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디트 어워즈: 테크 유튜버들이 뽑은 테크 2024
“사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라도” 아이폰, 소니 카메라부터 밤티라미수, 오징어게임까지! 세상 모든 소비재를 리뷰하는 디에디트 매거진이 지난 일 년의 트렌드를 돌아볼 수 있는 ‘2024 디에디트 어워즈’를 준비했습니다. 테크, 스타일, 컬처, 푸드 네 가지로 구분했고, 전문성 있는 객원 에디터와 함께 엄선했습니다. 특히 테크에서는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소문난 ‘테크 덕후’들을 모았는데요. 테크 유튜버이기도 한 슈퍼주니어 신동부터 유튜버 잇섭, 기즈모, 최호섭 칼럼니스트 등 라인업이 정말 화려합니다(저, 에디터H도 있어요). 테크로 둘러싸여 2024년을 보낸 유튜버들이 ‘올해의 OO’으로 무엇을 뽑았을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읽어주세요.
[다른 어워즈 보러 가기]
2024 디에디트 어워즈: 푸드 (https://the-edit.co.kr/73209)
2024 디에디트 어워즈: 컬처 (https://the-edit.co.kr/73193)
2024 디에디트 어워즈: 스타일 (https://the-edit.co.kr/73349)
올해의 화제작
애플 비전 프로
by. 디에디트 에디터H
애플의 첫 번째 혼합 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 이 제품이 성공을 거두었냐고 묻는다면 단언하기 어렵다. 오히려 실패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미국 내 비전 프로의 판매량은 올해 1분기와 2분기를 합해 17만 대 수준. 500만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을 감안하더라도 애플이 판매 중인 어떤 제품군보다 저조한 판매량이다. 이미 부품 생산을 중단했다는 이야기마저 나왔을 정도. 하지만 이 하드웨어가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었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YES. 최근 몇 년간 이토록 강렬한 존재감의 소비재가 있었던가.
매끈한 글래스 고글의 곡선을 따라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연결된 알루미늄 합금 프레임. 다이얼을 돌리면 머리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니트 밴드. 안팎으로 적용된 모든 기술과 만듦새가 새롭고 정교했다. 사실 아무리 설명해도 누군가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사치품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비전 프로는 역대 애플 제품 중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무슨 뜻이냐면 실제로 착용하기 전까지는 이 제품이 주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처음 착용해 보면 가장 놀라운 사실은 눈앞의 풍경이 ‘가짜’라는 것. 카메라로 수집한 이미지를 실제로 바라보는 것처럼 지연 없이 디스플레이상에 구현해 준다. 시선을 움직여 바라보면 커서가 움직이고, 두 손가락 끝을 꼬집듯 잡아주면 프로그램이 구동된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도 현실 공간의 물리적인 제약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스크린과 공간감을 연출할 수 있다. 비전 프로가 완벽한 제품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배터리를 연결한 상태로 사용해야 하는 거추장스러움, 650g에 달하는 무게, 콘텐츠의 부족 등 아쉬움이 많았다. 게다가 메타의 퀘스트3 같은 제품과 비교한다면 가격 정책 역시 불리하다. 이 모든 결과가 판매량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비전 프로의 시작이 미약할지라도, 애플의 시도가 보여주는 ‘비전’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모두가 비전 프로를 구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뒤늦게 국내에 정식 출시하며 스토어에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한 번쯤은 시도해 보시길. 태어나 가장 미래적인 경험이 될 테니까.
올해의 가전
LG 워시콤보
by. 잇섭
260만 구독자의 테크 유튜브 채널 <잇섭> 운영
세탁과 건조가 한 번에 되는 올인원 세탁건조기인 LG 워시콤보. 맞벌이 부부라면 삶의 질과 시간을 비용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만족도가 높을 만한 제품이다. 기존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상하로 결합되어 있는 워시타워를 사용할 때도 두 대를 동시에 가동할 수 있다는 점과 넉넉한 용량은 만족스러웠지만, 분명 아쉬움이 있었다.
일단 내 빨래 패턴을 설명해야겠다. 맞벌이 부부인데다 둘다 퇴근이 늦다 보니 아침에 출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평균 밤 10시. 소음 때문에 세탁기를 돌리기 쉽지 않은 시간대다. 그래서 주말까지 빨래를 쌓아두다가 한 번에 돌리곤 하는데, 그 많은 양을 연속으로 돌리려면 외출조차 쉽지 않았다. 해외 출장이라도 다녀오게 되면 쌓이는 빨래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불 빨래까지 더해지면 세탁 시간을 기다렸다가 건조기까지 돌려야 하는 과정이 거의 하루를 잡아먹었다. 소중한 주말이 얼마나 아깝던지.
