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2일 이의리가 마운드에 다시 선다는 소식에 함평 챌린저스 필드로 달려갔다.
많은 이들이 함평을 찾았던 날, 조용히 뒤에서 이의리를 지켜보던 선수가 있었다.
왼팔에 보조기를 한 채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던 선수.
그의 등에 쓰인 ‘0’이라는 숫자가 그새 어색했다.
지난 4월 11일 SSG전을 끝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 곽도규였다.
2023년 공주고를 졸업하고 KIA 유니폼을 입은 그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프로 데뷔를 준비하던 마무리캠프에서 ‘고등학생’ 곽도규는 여유가 넘쳤다. 자신의 루틴 대로 불펜 피칭을 준비하고, 공을 던지고, 느긋하게 인터뷰를 했다.
첫 인터뷰에서부터 “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곽도규였다.
2023년 적응기를 끝낸 뒤 2024년의 곽도규는 ‘우승 주역’이었다.
71경기에 나와 55.2이닝을 소화하면서 KIA 불펜의 핵심 선수가 됐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도 곽도규는 특별했다.
4경기에 나와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곽도규는 화제의 세리머니로도 주목을 받았다.
10월 26일 대구에서 진행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9-2로 앞선 8회말 구원 투수로 나선 곽도규는 이닝을 마무리한 뒤 모자를 왼쪽으로 돌려 썼다.
팔꿈치 수술로 우승 시즌을 함께 하지 못한 이의리를 향한 세리머니였다.
“모자에 의리형 번호(48)가 쓰여 있는데, 그쪽으로 모자를 돌렸다. 의리 형이 48번 세리머니를 해주라고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나온 것 같다.”

이의리를 향한 곽도규의 마음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V12’가 확정됐던 10월 28일, 이번에는 6회를 무실점으로 막고 챔피언스필드 마운드를 내려오던 곽도규는 상의를 펼쳤다.
곽도규는 이날 이의리의 이름과 백넘버 48이 쓰인 옷을 유니폼 안에 입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2024시즌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의리를 위한 세리머니를 했다.
주어진 역할을 완수해야만 할 수 있었던 세리머니, 그래서 곽도규는 더 그 순간을 즐기면서 아웃카운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올 시즌에도 곽도규는 KIA가 기대하는 당연한 필승조였다.
하지만 곽도규답지 않은 피칭이 이어졌다.
9경기에 나와 4이닝 소화에 그쳤던 곽도규의 평균자책점은 13.50까지 뛰어올랐다.
불펜진의 동반 부진 속 곽도규는 4월 12일, 우울한 생일을 맞았다. 이날 곽도규는 굴곡근 파열 진단을 받았다.
곽도규답게 흔들리지 않고 이내 일기를 썼다. 그는 차곡차곡 한 달간의 스케줄을 구상했다. 어떻게 밸런스를 잡고, 어떻게 보강해서 복귀할지를 적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재검진을 한 결과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스케줄을 다 짜놨는데 서울 병원 가니까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관리를 잘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나한테 속상하고 억울한 느낌이었다.”
예상할 수 없었던 부상이라 곽도규의 충격은 컸다.
곽도규는 “너무 안 아팠다. 던질 수 있었는데 통증보다는 힘이 빠지고 손이 떨렸다. 수전증 수술 이력이 있어서 날이 추워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햇다. 그날은 그 밸런스가 아니었다. 내가 더 내 상태를 알아야 했다. 예방을 못했다”며 “캠프에서부터 밸런스 고민이 많았다. 뭔가 고치려고 하면 하나가 어긋나고, 고치려고 하면 하나씩 어긋나고 내 맘에 안 들었다. 그런데 이게 밸런스 문제가 아니라 팔이 안 좋았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혹사 그런 것은 말도 안 된다. 트레이닝 파트가 부족했다가 아니라 흐름인 것 같다. 속상하지만 투수들이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운 좋게 팀 우승에 함께 했다”고 덧붙였다.

5월 22일 일본에서 왼쪽 내측측부 인대 재건술을 받은 곽도규는 6월 말 다시 복귀를 위한 걸음을 시작했다.
싫었던 감정들까지 그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곽도규는 “공 못 던졌을 때 스트레스 받고, 야간 운동 하는 게 싫었는데 그런 감정들도 보고 싶다. 재활 스케줄 일찍 끝내고 경기 보려고 하는 것도 공을 던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다”며 “챔피언스필드에서 공을 너무 던지고 싶다. 어떤 것을 즐겨도 그 감정이 안 나온다. 어떤 걸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빨리 채우고 싶은 마음이다”고 말했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은 천천히 채울 계획이다.
“미지근한 것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게 준비하겠다. 뜨거우면 타더라. 재활 첫날부터 열정이 불타올라서 몸이 털린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코치님이 그러면 못 버틴다고 못 하게 하셨다. 작게 작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앞에 좋았던 사례가 있었으니까 맞춰갈 것도 있다. 의리 형의 조언대로 따라가면서 돌아오겠다.”

곽도규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는 이의리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과 야구를 대하고 있다.
지나치게 뜨거운 열정이 때로는 자신을 다치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입단과 함께 이의리는 KIA 마운드를 책임지는 선수였다.
신인 시절 도쿄올림픽 마운드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기도 했다.
프로 생활 시작부터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던 이의리는 모든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야구를 생각하고, 야구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이 다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가장 야구를 하고 싶었던 순간에 이의리는 마운드에 없었다.
황당한 대표팀 낙마로 아시안게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고, 너무나도 기다렸던 한국시리즈는 부상으로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마음고생, 몸고생을 하면서 다시 마운드에 오르게 된 만큼 이의리는 수술 후 첫 실전이 끝난 뒤 자신을 챙겼다 .
이의리의 첫 실전 소감은 “전력 투구를 생각했는데 그게 잘 된 것 같다. ‘고생했다’, ‘잘던졌다’고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였다.

2023년 스프링캠프에서 이의리는 매일 야구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매일 쓴다. 목표, 느낀 점을 쓰다 보면 그런 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쓸 때도 기분 좋고 생각도 자주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그런 선수가 된다고 했다.”
2025년 다시 이의리에게 물었다. 매일 일기를 쓰느냐고.
“일기라기 보다는 던지는 날 던지는 것에 대한 피드백 정도를 쓴다. 너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뭔가를 해야겠다라기 보다는 생각날 때마다 쓴다. ”
운동에 대한 자세도 조금 달라졌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운동.
이의리는 “운동도 너무 강박 가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열심히는 하는데 그래도 내 컨디션에 맞춰서 몸을 조금 덜 혹사 시키는 느낌으로 한다. 시즌 때 월요일마다 나와서 운동했었다. 할 게 없으니까 또 운동을 안 하면 살이 빠져서 그랬다. 그런 강박이 있었는데 최대한 그런 부분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틈틈이 하는 느낌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와서 덜컥 많은 것을 얻고 그만큼 책임질 것도 많았던 두 사람. 화려한 조명 아래 서봤던 만큼 무대 밖의 어둠은 더 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곽도규와 이의리가 채우기 위해 비우고 있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