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절망 가득한 세상에도.. 청춘의 '희망사냥'은 계속된다

기자 2018. 8. 24. 14:2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원 양양의 남애항. 영화 속 춘자의 고향은 우도로 설정됐지만 우도는 가상의 공간으로 실제로는 강원 양양의 남애항 일대에서 촬영했다. 강원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남애항은 최근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고래사냥’의 촬영현장으로 배창호 감독이 배우들에게 촬영 동선 및 연기 지도를 하는 장면.

(131) 영화 ‘고래사냥’의 배경 강원 양양 남애항

당대 배우 안성기·이미숙 출연

가수 김수철 엉성한 청년役 화제

윤락가 여성 고향에 데려다주며

스스로의 변화 ·성장 과정 그려

로드무비 새 형식으로 흥행대박

서울스퀘어 빌딩 뒤편 ‘양동’등

서울 공간들의 의미없는 나열로

소외돼 홀로 표류하는 청춘 묘사

모든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

변화를 갈망하던 청춘들의 일탈

최종 종착지 남애항에서의 일출

시대를 아우르는 ‘공감과 울림’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을 기억한다. 정치적으로 우울했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돌파구를 열어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서울 관객 43만 명을 동원해 그해 한국영화 1위 흥행을 기록했다. 최인호 작가가 발표한 소설 ‘고래사냥’을 1984년 영화화한 것으로, 제목이 같은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과 연관이 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1972년 최인호는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게 되고 이를 1975년 하길종 감독이 영화화해서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었으며 최인호가 작사를 맡았다. 당시 청년문화를 대변하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바로 금지곡이 됐다.

‘바보들의 행진’이 1970년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그린 영화라면, 영화 ‘고래사냥’은 1980년대 바다라는 탈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 ‘코리안 뉴웨이브’ 무비다. 코리안 뉴웨이브란 1980년대 저항적 시대정신과 현실을 반영해 만들어진 영화들을 일컫는다. 이장호 감독을 포함해 배창호, 장선우, 이명세 감독들이 주도했는데, 주류상업 영화와는 다른 예술영화로서의 만듦새를 갖추면서도 한국사회와 역사를 진지한 시각으로 성찰했다.

영화 ‘고래사냥’은 당대 최고의 배우 안성기와 이미숙뿐만 아니라 영화 초년병인 가수 김수철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다. 김수철은 최근 펴낸 에세이집에서 당시 촬영 에피스드를 털어놓으며 겨울에 강물에 빠져서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대학생 병태 역할을 한 그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들었다.

극 중 짝사랑하던 대학생 미란에게 거절당한 대학생 병태(김수철)는 좌절감에 빠져 거리를 방황하다 여성을 추행했다는 혐의로 유치장에 갇힌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병태를 부랑자 민우(안성기)가 돕는다. 민우는 소심한 병태를 사창가에 데려가고 그곳에서 언어장애인 춘자(이미숙)를 알게 된다. 춘자에게 연민을 느낀 그들은 춘자를 고향집에 데려다 준다.

대학생 병태의 고민과 방황은 사랑하는 여대생으로부터 촉발됐지만 1980년대를 살고 있던 당시 20대 젊은이로서 고민과 방황은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공허함은 누군가를 돕는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영화는 병태가 춘자를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가 변화하고 바뀌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결국 고래를 상징하는 ‘희망’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

배 감독은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옮기면서도 당시 시대 상황을 우회적으로 풀어내 많은 관객의 공감을 샀고 한국영화를 외면했던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로드 무비(road movie)라는 새로운 형식이 흥행을 크게 도왔다.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한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모험담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유발했던 것이다.