그런 와중에 세탁과 건조가 같은 통에서 이루어지는 일체형 워시콤보의 등장은 빛 자체였다. 사용하던 워시타워를 중고로 판매하고 워시콤보를 들이고 나니 빨래 스트레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수건을 모아서 돌려놓으면, 세탁부터 건조까지 마친 뽀송한 수건이 나를 기다린다. 운동 다녀오는 날에는 소량 빨래도 부담 없이 돌릴 수 있다. 더더욱 좋은 건 건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불 빨래. 그냥 넣어놓고 외출하면 세탁부터 건조까지 원스탑으로 되다보니 기다릴 필요도 없고, 무거운 이불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기는 과정마저 없어 너무나 쾌적하다.
아쉬운 점은 울소재를 세탁할 때 한 번씩 자동 세제투입을 꺼줘야 하는데, 설정을 바꾸고 다시 켜고 끄고 하는 과정이 길고 귀찮다는 것. 그리고 삼성 제품처럼 건조 후 자동 문열림이 없다는 것도 사용하면서 느낀 단점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올해 나의 일상에서 가장 만족한 제품이다.
올해의 제품
오즈모 포켓3
by. 디에디트 에디터H
이럴 수가. 내가 오즈모 포켓3를 올해의 제품으로 뽑는 날이 오다니. 심지어 2023년에 출시된 제품인데 말이다. 2018년에 처음 출시됐던 오즈모 포켓 1세대는 그야말로 망작이었다. 116g의 무게로 짐벌 일체형 핸드헬드 카메라라는 점이 크게 주목받았지만, 막상 사용해 보니 작은 거 말곤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 화질은 기대 이하, 배터리는 짧고, 발열 심하고, 화면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된 모니터링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오즈모’라는 이름과 의절한 채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오즈모 포켓3가 나왔을 때도 심드렁했다. 온세상 크리에이터들이 오즈모 포켓3를 칭송하길래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했다. 심지어 주문이 폭주했는지 물량이 모자라 배송도 꽤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 써봤더니 어땠냐고? 바로 한 대 더 구입해버렸다.
화면은 2인치 OLED 디스플레이로 바뀌어서 제법 모니터링이 가능한 수준이 됐고, 배터리 용량도 크게 늘었다. 물론 무게도 179g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훌륭한 휴대성이다. 사이즈 대비 뛰어난 화질이 가장 놀랍다. 무겁고 훨씬 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편한데, 결과물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짐벌이기 때문에 흔들림을 잘 잡아줘서 촬영 스트레스가 한없이 0에 수렴하는 것은 물론이다. 야외 촬영이 있을 때 오즈모 포켓3 하나만 챙기면 가볍고 편하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카메라의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함께 출시된 마이크와 연결성이 예술이다. 오즈모 포켓3에는 마이크 수신 기능이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어서, DJI Mic2를 켜기만 하면 자동 페어링이 된다. 이 역시 촬영 스트레스를 확 줄여주는 포인트다.
물론 본체 자체에 나사홀이 없다는 것과 방수에 취약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긴 하지만, 촬영에 대한 경험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을 만큼 대단한 제품인 건 분명하다. 오즈모 포켓4가 벌써 기대되는 마음.
올해의 촬영 장비
DJI NEO
by. 신동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이자, 뮤직비디오 감독
영상 촬영용 드론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갖고 있는 DJI에게도 깊은 고민은 있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드론 영상에 익숙하다. 영화, 드라마, 예능 그리고 유튜브 영상에서도 자연스럽게 항공 촬영 영상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직접 드론으로 촬영을 해보고, 드론을 구매해서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디에디트 독자 중에서도 드론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썩 많지 않을 것이다.
DJI NEO는 이 고민에서 시작된 제품이고, 그 고민을 가장 DJI다운 방식으로 해결해서 더 재밌는 제품이다.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여행에서 나와 내 가족, 연인과의 추억을 근사하게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항공 촬영? 너무 멋지겠지. 문제는 드론이라는 기기의 접근성이 다른 촬영 기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 본체에 컨트롤러, 추가 배터리까지 챙겨야 하는 수고는 물론이고 하늘에 드론을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담대함마저 요구된다. 여행지에서 컨트롤러를 통해 자유자재로 드론을 조작하고 촬영하려면 절대적인 학습 시간도 필요하고 말이다.
