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털 엔진-원작소설 팬들은 이 영화에 동의할까 [시네프리뷰]
소설을 2시간8분짜리 영화에 구겨넣기 위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의 생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과연 오리지널 작품의 열혈 팬들이 이 장르상 ‘번역’을 용서할까.

원제 Mortal Engines
제작연도 2018년
감독 크리스찬 리버스
출연 헤라 힐마, 로버트 시한, 휴고 위빙, 지혜, 스티븐 랭
원작 필립 리브 작 〈모털 엔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8분
개봉 2018년 12월 5일
‘산으로 가버렸네.’
영화 〈모털 엔진〉을 본 감상이다. 배가 산으로 간다. 흔히 엉뚱한 결말로 치달을 때 하는 말이다. 망작이 된 경우다.
영화 〈모털 엔진〉은 원작소설이 있다. SF작가 필립 리브의 〈견인도시 연대기〉 4부작 첫 권이다. 원작에서 런던은 그냥 망한다. 샨구오의 바트뭉크 곰파 총독과 밸런타인의 딸 캐서린의 만남 같은 거, 없다. 아버지의 칼에 찔려 쓰러지던 캐서린의 머리가 부딪혀 메두사가 오작동했고, 그래서 런던은 최후를 맞는다. 원작에서 캐서린은 그냥 죽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캐서린은 부서진 방패벽의 잔해로 이뤄진 돌산을 살아남은 런던 사람들과 힘겹게 올라선다. 진짜 산으로 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한국 속담을 알아서 직유적으로 표현한 걸까.
도시진화론과 견인도시라는 설정
일단 영화의 설정을 짚고 가자. 앞서 필립 리브의 원작소설들이 ‘견인도시 연대기’라고 했다. 견인도시(traction city)라는 것은 움직이는 도시라는 것이다. 거대한 바퀴가 달렸건, 탱크처럼 캐터필터가 달렸건 이 먼 미래의 도시들은 움직인다! 그리고 치열한 약육강식. 부족한 자원은 다른 견인도시들을 사냥해 얻는다. 소설 속에서 이것을 정식화해 놓은 이데올로기가 도시진화론(Municipal Darwinism)이다. 소설 및 영화의 남주인공 톰 내츠워시가 어린 시절부터 받은 교육이자 매그너스 크롬 런던 시장을 비롯해 견인도시들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다. 단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삶의 철학이다. 이들은 정착해서 사는 삶, 흙에 발을 대고 사는 삶을 본능적으로 불쾌해하고 싫어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반대하는 세력. 반견인도시연맹의 중심에는 바로 이들이 혐오하는 정착민이 있다. 이들의 거주지는 더 이상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엉뚱하고 무모한 설정인 것 같지만 이 먼 미래 이야기의 배경이 고대, 그러니까 21세기 언제쯤 벌어진 ‘60분 전쟁’으로 지구가 끔찍하게 오염된 수천 년 후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설정에서 보듯 ‘포스트 아포클립스’의 세계에서는 과거 전성기 인류문명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견인도시들 사이의 적자생존 쟁탈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이 ‘올드-테크’라고 부르는 ‘60분 전쟁’ 전에 만들어진 전쟁무기나 문명 편린의 ‘득템’이 중요하다. 영화에서는 거의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지만 수천 년 후의 견인도시 사회에서 계급 내지는 무리집단이 고고학자 내지는 역사학자 길드와 엔지니어 길드로 나뉘는 까닭이다. 천애고아였던 3등 견습생 소년 톰과 역시 의지하던 어머니를 잃은 소녀 헤스더의 모험.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플롯 아닌가. 2008년 최후의 날을 맞은 것으로 설정했던 〈미래소년 코난〉(1978)의 바로 그 이야기다(엄밀히 말하면 코난과 라나에 비해 톰과 헤스더 커플은 힘도 없고 못났지만). 견인도시는 코난의 인더스트리아이고, 방패벽 너머의 샨구오는 하이야바다. 그러고 보니 원작소설이나 영화의 설정을 이해할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 묘사된 세계관을 활용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견인도시 설정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 삐걱거리며 돌아다니는 하울의 성을 떠올리면 되겠다. 공중에 떠 있는 도시 에어헤이븐이나, 헤스더를 지구 끝까지 추적하는 스토커 슈라이크에 대해서는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의 라퓨타나 거인병을 떠올리면 되겠고.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스타워즈?
