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시시피] 서부 개척과 톰 소여의 모험이 시작된 땅
당신이 맨 처음 미국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음악이나 영화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스포츠다. 마이클 조던이 덩크 슛을 작렬하던 NBA, 박찬호의 뜨거운 역투가 이어지는 MLB 경기 중계를 보며 미국이란 나라에 조금이나마 더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그리고 NBA와 MLB를 보다가 이런 의구심을 품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넓기 때문에 리그를 동부와 서부로 나눠서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떤 팀은 지도상 동쪽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서부리그에 속한 경우가 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미국 빗물의 3분의 2가 미시시피로 흘러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을 동과 서로 나누는 기준이 바로 미시시피 강이기 때문이다. 미시시피강은 지도상 정가운데가 아니라 약간 동쪽에 치우쳐서 흐른다. 미 대평원을 남북으로 흐르는 미시시피는 지리, 경제, 문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미시시피Mississippi는 원주민 말로 '크고 위대한 강' 을 뜻한다. 재밌게도 미국인들조차 미시시피 철자를 올바르게 쓰기 까다로워한다. 첫 음절 M을 제외하고 뒤의 모든 자음은 쌍자음이고 각 쌍자음마다 알파벳 i가 뒤에 딸려 있다고 외우면 된다. 현지 철자 말하기 대회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지형은 마치 깔때기 같은 모양이다. 동서에 산맥이 솟아 있고 북쪽은 고지대다. 모든 물줄기는 남으로 향한다. 서쪽에 로키산맥이 있고 동쪽에는 애팔래치안 산맥이 있다. 두 산맥 사이에 대평원이 있고 그 중앙을 미시시피강이 지나간다. 로키산맥 동쪽과 애팔래치안의 서쪽 사면에 떨어지는 빗물은 지류를 타고 미시시피강으로 흘러든다. 미시시피강은 미 대륙에 떨어진 빗물의 무려 3분의 2를 흡수하는 거대한 물줄기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강이다. 나일, 아마존, 양쯔강 다음이다. 총길이 6,200km. 미국 최북단 미네소타부터 아이오와 미주리,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등을 거쳐 멕시코만Gulf of Mexico으로 흐른다. 미네소타주와 캐나다 접경지역에 있는 해발 450m의 이타스카호수Lake Itasca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미주리, 일리노이, 오하이오, 테네시, 아칸소, 레드 강들과 합류한다. 이 강들도 모두 저마다 수십 개의 지천과 지류를 갖고 있다. 미시시피강은 이 모든 물들을 품에 안는다. 마치 나무의 수많은 뿌리가 대평원에 펼쳐진 형상이다.
길이만 따지면 몬타나 로키산맥에서 발원한 미주리강이 미시시피강보다 더 길다. 그러나 미시시피강의 수량이 미주리강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 이유로 미주리강은 미시시피강에 합류할 때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어야 했다. 미주리강은 세인트루이스 인근에서 미시시피강으로 합쳐진다.
소떼를 1,600km나 몬 터프한 카우보이들
미국 서부 개척 초창기 미시시피강은 물류의 중심지였다. 대평원에서 생산되는 밀과 옥수수, 습지에서 경작된 쌀을 운송하는 길이 되었다. 비버 사냥꾼들은 실핏줄 같은 지류를 타고 모피와 피혁 제품을 운반했다. 웨스트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의 철광석, 석탄 같은 광물의 운송도 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당시에 수송 바지선들이 무려 3,000척 이상 강을 오갔다고 한다.
미시시피강과 항구는 늘 분주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왔고 돈이 모이는 곳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멤피스, 뉴올리언스 모두 당시 번창했던 도시들이었다. 수로가 하던 역할을 철로가 대신하기까지 미시시피강이 미국 경제의 중심을 이뤘다.
철로가 놓이기 시작할 때 철도 수송으로 돈을 잘 번 인물 중에 '조셉 맥코이'가 있다. 캔자스주 에빌린은 철로가 지나는 작은 도시였다. 시카고에 살던 맥코이는 이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는 캔자스 남쪽으로 텍사스까지 뻗어 있는 광활한 초원지대를 주목했다. 거기서 방목되고 있는 소떼들을 보면서 사업을 구상한다. 들판에 있는 소떼들을 텍사스에서 에빌린까지 몰고 온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캔자스의 기차를 이용해 동부 연안의 도시인들에게 소고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당시로선 믿기 어려운 무모한 계획이었다.
