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도전, 슈퍼커브로 서울~부산 달리기!



‘탁, 탁!’ 헬멧 때리는 빗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오는 내내 기상현황 어플리케이션 확인하며 기를 쓰고 피했는데, 부산이 머지않은 기장에서 화가 잔뜩 난 비구름과 마주쳤다. 이미 어둠은 짙게 내렸고 도로는 흥건히 젖은 상황. 대안은 없었다. 무조건 가는 거다. 농담으로 시작한 도전이 현실로 거듭났다. 혼다 슈퍼커브를 타고, 서울~부산을 하루 만에 달렸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서울~부산 라이딩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벼운 농담이 현실로 거듭났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업계동료 <카리포트> 임재범 기자와 늦은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마침 혼다 골드윙 신차발표회가 있던 날. 대화주제는 자연스레 모터사이클로 이어졌다. “슈퍼커브 내구성이 그렇게 좋다던데, 논스톱으로 한 번 달려볼까?” 그렇다. 엉뚱한 호기심이 이번 프로젝트의 발단이었다. 

“오, 재미있겠다!” 죽이 맞은 우린 준비에 나섰다.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해 보니 거리는 408㎞, 소요시간은 8시간을 조금 넘었다. 운 좋게 혼다코리아는 시승차를 넉넉히 갖고 있었다. 헬멧을 구입하고 지인의 라이딩 기어와 장갑도 빌렸다. 우린 D-데이를 7월 말로 잡았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걸렸다. 첫째는 날씨. 연일 40℃ 넘는 살인적 폭염이 이어졌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좀 더 치명적이었다. 내가 바이크 ‘초짜’라는 사실이다. 2종 소형 면허는 2005년 땄지만, 당시 스쿠터 몇 개월 타본 경험이 전부. 출발을 예고한 시점이 다가올수록 불길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자신감도 빠르게 줄었다. 다행히(?)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우린 “정상적 주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득이하게 일정을 연기했다. 

그렇다고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는 노릇. 두 번째 D-데이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엔 태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출발 전날, 서울 전역엔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출발 장소는 서울 강남의 SRT 수서역. 짐을 챙기고 침대에 누웠다. 음산한 빗소리에 온갖 걱정이 피어올라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누적생산 1억 대의 월드 베스트셀러


1956년, 독일을 여행하던 혼다 모터 공동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와 후지사와 다케오는 흥미로운 이동수단을 발견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 끌던 스쿠터였다. 엔진과 자전거 페달을 겸비해 각각의 머리글자 모은 ‘모페즈(mopeds)’라고 불렀다. 골수 엔지니어 소이치로의 관심사는 오로지 레이스. 반면 회사살림 책임진 후지사와는 쏠쏠한 먹거리를 찾고 있었다. 

모페즈는 후지사와의 관심사와 ‘쨍’ 맞아떨어졌다. 정작 걸림돌은 내부에 있었다. 영 관심 보이지 않던 소이치로였다. 후지사와는 재차 설득했다. 작고 가벼운 이동수단의 유행, 지역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팔 수 있는 스테디셀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소이치로의 마음이 동했다. 둘은 쇼룸을 돌며 유럽의 모페즈를 살폈다. 하지만 이거다 싶은 모델이 없었다.



소이치로는 귀국 후 바로 설계에 나섰다. 후지사와는 깐깐한 조건을 내걸었다. 전선과 엔진을 커버로 씌워 감추고, 배달통을 들어야 하니 남은 한 손만으로도 몰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만 만들어 준다면 모든 가게에서 배달용으로 한 대씩 살 거라고 장담했다. 나아가 슈퍼 커브를 계기로 본격적인 해외진출도 꿈꿨다. 이듬해 혼다는 목업 모델을 완성했다. 

1958년 슈퍼커브 C100이 데뷔했다. 모터사이클 최초로 플라스틱 커버를 씌웠고, 아래쪽으로 휜 뼈대(언더 본) 덕분에 타고 내리기 편했다. 자동원심 변속기로 클러치 레버 주무르는 수고도 덜었다. 슈퍼커브는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출시 3년 만에 100만 대, 1974년 1,000만 대, 2005년 5,000만 대에 이어 2017년엔 1억 대 누적생산의 대기록을 세웠다.  


오전 7시, SRT 수서역에서 스타트!

새벽 5시, 요란스러운 알람에 잠이 깼다. 서둘러 씻고 장비를 챙겨 나섰다. 장대비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고, 맑게 갠 하늘이 반겼다. 아직 젖은 노면을 조심조심 밟아 수서역으로 향했다. 임 기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모터사이클로 유럽 전역을 돌고 온 베테랑. 이번 여정을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겐 천군만마처럼 든든한 존재였다.  