굳이 SF영화 〈모털 엔진〉의 하위장르를 따진다면 스팀펑크 내지는 디젤펑크다. 삐걱거리고 낡은 복잡한 구동장치로 이 견인도시 런던은 굴러간다. 원작에서 안나 팽이 모는 제니 하니버는 비행선으로 묘사되는데, 19세기 산업문명의 대안적 발전을 상정하는 것도 스팀펑크물의 특징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묘사된 제니 하니버는 비행선이긴 한데 무슨 제트기처럼 날아다닌다! 안나의 동료들이 모는 비행선들도 마찬가지다. 비행선 특유의 느릿느릿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스타워즈〉(1977)의 반란연합군이 모는 우주선처럼 묘사된다. 이 점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시차 덕분인지 한국에서 12월 5일 제일 먼저 개봉했다(한국과 같은 시간대인 일본은 특유의 영화배급 시스템 때문에 내년 3월에야 개봉한다). 12월 2일 있었던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 참석했던 영화의 원작자 필립 리브는 시사회 당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감상평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영화가 구현됐다”며 “영화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글쎄. 물론 소설을 2시간8분짜리 영화에 구겨넣기 위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의 생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과연 오리지널 작품의 열혈 팬들이 이 장르상 ‘번역’을 용서할까. 피터 잭슨이 이 영화를 정말 제작했을까, 살짝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툴킨의 SF고전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면 그가 이 정도의 만듦새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영화는 원작의 ‘제니 하니버’를 왜 다르게 묘사했을까

원작소설에서 안나 팽의 비행선 제니 하니버는 둥그스름한 실리콘 실크 기낭을 단 비행선이다. 필립 리브의 책엔 그가 직접 감수한 제니 하니버의 그림이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책에서 안나 팽의 비행선을 목격한 톰의 첫마디는 “폐품으로 만든 비행선이잖아!”였다. 안나 팽은 이렇게 항변한다. “기낭은 샨구오산 쾌속정에서, 주네-카로 아에로 엔진 한 쌍은 파리산 전투비행선에서, 슈피츠베르켄 군비행선에서는 강화가스 연료통을 물려받아 만든 거라구.” 폐품으로 조립한 것은 맞지만, 나름의 최강 조합으로 만들어진 비행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 묘사된 제니 하니버는 그런 게 아니었다. 커다랗게 펼쳐진 양날개 부분에 기낭의 흔적은 있는데, 제트엔진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스타워즈〉의 우주전투선처럼 날아다닌다. 캐릭터도 영화에선 단순화되었다. 캐서린의 아버지 밸런타인이나 안나 팽의 감춰진 진짜 모습은 ‘스파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밸런타인은 시장보다 더한 순수한 빌런이었고, 안나는 헤스더 엄마의 친구로 정의의 화신 같은 존재다.
어쨌든 왜 제니 하니버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그렇게 바뀌었을까. 인터넷에서 제니 하니버(Jenny Haniver)를 검색하면 낯선 외계인 같은 생물체 이미지가 많이 뜬다. 홍어나 가오리를 말려 괴물처럼 만든 것들인데 유서 깊다. 19세기에 많이 제작된 인어인간 같은 걸 생각하면 되겠다. 해양박물관 같은 데에 가면 중세시대에 선원들이 만들어 판 제니 하니버도 전시되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화 속 비행선은 이 말린 홍어를 닮아 있다. 뭐 원작자도 일단은 만족한다고 하니까 할 말은 많지만 여기까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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