DJI NEO는 이 ‘휴대성’과 ‘조작의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해결하고, 딱 우리가 원하는 항공 촬영의 특별한 경험만을 남기기로 했다. 휴대성은 손바닥만 한 사이즈에 스마트폰보다 가벼운 135g 본체 하나로 해결했고, 조작의 어려움은 컨트롤러를 아예 없애버리는 과감함으로 해결해 버린다.
엄청난 제품이다. 본체 버튼만으로 손바닥 위에서 이륙, 촬영, 착륙까지의 모든 과정이 완료되도록 만들다니. 심지어 DJI가 상위 드론에 적용했었던 피사체 트래킹, 장애물 회피 성능, 자동화된 주요 촬영 무빙의 노하우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비슷한 컨셉의 드론은 존재하지만, 비슷하게 비교할 만한 드론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촬영을 업으로 하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획기적인 제품이지만, 아직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내년 여름휴가에서 손바닥에 DJI NEO를 올려놓고 날리는 사람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면 성공인 거지. 다만, 드론 촬영의 경험을 소수에서 모두로 확대했다는 측면에서 가장 기발하고 재밌었던 제품으로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다.
올해의 오디오
뱅앤올룹슨 베오플레이 H100
by. 김정철
전 <얼리어답터>, <더기어> 편집장이자 테크 유튜브 채널 <기즈모> 운영자
마음의 고향, 디에디트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올해의 오디오를 딱 하나 뽑아달라는 부탁이다. 올해 나온 오디오 중에 뭐가 좋았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러닝크루를 위한 제품으로는 보스 울트라 오픈 이어버드가 최고였을 것이다. 휴대용 스피커 중에는 마샬 윌렌2가 좋았다. 블루투스 스피커 중에는 클립쉬 더 원 플러스, 그리고 사운드바 중에는 삼성 HW-Q990D가 가장 추천할만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2024년을 기념할 만한 제품을 뽑자면, 그래도 뱅앤올룹슨 베오플레이 H100을 위해 자리를 비워둬야 할 것 같다.
뱅앤올룹슨 가장 음질이 좋고, 가장 가성비가 좋은 브랜드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오디오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생에 10% 정도를 뱅앤올룹슨을 비난하는 데 쓰곤 하니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뱅앤올룹슨은 100여년간 오디오 역사에서 굵은 발자취를 남겨 왔다. 미술품처럼 멋진 디자인의 오디오를 만들었고, D클래스 앰프를 개발했으며 멀티룸 기술, 무선 기술, 룸 보정 기술 등 현대 오디오에 핵심이 되는 대부분의 기술을 선구적으로 시도한 회사다.
뱅앤올룹슨이 10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베오플레이 H100은 예술적인 디자인과 사악한 가격표, 그리고 철학이 잘 비벼진, 참으로 뱅앤올룹슨다운 제품이다. 40mm의 티타늄 드라이버와 브랜드 특유의 투명하고 개방감 있는 사운드가 특징이다. 여기에 돌비애트모스, 노이즈를 감쇄해주는 ANC기능과 외부소리 듣기, 선명한 통화음도 모두 수준급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향후 10년 이상 쓸 수 있도록 모든 부품을 모듈화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헤드밴드, 배터리, 드라이버 유닛 등이 모두 모듈화 돼서 추후에 낡거나 최신 기술이 적용되면 교체 가능하다. 마치 롤렉스 시계나 라이카 카메라처럼 대를 이어 쓸 수 있는 헤드폰으로 디자인한 것. 부모님이 쓰던 헤드폰으로 부모님이 듣던 음악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하다니. 이 정도면 올해의 오디오로 뽑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올해의 파괴왕
ChatGPT
by. 최호섭
20년차 IT 칼럼니스트
요즘은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사람들이 이 글을 내가 직접 썼다고 생각해 줄까?’라는 의문과 ‘요즘 세상에 AI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글을 쓰는 미련함이 맞나?’하는 반문이 끊임없이 부딪친다. 그것도 IT 칼럼을 말이다.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할 때만 해도 2024년이 이렇게 인공지능으로 뒤덮일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갑자기 튀어나온 기술이 아니라 반 세기 전에 기본 아이디어가 세워진 것이다. 반세기 전에 이미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이 세워졌지만, 그 시절에는 기술적 한계라는 무거운 문턱에 막혀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GPT가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라는 가능성을 선보이면서 세상이 AI를 다시 보게 됐다.
지금도 챗GPT는 매우 비싼 비용으로 운영된다.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고 있고, 매달 접속만 16억 건이 넘는다. 오픈AI가 이를 버텨내는 컴퓨팅 운영비용은 하루에 70만 달러, 약 10억원에 달한다. ‘기술에는 돈이 든다’라는 진리를 정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 올 해 GPT가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다.