로드 무비는 장소의 이동에 따라 이야기를 펼친다. 영화 ‘고래사냥’은 여러 장소, 다양한 공간을 돌며 빠르게 사건을 진행한다. 영화는 서울역과 이태원, 명동거리, 종로, 광장시장, 대학캠퍼스, 창경원 등 주인공을 따라 스케치하듯 서울의 여러 곳을 보여준다. 그중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이가 이동하는 서울역 앞의 양동이라는 곳에 초점을 맞춘다. 양동(陽洞)은 볕이 잘 드는 동네라고 하여 양짓말을 한자명으로 한 데서 유래되었다. 영화에서 민우가 병태를 데리고 간 사창가가 있던 곳이 중구 양동이다. 그런데 이 동네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시는 양동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남대문5가로 편입시켰고 나중에 다시 회현동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양동은 1977년 대우그룹이 23층 대우빌딩을 지으면서 재개발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스퀘어 빌딩이 된 대우빌딩 뒤편이 재개발되면서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들어선 현대식 주거지로 바뀌어 그때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1980년대만 해도 양동은 초라한 빈민가로 양팔을 뻗으면 손가락이 담벼락에 닿는 좁다란 골목길의 사창가였다. 아이러니하게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사창가에 대한 정화사업과 윤락행위 근절을 외쳤지만 실제로 역과 터미널 주변의 사창가는 1980년대가 호황기였다. 영화 ‘고래사냥’이 촬영되던 때도 양동 일대가 막 재개발되기 시작했던 시기라 사창가가 남아 있었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어둠의 자식들’과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도 양동의 사창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양동 외에도 영화에서는 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던 서울의 도시, 그곳에서 소외된 채 홀로 표류하고 있는 병태를 그리기 위해 별다른 연관성 없는 다수의 공간이 나열된다. 1984년 창경궁 복원 사업으로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동물원이 옮겨지기 전의 창경원도 나온다. 민우는 그곳의 춘당지와 명정전을 제 집처럼 이용한다. 병태와 민우가 대학교에 가서 노교수를 만나는 장면은, 흑석동에 위치한 중앙대에서 촬영했다. 흥미로운 점은 중앙대를 상징하는 청룡상이다. 지금은 하늘색 페인트칠이 돼 있어 영화 속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지만 이 조형물은 황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1968년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설치한 것이다. 설립자인 임영신 박사는 청룡이 둘러싸고 있는 지구본 속에 타임캡슐을 묻어뒀고 2018년 10월, 100주년이 되는 올해 청룡상 해체작업을 한다고 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화 ‘고래사냥’에선 정치적으로 우울했던 1980년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무런 힘도, 가진 것도 없는 병태와 민우는 포주에게 착취당하는 창녀 춘자를 돕는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와 현실적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배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인간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며, 청춘들의 일탈과 방황을 통해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상과 맞서게 했다. 때로는 코믹하게 시대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서울역의 퇴락한 풍경, 쓰러져가는 한옥과 여인숙 그리고 사창가. 스산한 서울의 도시…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탈출하고만 싶다. 그래서였을까. 춘자를 빼돌린 주인공 병태와 민우는 사창가 앞에 세워져 있던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의 푸른 바다로 향한다.

회색빛 도시, 답답한 일상,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품어줄 수 있는 그곳. 자유를 갈망할 때 강원도의 푸른 바다를 찾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영화 ‘고래사냥’에서 전반부가 서울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반부는 강원도가 주된 배경이다. 춘자의 고향인 강원 양양을 향해 떠나는 과정에서 병태와 민우, 춘자의 뒤를 쫓는 포주(이대근)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 차를 얻어 타고 자전거를 빌려 달아나는 장면들 그리고 석탄을 실은 수송열차에 올라타는 장면들 대부분이 강원 정선을 비롯해 강릉, 임계, 묵호, 양양을 돌며 촬영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고향 장면은 강원 양양의 남애항에서 촬영했다.

영화 ‘고래사냥’의 최종 종착지인 남애항은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영화가 촬영되던 당시 남애항의 풍광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전망대는 물론이고 등대로 이어지는 길은 지금처럼 잘 닦아놓은 신작로가 아니었다. 남루하고 어수선하며 스산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애항은 삼척의 초곡항과 강릉의 심곡항과 더불어 강원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힌다. 남애항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작은 돌섬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방파제도 있다. 강원도 특산물인 송이버섯 모양의 등대, 괴암과 청송 등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답고 서정적인 어촌의 풍경을 자랑한다. 남애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돋이다. 남애항은 일출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남애항 전망대 근처에 위치한 정자 앞에는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남애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 강남에서 90분이면 닿는다. 동홍천-양양 구간에는 국내 최장 터널인 백두대간 인제터널이 있다. 2016년 터널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터널’의 촬영지였다. 인제터널은 11㎞의 국내 최장 터널로 시속 100㎞ 운전자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터널을 통과하려면 7분이 소요된다.

고래사냥! 고래를 잡는다는 것은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젊은이들에게는 어떠한 상징과도 같다.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청년세대들은 변화와 자유를 갈망했다. 그 때문에 꿈과 이상으로 대변되는 고래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자아성취, 불안한 미래 등이 그렇다. 영화를 찍었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들이 지닌 무력감과 공허함은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불안한 미래, 청춘들은 끊임없이 갈망하며 고래를 잡아야 한다. 영화 ‘고래사냥’이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대를 아우르며 공감과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 양경미

영화평론가

[문화닷컴 바로가기|문화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모바일 웹]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