을 넘겼다. 인문대, 경영대, 의대, 예술대까지 확장됐다.
하이브레인넷, 브릭 등 연구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김박사넷을 두고 몇달째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하이브레인넷의 한 회원은 “교수에 대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태다. 교수 개인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없는 세상”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에 숨은 무차별 인신공격이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회원은 “교수 한 명 바보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비판했다. “민·형사상 손해배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교수협의회에서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카더라~’로 들은 이야기를 실제 경험한 것처럼 써도 이를 걸러내기 쉽지 않은 데다, 짧은 몇마디로 교수의 업적부터 인성까지 평가하는 것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브릭에는 “김박사넷은 폐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옹호하는 쪽 역시 인권을 말한다. 물론 학생들의 인권이다. 하이브레인넷의 한 회원은 “한국처럼 대학원생 권익보호 시스템이 미흡한 경우 교수에 대해 모르고 들어갔다가 인격 모독·학대당하고 노예처럼 부려지다 심하면 학위도 못 받는 경우도 봤다”며 “단순히 명예훼손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언로를 닫으면 닫힌 사회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을 ‘이제 10년차 되는 교수’라고 밝힌 한 회원은 “그만큼 문제 있는 교수들이 많다는 소리”라며 “저희 학과에도 몇년 전까지 술 마시고 대리기사로 대학원생을 부르고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교수가 있었고, 학생 인건비를 횡령하는 교수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고 썼다. 또 다른 회원은 김박사넷 논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오죽하면 김박사넷이 생겼을까요.”
학교 홈페이지선 볼 수 없는 생생한 평가 학생들은 ‘히트작’ 환호하지만 교수들 커뮤니티선 ‘갑론을박’ 중
인신공격 반발 있지만 “오죽하면 생겼을까” 의견도
김박사넷의 파급력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한 공대 교수는 “적어도 제가 아는 교수들은 김박사넷의 존재들을 다 알고 있지만, 교수들끼리는 절대 김박사넷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안 좋은 평가를 받는 분들이 꽤 많기 때문에 김박사넷을 알고 있다고 티를 내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라며 “저도 제 평가를 찾아봤고, 아마 다른 교수들도 굉장히 신경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연구실 학생들을 시켜 ‘조작’에 나섰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김박사넷 게시판에는 “학과장 주도로 한줄평 조작 지시가 내려왔다” “교수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남겼다” 등의 글이 올라와있다. 악평 일색이던 교수의 페이지에 최근 들어 갑자기 호평이 올라오는 경우도 목격할 수 있다.
조작으로 의심되는 한줄평을 조롱하거나, 기계적인 칭찬으로 이뤄진 한줄평 아래 “행간을 읽읍시다”라는 댓글로 해당 한줄평을 의심하는 글도 볼 수 있다. 김박사넷 운영진은 “교수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연락도 여러 건 받았다”고 말했다.
■ 폐쇄적인, 너무나 폐쇄적인
김박사넷 논란은 한국 대학사회 특유의 폐쇄성과 맞닿아있다.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지만, 학생은 입학 전 교수나 연구실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기 어렵다. 학기당 얼마의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몇학기를 다녀야 학위를 딸 수 있는지도 전적으로 교수 재량이다. 그나마 정보공개 추세가 강화되면서 논문실적은 교수홈페이지나 논문공개사이트 등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연구실의 리얼라이프’는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학생인 동시에 노동자인데…임금·노동시간 등 ‘특급비밀’ “얼마 받을 수 있나요” 묻는 순간 “공부할 자세 안돼 있다” 취급 ‘지도교수 도장 = 학위’ 갑·을 위계 만드는 폐쇄적 논문 심사 구조 손 봐야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박동준씨(32·가명)는 “교수가 학생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석사든 박사든 졸업하려면 지도교수의 사인을 받아야 하고 몇년씩 교수가 졸업을 시켜주지 않아도 학교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서 교수를 비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특히 이공계의 경우 교수의 인맥이 닿아있는 곳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구실을 떠나도 교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연구실을 기업으로 치환해보면 이런 현실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 수 있다. 누군가 취업할 때 해당 기업에 들어가면 임금, 노동시간, 승진연한 등을 알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런 정보도 대학사회에 들어가면 특급 기밀이 된다.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를 묻는 순간, 공부할 자세가 안돼있다는 취급을 받는다. 한번 연구실을 선택하고 나면 이동도 어렵다. 사실상 학계를 떠날 수만 있다. 퇴출도 교수 마음에 달렸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자인 동시에 노동자이지만, 학교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잘려도 ‘해직자’가 아니다. 연구비와 인건비 갈취, 사적인 심부름 동원, 성폭력, 폭언, 논문심사 거마비 요구 등 연구실에서 행해지는 많은 폭력이 바로 이 ‘닫혀있음’에서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과 함께 지난 9월 대학원 석·박사과정생과 박사후 과정생 연구원 19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74%가 “교수 갑질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외국과 비교해봐도 한국 대학사회는 유별나게 후진적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생명과학 박사후(포스트닥터) 과정에 있는 이대한씨(31)는 “미국의 경우 많은 생명과학계열 대학원은 첫 1년 동안 3개 내외의 연구실을 돌아가며 경험하고, 2년차에 연구실을 택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교수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사실상 종신계약을 맺는 경우가 적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수한 신입 대학원생을 유치하기 위해 연구실끼리 경쟁이 붙기 때문에 교수들이 학생들의 평가를 신경쓸 수밖에 없다”며 “최근 노스웨스턴대 교수 중 2명이 학생들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정년심사에서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카이스트 김소영 교수 연구팀은 지난 3월 열린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 토론회’에서 미국과 일본, 영국,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의 대학원 제도를 조사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유럽은 연구소(대학)에서 직접 대학원생과 계약을 체결하고 학생을 고용한 재원이 연구소나 대학에서 직접 나오기 때문에 지도교수로부터 학생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학원생들의 불합리한 지위는 여러차례 공론화됐다. 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단위의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인분교수사건’ ‘8만장 스캔사건’ 등 자극적인 사건 내용만 회자될 뿐 근본적인 제도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계류 중이다. 문제를 해결할 창구를 만들자는 것조차, 문턱에 걸려있는 셈이다.
■ 대학은 바뀔 수 있을까
‘고작’ 교수들의 연구실적과 인품평이 공개되는 것만으로 대학사회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까.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익명이지만 교수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교수사회를 긴장시키는 역할을 할 순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가 학생들을 막 대해도 불이익이 없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교수 승진심사를 할 때 동료교수뿐 아니라 학생들의 평가도 반영해야 한다”며 “개별 학교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작가 김민섭씨는 “대한민국 대학원은 교수 개인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부여돼 갑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착한 사람은 언제든 나쁜 사람이 되게, 나쁜 사람은 더욱 나쁜 사람이 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학원생뿐 아니라 교수도 결국 구조의 피해자”라고 진단했다. 김 작가는 “지도교수제를 손봐야 한다”며 “지도교수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으면 학위를 받을 수 없는 지금의 제도는 갑과 을이라는 위계를 만들어 내기에, 논문을 어느 폐쇄적인 한 집단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학계에서 블라인드 형식으로 채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도교수 한 사람에게 집중된 평가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원생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욕하기 좋은 대학’이 아니라 ‘연구하기 좋은 대학’이다. 서울대 의생명지식공학연구실 고현웅씨(32)는 “대학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오픈돼야 정말 연구해야 할 사람들이 대학원에 가고 연구의 질도 올라갈 것”이라며 “김박사넷이 대나무숲 역할뿐 아니라, 학생들끼리 모여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에 맞는 교수를 추천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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