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 CORNER
지금까지 여러 집을 설계하고 지으며 비슷한 집을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 늘 백지에서 새로 출발하는 기분이었으며 화성 주택 ‘온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마다 생김새와 꿈이 모두 다르듯 집도 그렇다. 마치 단독주택은 누군가의 우주다.
정리 남두진 기자│글 자료 건축사사무소나우랩│사진 최진보 작가
DATA
위치 경기 화성시 산척동
건축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대지면적 295.00㎡(89.28평)
건축면적 143.65㎡(43.45평)
연면적 179.21㎡(54.21평)
1층 99.05㎡(29.96평)
2층 80.16㎡(24.25평)
건폐율 48.69%
용적률 60.75%
설계기간 2022년 9월 ~ 2023년 4월
시공기간 2023년 9월 ~ 2024년 3월
설계 건축사사무소나우랩
room713@naver.com 010-2423-1193(최준석)
시공 리원건축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리얼징크
외벽 - 두라스택타일, 지정 스터코,
유리블록, 노출콘크리트 면보수
데크 - 페데스탈시스템
내부마감
천장 - 지정 벽지, 수성페인트 도장
내벽 - 지정 벽지, 수성페인트 도장
바닥 - 지정 강마루
단열
지붕 - 가등급 220㎜ 압출법 단열재
외벽 - 가등급 135㎜ 준불연 단열재
도어
현관 - 지정단열도어
방문 - ABS제작도어
창호 지정시스템창호, 삼중로이유리
위생기구 아메리칸스탠다드
새로운 주택을 설계할 때 중요한 단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집이 들어설 대지 상황, 두 번째는 건축주가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하나는 정해진 상수고 하나는 기분 따라 생각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변수다. 대부분의 건축설계는 대체로 이 두 가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고 실마리를 풀 아이디어를 얻는다.
‘온기’의 대지는 동탄 신도시 산척동의 중앙부, 아담한 동산과 공원을 접한 단독주택 전용 지역에 위치했다. 대지 바로 서측이 동산의 끝자락이라 집의 방향과 배치를 어떻게 설정하냐에 따라 바라보이는 동산 풍경이 달랐고 이는 집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라는 전제를 두고 설계를 시작했다.
대지 조건에 맞춰 완성한 첫인상
대지 남측은 3층 높이의 이웃집으로 막혀 있고 서측은 야트막한 동산이 바싹 붙어 있는 조건에서 도로와 접한 동측은 자연스럽게 대지의 주 출입구임과 동시에 집의 정면, 메인 파사드로 역할한다. 도로와 동산으로 대비되는 대지 양측의 상반된 조건을 반영하듯, 집의 동측과 서측은 두 개의 다른 집이 등을 맞댄 것처럼 대비된다.
동측은 차량과 사람의 출입구 역할을 하면서 집의 외관을 책임지는 첫인상이다. 정교하게 계산된 유리블록과 연회색 톤 롱브릭으로 은은하면서 안정감 있는 ‘온기’만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우면서 산뜻한 분위기의 인상을 만들고 싶었다.
반면 집의 반대편 서측은 푸르른 동산을 집의 마당처럼 끌어들이는 ‘ㄷ’자 형태로 구현되며 다양한 큰 창을 통해 인접한 동산의 자연 풍경을 실내에서 적극 즐길 수 있는 회랑식의 동선으로 설계했다. 동산의 수목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자연 풍경을 일상에서 오감을 통해 즐길 수 있도록 실 배치와 창호 계획에 특히 신경을 썼다.
거실 대신 활용성 높인 풍성한 공간들
‘온기’는 거실이 없는 집이다. 여기서 말하는 거실이란 아파트 개념의 거실이다. 단독주택이 특별한 것은 가족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설계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큰 티브이와 소파가 필요 없는 ‘온기’ 가족의 생활 취향은 방의 개수와 크기, 주방에서 식당을 거쳐 거실로 연결된 공간, 거실과 면한 큰 창과 확장 발코니 등 아파트에서 흔하게 보는 구조와는 맞지 않았다. 초반에 여러 번의 설계 미팅을 거치면서 일반적인 거실을 제외하는 대신 ‘온기’ 가족만의 공간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공간의 실제 활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의 시작을 끊었다.
아파트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건 거실이다. 거실은 실내 중앙에 포진해 동선을 짧게 만들고 집 구조를 획일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온기’는 그런 거실을 제거하고 남는 공간을 활용해 햇살과 풍경이 좋은 넓은 주방과 식당, 스터디룸과 침실로 구분돼 넉넉한 공간을 얻게 된 자녀들의 방, 마당을 바라보며 걸터앉을 수 있는 큰 계단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작은 정원과 그걸 바라보며 샤워하는 목욕실, 넉넉한 드레스룸과 별도의 세탁실, 2층 테라스 바깥에 별당처럼 만든 서재 등 아파트에선 구현하기 어려운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상에서 특별한 경험 선사할 별당 서재
본채에서 2층 테라스 끝 바깥에 아빠를 위한 3평짜리 작은 별당을 두었다. 남쪽에 있는 이웃에서 ‘온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이 있는데 시야를 가리기 위해 벽을 둘지 실내를 연장할지 고민하다가 본채와 분리된 작은 별당 서재를 두어 가린 듯 가리지 않은 듯 막아서면 남측 채광을 완전히 막지도 않으면서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되리라 판단했다.
출입이 외부에서 이뤄지는 별당은 예전 한옥에선 일반적이었는데 근대화 이후 주택이 양식화되면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맑은 날, 흐린 날, 밤, 새벽 모든 순간에 밖으로 나가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생활 감각은 단순하지 않다. 짧게나마 계절, 시간을 느끼며 하늘과 햇빛을 보고 집의 외관, 마당, 풍경을 체감하며 나만의 아지트를 들락거리는 일상은 분명 특별한 일이다.
얼마 전 세종시에 주택설계를 진행 중인 건축주와 함께 ‘온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간단한 차담회 겸 집 구경이었는데 세종시 건축주께서 ‘온기’를 너무 마음에 들어 했고 시공을 담당했던 업체에게 봄에 지을 본인의 집도 맡기고 싶다는 공개 러브콜까지 이어졌다.
물론 세종시에 설계 중인 집은 거실도 있고 ‘온기’와는 전혀 다른 공간 구성을 가진 집이긴 하지만 제대로 설계돼 제대로 지어진 집은 각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넘어서 어떤 공감대가 형성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단독주택 설계를 전문으로 해오면서 단독주택은 100인 100색이라는 것을 느꼈다. 100인 100색이 아니라면 굳이 힘들게 땅 사고 고민하고 꿈꾸며 나만의 집을 지을 이유가 무엇일지 괜히 생각하게 된다. 남과 같은 공간에서 투자가치, 부가가치 등 높은 자산으로 집을 구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에겐 아파트가 최적의 답이겠지만 그게 최선이 아니라면 나만의 단독주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것이다.
건축가 최준석(오른쪽), 차현호는 2017년 나우랩건축사사무소(NAAULAB ARCHITECTS)을 개소해 단독주택 위주로 다수의 중소 규모 건축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건축설계는 결국 작은 단서로부터 시작된 실제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비용의 절충점을 찾는 작업이다. 그리고 작업의 결과물로써 좋은 디자인을 지닌 쓸모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건축의 본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