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치 헬기, 드론에 밀려 전장 퇴장 수순 밟나
한때 ‘전차 킬러’로 불리며 육군의 핵심 공격 자산으로 군림했던 AH-64E 아파치 가디언 헬기의 추가 도입 사업이 사실상 백지화될 전망이다. 770억 원이 넘는 고가의 대형공격헬기를 36대 더 도입하려던 국방부의 계획이 국회의 2025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대폭 삭감되며, 무인기 중심의 미래 전력 변화에 따라 발목을 잡힌 셈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형 헬기가 드론에 연이어 격추된 사례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합동참모회의에서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은 유무인복합체계(UAV+Manned) 전환 검토가 결정됐고, 이번 2차 추경에서도 관련 예산은 기존 10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대폭 감액됐다. 실질적으로 초도계약금 성격이었던 이번 예산이 무력화되면서, 사업 전면 재검토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전차 킬러’의 몰락…드론 앞에 굴욕
AH-64E 아파치는 미국 보잉사가 개발한 다목적 공격헬기로, 열상 탐지·레이더·정밀 타격 능력을 갖춘 현대 전장 최고의 공격 자산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한국군은 1차 사업을 통해 이미 36대를 도입해 실전 배치 중이다. 그러나 2차 사업은 전례 없는 예산 폭등(441억 → 773억 원)과 맞물려 드론 전력의 부상으로 군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대형 공격헬기를 드론에 잃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고가의 유인 공격헬기를 유지하는 것이 효율성과 생존성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소형 드론 한 대가 수백억 원짜리 헬기를 격추시키는 구조는 군의 투자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무인 복합체계로의 전환 가속화
합참이 밝힌 대로, 아파치 헬기 2차 도입 대신 유무인 복합체계 전환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육군은 공격헬기와 정찰·타격용 무인기(드론)를 연계한 작전 개념을 시험 중이며, 이를 통해 조종사 피해를 줄이고, 원거리에서 적 전차·지상 표적을 제거하는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군 구조 재설계를 모색 중이다.
미군 또한 MQ-1C 그레이 이글, 퓨처 어택 리콘 헬기(FARA) 등 다양한 무인·반무인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기존 아파치 헬기 운용도 드론 연계 작전 전환 중심으로 조정되고 있다. 한국군이 이 흐름에 맞춰 새로운 플랫폼 개발 및 실험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전술적 진화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방산 예산, 대거 삭감된 7개 사업
아파치 외에도 이번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되었던 총 7개 방위력개선 사업 예산 878억 원이 감액됐다. 구체적으로는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 개량 300억 원, △이동형 장거리 레이더 120억 원, △120㎜ 자주 박격포 200억 원, △특수작전용 권총 137억 원 등이 포함됐다.
방사청은 감액의 배경으로 시험평가 지연, 탄 규격 불일치, 외국 업체와의 협상 결렬 등 구조적 문제를 언급했다. 특히 120㎜ 자주 박격포는 탄약 규격 문제로 실전 도입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예산이 삭감됐으며, 권총 사업도 낙찰 차액이 발생해 감액 조정됐다.
이러한 일련의 감액 조치는 단순한 예산 절감이라기보다는, 실행 가능성과 효율성을 고려한 현실적 조정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트럼프의 압박과 미군 협력 변수는 여전
아파치 사업이 백지화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과의 방산 협력 및 국방비 증액 압력이 다시금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가 현실화되면서, 미국은 동맹국의 국방비 증가 및 대중 견제 역할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트럼프는 과거 한국에 GDP 대비 5% 국방비 지출을 요구한 바 있으며, 대중 견제의 일환으로 첨단 무기 수입을 통한 협력 확대를 압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맞물려, 한국군이 미국제 무기 도입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하는 현실은 아파치의 ‘부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다만 현재로선 국내 전력구조의 재편 논의와 실질 작전 효율성이 우선 고려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추가 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방산 4강’ 도약,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핵심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방산 4강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선, 모든 무기체계를 무조건 도입하기보다는 미래 전장에 부합하는 무기체계로의 전환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고가 무기를 대량 도입하던 과거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으며, 지금은 AI·드론 기반의 실용적·경제적 무기체계 확보가 국가 방산 전략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아파치의 도입이 보류된 현재, 한국은 오히려 미래형 유무인 복합 전력의 선도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국산 무인기 체계 개발과 KAI의 유인헬기 연계 전력화 전략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글로벌 수출 경쟁력 확보와도 직결될 수 있다. 아파치의 굴욕은 한 시대의 종말이자, 새로운 군사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