우린 슈퍼커브 조작 관련 주의사항과 코스를 재차 확인하고, 서로 인증샷 찍어 준 뒤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임 기자의 파랑과 나의 빨강 슈퍼커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에스코트하며 서울 시내를 빠져 나갔다. 이번 여정은 수서역을 출발해 3번 국도를 타고 곤지암, 이천을 거쳐 괴산과 문경, 경주와 울산, 기장을 거쳐 부산 해운대에서 끝을 맺게 된다.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난 매초마다 생애 최장 라이딩 기록을 갈아치우며 달렸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장롱면허’의 도전. 슈퍼커브여서 가능했다. 특히 변속 스트레스가 없다. 실제로 해보니 너무 쉽다. 클러치 조작 필요 없이 왼쪽 발끝 또는 발꿈치로 쿡쿡 누를 때마다, N↔1↔2↔3↔4를 앞뒤로 순환한다. 게다가 심지어 4단으로도 출발할 수 있다. 



계기판엔 현재 기어 단수도 뜬다. 실제 주행 땐 소음과 진동으로 변속시점을 가늠하게 된다. 변속충격 걱정에 다운시프트를 망설였는데, 자연스레 요령을 터득했다. 감속하면서 순간적으로 드로틀 감아 엔진회전수를 띄운 뒤 기어를 낮추면 ‘힐앤토’ 효과를 낼 수 있다. 최적의 운전패턴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셈이다. 60년 전통, 슈퍼커브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방향전환의 어려움, 모션의 여운

중·고등학교 때 자전거를 즐겨 탔다. 어쩌면 이번 즉흥적 결정의 이면엔 아득한 과거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은 움직임 특성이 달랐다. 속도와 무게 차이 때문. 특히 속도 붙여 달릴 때 방향전환이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주행하면서 차선을 바꾸려고 마음먹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다. 

임 기자는 “가려는 쪽을 바라봐야 바이크도 따라 움직인다”고 귀띔했다. 차선 바꾼 후엔 움직임의 여운이 남았다. 따라서 붓으로 매끄럽게 획을 그을 때처럼 여유 있게 동선을 그려야 했다. 한편, 겨울철 동결방지를 위해 노면에 촘촘히 금을 파놓은 구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두 타이어가 노면을 타면서 꽁무니가 흔들거리거나 궤적이 흐트러져 손에 땀을 쥐었다.  



경기 이천을 벗어날 무렵, 임 기자가 긴급히 무전을 보냈다. 이유는 빤히 짐작할 수 있었다. 먼 산 너머 낮게 드리운 먹구름 때문이었다. 우린 바이크를 세우고 각자 준비해 온 우비를 겹쳐 입었다. 난 급하게 구한 일명 ‘도롱이’를 입었다. 배달의 민족이 즐겨 입는 ‘국민 우비’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온 몸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노면이 흠뻑 젖어 속도를 낮췄다. 앞서 달리는 파랑 슈퍼 커브와 주변 자동차가 뿜어내는 물보라를 샤워하듯 온 몸으로 맞았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서서히 누적되던 엉덩이와 손아귀의 통증도 시나브로 잊었다. 헬멧의 투명 바이저는 수시로 뽀얗게 흐려졌다. 가뜩이나 운전도 낯선데, 장갑 낀 손등으로 빗방울 닦고 숨구멍 틔워 김 서림 없애느라 바빴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 이화령에 오르다

고속도로 부럽지 않게 널찍한 국도를 벗어나 왕복 2차선 꼬부랑길로 접어들었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이화령 초입이다. ‘국토종주’의 분수령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끌고 오르는 이들을 수시로 만났다. 엔진 힘에 의지하지만, 우리 처지 또한 마냥 낭만적이진 않았다. 코너가 잇따라 똬리를 틀었고, 갓길엔 밟으면 쭉쭉 미끄러질 낙엽이 그득해서다. 

드디어 해발 548m 정상에 올랐다. ‘백두대간 이화령’이라고 새긴 바윗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고갯마루 아래쪽을 굽어보니 강과 논밭, 도로 뒤섞인 풍경이 아득히 펼쳐졌다. ‘절반쯤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피로가 몰려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잠시 숨 돌리면서 앱을 확인하니, 비구름은 우리를 빠르게 앞질러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우린 이화령을 넘어 다시 쭉 뻗은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번 여정에 앞서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겸손한 출력과 속도였다. 신형 슈퍼커브의 엔진은 공랭식 단기통 109㏄로, 최고출력 9.1마력, 최대토크 0.9㎏·m를 낸다. 자동차에 비하면 짐작조차 어려운 힘. 그러나 제한속도에 맞춰 슈퍼커브 끌기엔 의외로 아쉽지 않았다. 105㎏에 불과한 차체무게 덕분이다. 



