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판타지에 가둬진 여성의 욕망, 돌아온 '애마' [복길의 방송일기]

2025. 8. 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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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6부작 ‘애마’
편집자주
복길 대중문화평론가가 화제의 방송을 깊게 들여다봅니다.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애마'. 넷플릭스 제공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김부선이 연기한 ‘떡볶이 아줌마’는 남자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야한 농담을 즐기고,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잘 알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말죽거리 잔혹사’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려낸 영화라 할 수 있을까?

‘대중매체 속 여성은 남성적 시선의 대상으로 객체화된다’는 영화학자 로라 멀비의 말처럼,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성의 욕망’은 탐구가 아닌 대상화에 익숙한 소재다. 영화 속에서도 ‘떡볶이 아줌마’의 욕망은 모든 남학생의 농담 속에서 머물다 주인공 현수(권상우)의 성장 서사 속 부정적인 경험으로 귀결된다. 개인의 욕망을 독립적인 경험이 아니라, 그 욕망을 성욕에만 국한하여 쾌락의 급부로만 승인하는 이러한 방식은 김부선이 속편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던 영화 ‘애마부인’ 시리즈를 관통하는 문법이었다.

김부선의 필모그래피가 한국 영화가 ‘여성의 욕망’을 어떻게 그렸는지 증명할 수 있는 역사라면,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김부선과 비슷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80년대 여성 배우들에 대한 헌사이자 위로다. ‘애마’는 1980년대 성인영화를 대표하는 브랜드 ‘애마부인’ 시리즈를 그대로 복원하면서, ‘3S(스포츠·섹스·스크린)정책’ 아래 여성 배우들이 감내해야 했던 억압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여성 배우들이 억압에 맞서 기회를 붙들었던 야망의 주체임을 강조한다.

밤무대 가수로 일했던 신인 배우 주애(방효린)는 일상처럼 성희롱을 당하고, 꿈에 그리던 영화의 배우가 된 뒤에도 접대를 강요당한다. 주애는 ‘배우’라는 직업에 다가가면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고 영화는 그 곤경을 집요하게 포착하며, 신체적 노출이 중심인 작업 방식에 환멸을 느낀 희란(이하늬)과 외부의 간섭으로 자신의 창작에 몰두할 수 없는 신인 감독 인우(조현철)의 좌절을 교차시킨다.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애마'.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애마'. 넷플릭스 제공

이는 과거의 창작자들이 어떤 고충을 갖고 있었는지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애마’는 결코 원작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희란은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낸 작품이 저속한 삼류 영화로 개봉된 것을 보고 “영화한테 당했다”는 씁쓸한 감상을 주애에게 전한다. 주애는 감독조차 “쓰레기”라 부르는 편집본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에게 ‘부끄럽다’는 평가를 받고 무너진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많은 폭력을 감내했던 희란과 주애의 최종적인 좌절은, 그 시대 여성 배우들이 과연 어떤 야망을 품었을지 또 어떻게 욕망을 연기해야 했을지를 아프게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여성의 욕망을 파고들며 사회를 추궁하는 ‘애마’의 질문은, 시대의 한계를 넘어 현재 진행 중인 여성들의 문제에도 닿는다.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영화사 사장 구중호(진선규)의 애인이 된 거라 당당히 말하는 미나(이소이)는 정치인과 재력가들이 접대를 받기 위해 여는 연회에 자진해서 참석하는 배우 지망생이다.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는 결국 권력자 2세들이 주최한 연회에서 약에 중독되어 사망한 채 발견된다.

언론은 그의 죽음을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왜곡하고, 그의 죽음을 은폐한 이들은 미나가 스스로 자처한 일일 뿐이라며 조소한다. 권력자에 대한 접대를 일의 연장이라 생각했던 희란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 산업을 지배해온 권력형 폭력을 정면으로 고발할 결심을 한다. ‘애마’는 희란의 각성과 미나의 죽음을 하나로 묶으면서, ‘실패’의 낙인이 찍힌 여성들의 지켜지지 못한 존엄에도 연대의 공간을 내어준다.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애마'. 넷플릭스 제공

결국 ‘애마’는 ‘애마부인’을 통해 한국 영화사를 반추하면서, 지극히 현재를 말하는 대체 역사극이다. 이를 두고 관객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각색이라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애마’는 ‘완전함’을 선택하는 대신 ‘여성의 욕망’이 남성의 판타지 속에 어떻게 가두어지는지를 보여주면서 그 족쇄를 파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과 용기임을 증명한다. 과거의 굴욕을 위로하며 상처마저도 기꺼이 영광으로 보듬는 ‘애마’의 방식은, 영화를 거쳐간 수많은 ‘애마’에 대한 헌정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또 다른 ‘애마들’에 대한 커다란 위로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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