게다가 오픈AI는 GPT-4를 기반으로 크기와 역할이 다른 부가적인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었고, 이제 주어진 내용들의 맥락을 이어 맞추는 ‘사고의 영역’을 흉내내기에 이르렀다. 매끄럽게 대화하는 목소리까지 얻으면서 이제 컴퓨터와 대화하고, 생각을 함께 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진짜 내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늠도 안 되는 게 ChatGPT다. 내년 이맘때, 내가 지금처럼 이런 글을 직접 쓰고 있을까? 아니면 GPT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글이 또 다른 의미의 ‘내 글’이 될까? 점점 더 빨라지는 이 파괴적 변화 속에서, 생각하는 인간의 가치와 손맛은 과연 어디까지 남을까? 지금의 고민이 불편한 동시에 흥미로운 이유는, 이 질문에 답할 시간이 무섭게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가성비
애플 맥 미니
by. 이주형
디에디트 객원 에디터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맥을 가성비라고 부르는 시대가 올 줄은 몰랐으니까. 애플이 얼마전 선보인 M4 맥 미니는 애플 실리콘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가성비 데스크톱이다. 무려 14년 만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탈바꿈한 이번 맥 미니는 애플 실리콘의 최대 장점인 전력 대비 성능비를 살렸고, 가로세로 13cm 미만의 정육면체 크기로 놀라울 만큼 작아졌다. 혹자는 ‘맥 나노’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라고 할 만큼. 얼마나 작고 가볍냐면, 맥 미니에 적당한 크기의 외장 모니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따로 들고 다녀도 맥북 프로보다 가벼울 정도다.
하지만 이 작은 크기를 얕볼 순 없다. 기본으로 탑재되는 M4 프로세서는 사진 보정이나 간단한 4K 동영상 편집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성능을 자랑하니까. 예전 같으면 맥을 보면서 “이거보다 더 싼 가격으로 비슷한, 혹은 더 나은 성능의 윈도우 PC를 맞출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겠지만, 맥 미니에는 이 주장이 통하지 않는다. 맥 미니의 가격(89만 원)에 맥 미니의 성능과 크기를 맞출 수 있는 윈도우 PC를 찾는 건 유니콘을 찾는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할 테니까. 게다가 이보다도 더 높은 성능이 필요하다고 하면 M4 프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번에 맥 미니가 더욱 가성비가 된 것은 바로 기본 메모리 덕분. 애플은 오랜 기간 동안 8GB 기본 메모리로 고집해 왔는데, 이번 M4 시리즈에서는 드디어 기본 메모리가 16GB로 업그레이드됐다. 풍문에 따르면 애플 인텔리전스 때문에 올려줬다고 하는데, 애플 인텔리전스의 사용성은 아직 의문이지만 일단 감사를 전한다.
여기서 딱 한 가지 함정이 있다면, 맥 미니의 압도적인 가성비는 ‘기본형 한정’이다. 애플의 사악한 업그레이드 가격은 여전해서 메모리나 SSD를 업그레이드하려고 하는 순간 최종 구매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기본 메모리가 16GB가 되면서 기본형이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는 것.
올해의 실망
갤럭시 버즈3 프로
by. 디에디트 에디터H
올해의 실망이라는 슬픈 타이틀로 선정하긴 했지만, 이 제품에 대한 나의 마음은 좀 복잡하다. 일단 밑밥부터 깔아야겠다. 신제품 발표회 현장에서 갤럭시 버즈3 프로를 처음 착용해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물론 좋은 의미로. 가볍고 편한 착용감. 에어팟 프로2와 비교했을 때 음질은 물론 ANC도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시끄러운 환경에서 통화해도 주변 소음을 싹 줄여줄 만큼 통화 품질 역시 훌륭했다. 문제는 새로운 디자인과 그 디자인을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갤럭시 버즈3 프로는 기존 디자인을 버리고 스템이 길게 뻗어있는 일명 ‘콩나물 디자인’을 택했다. 맞다. 에어팟과 비슷한 형태다. 디자인이 공개됨과 동시에 에어팟 짝퉁이라는 둥 혹평이 이어졌다. 삼성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 거다. 통화 품질을 담보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갤럭시 버즈3 프로의 디자인에는 에어팟 프로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기 위한 온갖 피, 땀, 눈물이 엿보인다. 케이스의 상단 뚜껑을 반투명하게 처리하고 에어버드 스템은 각이 진 형태로 마감하고, LED 조명이 들어오는 블레이드 디자인까지 채용했다. 좌우 이어버드는 블루와 오렌지 컬러로 구분했다. 무수히 많은 디테일이다. 이렇듯 복잡하게 만들다보니 문제가 터지고 만다.