신형 슈퍼커브의 제원 상 최고속도는 시속 91㎞. 속도계는 시속 140㎞까지 그려 넣었다. 실제로 땡겨(?)보니 속도계 바늘은 내리막에선 120까지도 찍었다. 다만 계기판상 시속 90㎞를 넘으면, 별안간 진동이 확 치솟아 전립선이 간질간질했다. 혼다 자연흡기 엔진의 VTEC 터질 때 긴박한 느낌과 비슷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속주행을 자제하게 된다. 


경주 최 부잣집에서 숨을 고르고 

어느덧 천년고도 경주에 접어들었다. 원래 코스로는 대구를 지날 예정이었는데, 퇴근길 정체를 피하기 위해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마 전 시승 때문에 차로 누볐던 도로를 고스란히 밟아 달리는 동안, 드라이빙과 라이딩의 차이는 한층 뚜렷이 와 닿았다. 우린 경주 최 부잣집 앞에서 잠시 멈췄다.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은 야속하게만 흘렀다. 땅거미가 지면서 이미 왕릉과 기와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경주 시내 주유소에서 두 번째로 주유했다. 넘치도록 채워도 4,000원을 넘지 않았다. 경주를 벗어날 즈음, 이번 여정의 첫 정체구간을 만났다. 편도 2차선 도로에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가 늘어섰다. 슈퍼커브의 장점이 빛을 발할 차례였다. 



우린 2차로와 갓길 사이 공간으로, 조심조심 달리기 시작했다. 옴짝달싹 못하는 자동차를 뒤로 한 채 야금야금 나아가는 기분이 끝내준다. 프랑스나 이태리처럼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 공존하는 문화가 뿌리내린 나라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물론 대배기량의 덩치 큰 바이크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반면 날씬하고 아담한 슈퍼커브에겐 이 정도 공간도 충분했다. 



한동안 어둠 속을 달렸다. 신형 슈퍼커브의 LED 헤드램프는 도심주행엔 문제없다. 그러나 야심한 밤, 가로등 없는 국도 달릴 땐 호롱불처럼 침침해 아쉬웠다.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달리다 언덕을 넘는 순간, 불야성 이룬 별천지가 펼쳐졌다. 울산 석유화학단지였다. 어디선가 애국가 들려오는 착각에 빠져, 괜히 가슴 뭉클하고 콧잔등이 시큰했다. 


태풍 뚫고 기장에서 부산까지

결국 기장에서 문제의 비구름을 만났다. 이화령 못 미쳐 만났을 땐 날이라도 밝았지만, 이젠 칠흑 같은 어둠뿐. 대안이 없으니 결론은 명확했다. 그냥 가야했다. 경주에서 벗은 ‘도롱이’를 다시 입으려다 관뒀다.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이니, 좀 더 몸으로 생생히 느끼고 싶었다. 그 생각을 후회하기까진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라이딩 경험이 거의 전무한 나로선, 이번 여정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긴박한 상황의 연속 아닐까?’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많이 달랐다. 처음엔 바짝 긴장했지만 익숙해지면서 여유를 되찾았다. 이후 수시로 풍경을 살폈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냄새를 맡았다. 오히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상념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엉덩이와 손아귀 모두 쥐가 나다 못해 감각마저 무뎌졌다. 머릿속엔 ‘도착’ 두 글자만 오롯이 남았다. 도로 표지판의 ‘부산’이 어느덧 ‘해운대’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남들 보기엔 ‘배달용 오토바이를 왜 저렇게 완전무장하고서 나란히 타나?’ 싶었겠지만, 여정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로서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자랑스러웠다. 



밤 9시, 우린 해운대 동백섬의 ‘더 베이 101’ 앞에서 시동을 껐다. 서울 수서역을 출발한지 14시간 만이었다. 화려한 야경, 한껏 멋을 낸 인파와 꾀죄죄한 우린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신 웃음만 나왔다. 농담으로 시작한 미션을 기어이 성취했다는 사실이 뿌듯해서, 1만 원 남짓한 연료비로 부산까지 우릴 실어 나른 슈퍼커브가 대견해서.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김성원, 혼다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