맥코이는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에 있는 카우보이들에게 에빌린까지 소를 몰고 오면 마리당 40달러를 준다고 광고했다. 이때부터 카우보이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방목지에선 소가 1마리당 불과 4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냉동·냉장 및 포장 기술이 미비할 때라 오로지 기름을 만들고 가죽을 이용할 목적으로만 도축되고 있었다. 맥코이의 아이디어가 성공한다면 시카고를 비롯한 대도시 사람들이 싱싱한 스테이크를 맛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카우보이들은 초원을 가로질러 1,600km 이상 소를 몰고 왔다. 한 무리를 몰고 올 때면 그 규모가 보통 3,000마리 이상이었다. 이리하여 4년 동안 200만 마리 이상의 소가 동부 사람들에게 공급되었다. 참고로 소의 종류는 긴 뿔소Long horn로 지금은 텍사스의 상징이 됐으며 콜럼버스가 2차 항해 때 유럽에서 가져 온 종자다.
텍사스가 육류를 공급했다면 캔자스는 밀이다. 미국 밀 생산의 중심지였다. 예카테리나 여제시절 러시아는 독일 농부들을 러시아 볼가강 인근으로 이주시켰다. 밀 생산을 위해 독일인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독일인의 후손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들은 밀 생산을 위한 최적의 땅을 찾고자 했다. 캔자스의 자연 환경은 혹독했지만 잘 이겨내고 밀을 수확할 수 있었다.
볼가강 유역은 지금도 세계 최대 밀 생산지 중 하나다. 볼가강은 미시시피와 비교될 만큼 크고 풍부한 수량을 갖고 있다. 북쪽 백해 인근에서 발원해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을 우회한 뒤 흑해까지 흐르는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이다. 독일 농부들은 러시아 볼가는 물론 미국 미시시피 유역까지 어디서든 잘 적응했다.
러시아 독일인들이 미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1860년대 제정된 '자영농지법' 때문이다. 이것은 흑인, 불법 체류자, 남녀 구분 없이 21세 이상 성인에게 160에이커(19만 평)의 땅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혜택이었다. 나눠준 땅에서 5년 동안 어떤 작물이건 재배에 성공하면 토지의 소유주로 인정해 줬다. 서부개척을 위한 당근 역할을 톡톡히 해낸 정책이다.
그리고 이 정책은 지금의 미국이 있게 해 준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그로 인해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그때의 사회상은 영화 '파 앤드 어웨이(톰 크루즈&니콜 키드먼 주연)'에 잘 묘사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의 도시, 한니발
목장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농산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당시 미시시피는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강변의 작은 포구로 변했지만 '한니발'은 증기선과 바지선이 쉴 새 없이 오고가던 분주한 도시였다.
한니발은 '마크 트웨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래서 톰과 그의 친구 허크가 등장하는 소설의 무대가 됐다. '톰 소여의 모험'이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즐겨보았었는데 톰과 개구쟁이 친구들의 말썽을 다루는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영어, 한국어, 일본 버전 모두를 찾아 볼 수 있다.
그 시절 '언젠가는 나도 꼭 한번 톰의 고향에 가봐야지'란 생각을 했었다. 소설 속 도시 '세인트 피터스버그'가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졌다. 미국에 왔을 때 제일 먼저 가 보고 싶은 곳이 그래서 한니발이었다. 그렇지만 한니발 여행이 이루어지기까진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쉽게 마음먹고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한니발에 도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톰 소여의 모험' 소설 첫 부분에 등장하는 페인트 담장이다. 담장 앞 안내판에는 '이곳은 톰의 담장Tom Sawyer's Fence'이라고 적혀 있다. 방문자들은 페인트 붓을 하나씩 들고 소설 속 상황을 따라 해보기도 한다. 붓을 드는 순간 어린 시절의 유쾌한 기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중앙도로에 위치한 도심 공원에는 마크 트웨인의 최애 캐릭터인 톰과 허크의 동상이 서 있다. 두 소년은 한니발 시내의 중심 도로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소설에서 톰은 이곳 고향에서 노년으로 늙어가는 것이 싫다고 했다. 미지의 세계와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소년들의 표정과 동작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동상은 한니발의 시 의장이었던 조지 마한에 의해 기획되어 1926년 완공되었다. 조각상은 프레더릭 히바드Frederick Hibbard에 의해 만들어졌다. 조각가는 실물의 소년을 앞에 세우고 상상을 더 해서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쪽이 톰이고 누가 허크인지 적혀 있지 않아 한눈에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두 사람의 옷차림을 자세히 보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왼쪽 소년의 옷이 낡아 있다. 그가 허크일 것이다. 그의 오른쪽 바지 하단과 상의 소매가 해져 있다.
마크 트웨인이 인종차별주의자?
