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표 혁신 실험의 현주소
[경향신문] 종로 자전거 도로, 서울로 7017,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현주소

서울시장이 되기 전 박원순 시장은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로 불렀다. 상상을 무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난 7년간 박 시장은 여러 가지 상상력의 실험을 단행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정원으로 탈바꿈시켰고, 올해 4월엔 종로 자전거도로와 돈의문 박물관 공원을 열었다. 박원순표 혁신 실험의 현장을 다녀왔다.
8월 22일 오후, 따릉이(서울시 자전거)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부터 종로6가까지 이어진 2.6㎞ 길이의 종로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자전거 도로는 인도 맨 바깥쪽에 설치된 반면 종로 자전거 도로는 차도에 있던 갓길의 폭을 좀 더 넓힌 형태다. 보행자와 충돌할 위험성은 없지만 자전거 한 대만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고 바로 옆에서 자동차가 다닌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출발점인 광화문역에서부터 종로구청 앞 교차로까지는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가드레일은 아니지만 야광등이 자전거 도로와 차도를 구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로구청 사거리를 지난 이후부터는 자전거 도로와 차도 사이에 아무 구별이 없는 구간이 길게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는 내내 차와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 자전거 도로 자전거 도로의 문제점은 자동차와의 충돌 위험성보다 도로의 구조 자체에 있다. 특히 종로4가부터 종점인 종로6가 사거리까지는 자전거 도로가 군데군데 끊어져 있다. 종묘광장공원 건너편에서부터 자전거 도로가 없어지고 ‘자전거 우선도로’가 나타난다. 자전거 우선도로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흰 페인트로 자전거 그림을 그려넣은 게 전부다. 빨간 바닥으로 구별되는 자전거 도로가 아니어서인지 자전거 우선도로 위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파가 많이 다니는 광장시장 부근도 난감한 구간이다. 광장시장에 들어서기 직전에 자전거 우선도로가 다시 시작된다. 이곳엔 광장시장에 물건을 나르는 트럭이나 승합차가 여러 대 정차돼 있다. 1차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트럭이나 승합차를 무시하고 지나가기엔 2차선을 달리는 자동차들이 걱정된다. 자전거에서 내려 인도로 들어가자니 보행자가 많아서 난감한 상황이다.
트럭에서 짐을 나르던 사람들에게 종로 자전거 도로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30대 남성 ㄱ씨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저희한테 항의할 때도 가끔 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여기 말고는 차를 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트럭을 세우지 않으면 한참을 돌아서 청계천에 차를 대야 한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차 세울 곳이 없다”며 “2차선으로 들어가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많은데 저러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불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곳곳이 끊어진 구간 등을 통과해 25분 정도 달려서 종로6가 사거리에 도착했다. 종로 자전거 도로가 개통한 4월 8일 기념식 때는 광화문에서 종로6가까지 자전거로 8분이면 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돌아오는 길도 문제다. 자전거 도로가 편도로만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되돌아가려면 자전거에서 내려 인도를 걷거나 청계천 쪽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는 차량 소통이 적은 청계천가에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졌다면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시에서도 종로 자전거 도로의 후속 계획으로 청계6가에서 청계광장 방향으로 신설 자전거 도로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청계천변은 자전거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2개 차로 중 1차선은 청계천변 상인들이 주차공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2차선에는 자동차가 끊이지 않고 지나가는 통에 자전거를 굴릴 틈이 없다.
서울시 자전거정책과 측은 “종로 자전거 도로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서 보완해 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따릉이를 타고 어느덧 서울역까지 도착했다. 2015년 안전등급 D등급을 받고 철거될 예정이었던 서울역 고가차로가 보행로로 바뀐 서울로 7017이 보였다. 서울로 7017은 서울역 동부와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울역 서부를 이어줄 보행로로 기대를 모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8월 22일까지 서울로 7017의 총방문객 수는 1164만여명이다. 이 수치대로라면 하루 2만명 이상이 서울로 7017을 이용한 셈이다.
따릉이를 반납한 뒤 서울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울로 7017 위로 올라갔다. 기대와 달리 사람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퇴계로에서 시작해 서울 서부교차로까지 이어지는 서울로 7017의 길이는 1㎞ 남짓이다. 공원 중간중간엔 지름 1m 정도 되는 원형 모양의 시멘트 화분이 설치돼 있다. 화분엔 비비추, 모우드리 등 생소한 이름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카메라를 멘 한두 사람이 공원 안의 모습이나 공원에서 서울역을 내려다보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카페에는 2명의 직원과 2명의 손님만이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
썰렁한 서울로 7017, 돈의문마을 물론 보행로로 이용하는 사람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손기정공원 근처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60대 여성 ㄴ씨는 남대문시장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서울로 7017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 지하도는 사람이 많고 복잡한데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조용해서 좋다”고 말했다.
ㄴ씨는 서울로 7017의 아쉬운 점으로 그늘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8월의 여름날씨에 1㎞ 길을 걷기란 십지 않은 일이다. ㄴ씨는 “화분에 식물이 많은 건 보기가 좋은데 그늘이 될 만한 나무가 없다. 군데군데 그늘이라도 있으면 잠깐 앉아서 쉬기라도 할 텐데”라고 말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몇 년 전까지 삼겹살, 칼국수 등 다양한 음식을 팔던 먹자골목이었다. 점심시간 때마다 식사하러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서울시는 수십 년 된 건물이 늘어선 이곳의 기존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 자체를 하나의 박물관처럼 만들고자 했다. 지난해 9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을 때는 먹자골목 시절처럼 마을 구석구석이 방문객으로 가득했다.
8월 23일 12시 30분, 점심시간이 한창이지만 마을은 고요했다. 서울시는 마을 단위로 첫 도시재생이 이뤄진 역사문화마을이라고 이곳을 홍보했지만, 아직은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평일 오후이기 때문인지, 당초 예정된 문화공연이 취소됐기 때문인지 카메라를 메고 있는 40~50대 여성 서너 명만이 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오후 1시가 지나자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직장인 4명이 잠시 마을 마당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기도 했다.
물론 마을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건축, 공연, 복식연구, 공예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입주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문을 닫은 곳도 있었지만, 작업이 한창인지 불이 켜져 있는 곳도 있었다. 한 작업실 직원은 “사실 하루 두 번 전문가가 설명하는 투어 시간대 말고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맞다. 문화예술인들의 활동공간이 많고,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투어 자체가 없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박물관마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방문객 숫자로 마을의 가치를 잴 순 없다고 말한다. 박물관마을 관계자는 “돈의문 마을은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과 시민들이 직접 만나서 교류하는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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