이어팁이 교체 과정에서 쉽게 짖어지거나, 양쪽 유닛의 LED 컬러와 밝기가 균일하지 않은 등 마감 관련 결함이 속출했다. 31만 9,000원의 고가 제품이다보니 품질 검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원성이 드높았다. 삼성전자는 빠르게 제품 교환, 환불에 대한 공지를 하며 사실상 리콜을 진행했다. 100%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출시된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품 자체의 성능은 아주 좋았으니까. 출시된 지 한참 지난 시점에 다시 바라보자면 비운의 제품이기도 하다.
올해의 종목
엔비디아
by. 최호섭
20년차 IT 칼럼니스트
“엔비디아 샀어?” 그래픽카드 이야기인지, 주식 이야기인지 헷갈리는 질문이다. 아니,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어질 이 질문의 의도는 대부분 후자 쪽일게다. 한때 테슬라가 쥐고 있던 그 자리를 엔비디아가 꿰찬 것 같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해 급상승했고, 덩달아 이 회사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높아졌다.
엔비디아에 쏠리는 이목은 정확히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연결된다. ChatGPT를 필두로 생성형 AI는 인공지능에 대한 범위가 일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는 PC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모든 사용자로 시장이 확대된다는 의미인데, 그게 공짜로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그 뒤에 엄청난 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고, 지금 그 기반 기술의 대부분이 엔비디아의 반도체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시장을 미리 내다보고 GPU와 지포스 그래픽카드를 만든 것은 분명 아니다. 1999년 가을 처음으로 GPU라는 이름으로 ‘지포스 256’ 그래픽 칩셋을 내놓을 때만 해도 그럴싸한 마케팅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단순한 계산을 수없이 많은 코어로 쪼개서 CPU보다 빨리 처리해 버리겠다는 아이디어는 의외로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요즘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암호화폐의 덕은 보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암호화폐의 채굴은 그래픽카드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 중 하나였는데, 이제 그 가능성은 이전에 비해 희박해졌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지금 엔비디아의 열풍은 인공지능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시장에 파는 슈퍼컴퓨터의 가격은 수억 원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걸 한 대 사서는 답이 안 나온다. “많이 살수록 행복해질 것”이라는 젠슨 황(Jensen Huang) CEO의 말이 귀에 맴돈다. 비슷한 원리의 반도체라고 해도 쓸모에 따라서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고, 엔비디아는 그 가치를 아주 잘 살리고 있다.
그런데 엔비디아가 잘 나갈수록 서운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게이머들이다. 엔비디아의 뿌리는 여전히 게이밍에 있는데 상대적으로 ‘싼’ 그래픽카드에 아쉬운 느낌이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필요하지만 지난 30년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내년에는 게임 시장에도 신경을 좀 더 써줬으면…
올해의 실용성
갤럭시 AI
by. 디에디트 에디터H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가 화두였던 만큼 기업마다 자신들의 AI 브랜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수많은 AI 서비스를 사용해봤지만,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갤럭시 AI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갤럭시 AI가 특별히 고도화된 기술이나 기능을 선보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매일 사용할 만한 일상 적인 기능의 도입으로 AI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데는 확실해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일반 동영상을 재생할 때 화면을 롱탭하면 1/4배율의 슬로우모션 영상으로 재생해주는 ‘인스턴트 슬로모’ 기능. 사진의 수평을 캊추면 비어있는 영역의 배경을 자동으로 채워주는 생성형 AI 기능. 외국어로 된 웹페이지를 바로 번역해주고 심지어 요약까지 해주는 기능까지. 정신을 차려보니 생각보다 습관처럼 쓰게 되는 기능이 많더라.
특히 만족스러운 건 올해 초부터 선보인 ‘서틀 투 서치’. 갤럭시 스마트폰의 어느 화면에서나 홈버튼을 롱탭하고 검색하고 싶은 영역에 동그라미를 그리면 바로 구글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는 기능이다. 누군가 귀여운 키링을 달고 있건, 친구의 가방이 마음에 든다면 바로 카메라에서 서클 투 서치로 검색해볼 수 있다. 구글 검색 기반이라 결과도 꽤 정확하게 나온다. 심지어 하반기에는 번역 기능이 추가 되면서 다양한 언어가 섞여 있는 간판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보여주고, 원하는 텍스트만 선택해서 바로 구글 검색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올해 출시된 최신형 갤럭시S24 시리즈나 갤럭시 Z 폴드6, 플립6 뿐만 아니라 2년 전에 출시된 기기들까지 갤럭시 AI를 지원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