한니발은 작가 마크 트웨인이 자라고 활동하던 시기에는 번창했던 도시다. 마크 트웨인은 증기선을 타고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를 오가면서 활동했다. 극장이 없던 시절 마크 트웨인은 사람들을 공터에 모아 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크 트웨인이 도시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만담을 듣고자 했다. 어떤 이는 증기선을 타고 오고, 어떤 이들은 마차를 몰고 올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 혹은 인기 MC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입담이 좋았다고 한다. 재치 있는 유머를 많이 만들어냈다. 그의 어록은 지금도 책으로 출판되어 팔리고 있다. 사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샀던 책도 그의 '썰' 을 정리한 것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도박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로서 또는 만담가로서 많은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한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그의 부에 대한 갈망이 '톰 소여의 모험'에서 금화를 발견하는 걸로 투영되었다고 평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한니발은 옛 영광을 잃고 작은 촌락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크 트웨인의 흔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온다고 한다. 마을에는 호텔, 식당, 선술집 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예전 증기선이 오갔던 항구는 유람선이 운영되고 있다. 유람선은 미시시피 강물을 따라 한니발 외곽을 한 바퀴 돈다. 톰과 그의 친구들이 해적놀이를 하고 놀았던 '잭슨섬' 옆을 지나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시시피강을 여행하는 허크와 흑인 노예 짐의 이야기다. 허크가 바라본 세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 초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알리고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소설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검둥이(니거)' 라는 호칭이 자주 등장한다. 또 노예가 죽으면 물건 하나 없어진 것으로 취급한다. 이를 두고 어떤 비평가들은 마크 트웨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830년대다. 그 당시 삶을 그대로 소설 속으로 옮긴다면 '니거' 라는 호칭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라도 홍어, 미시시피 미국가재
미시시피강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서식한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메기다. 톰과 허크의 공통 취미가 메기 낚시다. 미시시피강에서 건져 올리는 메기는 어른 팔뚝보다 크다. 미시시피강에서 잡히는 메기로 만든 요리는 맛이 좋다. 감자는 아이다호에서 먹어야 맛있고. 로브스터는 보스턴이나 메인에서 먹어야 제 맛인 것처럼 메기 요리는 남부 미시시피다.
이곳 사람들은 메기를 포를 떠서 기름에 튀겨낸다. 우리의 생선전과 비슷하다. 메기 살은 부드럽고 흙냄새가 전혀 안 난다. 미시시피의 인근에서 맛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별미는 민물가재 요리다. 민물가재를 매운 스프에 넣고 삶아낸다. 먹을 때는 몸통을 버리고 꼬리살만 빼내서 먹는다.
한국에서는 미국 가재가 유해 외래 어종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곳 남부에서는 환영받는 요리재료다. 결혼식 피로연이나 잔치에 민물가재가 빠지면 서운할 정도다. 마치 남도지방에서 잔치 상에 홍어가 빠지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위상이다.
이외 미시시피강에는 철갑상어와 황소상어Bull Shark 같은 대형 어종들도 살고 있다. 성질이 포악한 황소상어는 바다생물이지만 민물에서 호흡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올라 먹이 활동을 할 때도 있다.
미시시피를 제압하는 자가 미국을 지배한다
미시시피 중류에 위치한 세인트루이스는 야구의 도시다. 최고 야구 명문구단 중 하나인 카디널스가 있다. 김광현 선수가 뛰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서부로 가는 문을 상징하는 대형아치 조형물The Gateway Arch이 있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졌다. 강판에 석양빛이 반사되면 눈이 부실 정도로 장관이다. 삼각형 모형의 아치 최고 높이는 630피트(약 200m) 정도다. 인공 아치 조형물 중에서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보다 2배 정도 높다.
서부 개척 시절 미시시피강은 문명이 끝나는 곳을 의미했다. 강을 건너면 그 앞으로는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는 미지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개척자들은 역마차를 꾸려 서쪽으로 향했다. 자신은 물론 가족의 목숨이 담보되지 않는 위험지대로의 전진이었다. 아치 조형물은 개척자들의 개척자(프론티어)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서부로 나아가는 관문을 뜻하는 것이다.
조형물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와이어로 연결되어 있고 두레박처럼 끌려 올라간다. 정상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과 세인트루이스 시내가 잘 보인다.
역사적으로 미시시피강을 지배하는 것이 곧 패권을 결정했다. 남북전쟁 시기, 북군의 그랜트 장군의 주력 부대는 미시시피강 유역과 지류의 요새들을 모두 탈환했다. 그로인해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남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이는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예전의 영광과 번영은 사라졌지만 미시시피강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흐르고 있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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