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걸릴 일을 6개월로 보고하자 정몽구 회장 “너, 집에 가라”

김기훈 기자 2026. 6. 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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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TalkTalk] 고기영 한신대 교수 ⑥
현대차 품질본부장에 김상권 전무 임명
김 전무, 설계 부문에 개선과제 70% 부과
설계 부문서 항의 쏟아져도 밀어 부쳐
정 회장, 부서간 책임 전가에 “공동책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자동차 품질 개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사진은 정 회장이 2016년 슬로바키아의 기아차 공장에서 신형 스포티지 조립 과정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현대차그룹

현대차 임원 출신인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품질경영 꿈을 현실로 바꾼 인물로 김상권 현대자동차 전무를 꼽았다. 김상권 전무는 품질본부를 성공적으로 이끈 이후 연구개발본부로 되돌아갔고, 2000년대 후반 부회장으로 퇴임했다. 김 전무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품질본부장 김상권 전무

―김상권 전무가 현대차의 품질개선에 성공한 비결은?

“품질개선 방식에 있다. 김 전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품질개선을 추진했다. 그는 품질개선 과제 리스트를 만들고, 그 과제의 70%는 설계 부문에, 15%는 부품업체에, 나머지 15%는 생산 부문에 부과했다. 이전에 품질 과제를 주로 떠안은 것은 생산 부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연구개발 부문에 가장 큰 과제를 부과했다. 게다가 김 전무는 한술 더 떠 이런 방침을 품질회의에서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함으로써 공식화해 버렸다. 거의 강제적으로 과제를 배분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강제 배분하면 다른 부문에서 반발하지 않나?

“가장 큰 과제를 떠안게 된 연구개발 부문이 온갖 항의를 쏟아냈다. 연구개발본부장인 이충구 사장은 ‘연구개발 출신인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 김 전무는 연구개발 부문 동료들에게서도 온갖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김 전무의 생각은 확고했다. 연구개발 부문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면 품질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설계품질의 추구가 품질개선의 핵심이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김 전무의 생각이 옳았다. 연구개발 부문이 품질 과제를 집중적으로 맡아 설계품질을 추구하자 그렇게도 잡히지 않던 품질이 잡히기 시작했다.”

김상권 현대차 부회장은 전무 시절에 품질본부장을 맡아 현대차 품질 개선에 많은 공을 세웠다. 사진은 김 부회장이 지난 2005년 10월 14일 미국 미시간주의 현대차 기술연구소 완공식에서 제니퍼 그랜홈 미시간주 주지사에게 설명하는 모습. 오른쪽부터 김 부회장, 토마스 허바드 전 주한대사, 그랜홈 주지사./현대차그룹

―김 전무가 그렇게까지 거칠게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도 있었나?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첫째는 김 전무가 EF쏘나타 개발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품질은 결국 연구개발 부문이 적극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조직 문화의 문제이다. 그동안 현대차에서 좀처럼 품질이 향상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조직 간 책임 미루기 때문이었다. 품질 문제가 생기면 생산과 설계 부문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런데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웠다. 자동차는 여러 부품이 상호작용해서 하나의 성능을 발휘하고, 반대로 어떤 하나의 성능을 향상시키려면 다양한 부품이 관여해야 하는 제품이다. 이를 통합형 제품, 영어로는 인티그럴 타입 아키텍처(integral type architecture) 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동차의 경우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객관적으로 밝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다고 책임 소재를 판정해 줄 곳도 없었다. 품질본부는 당시 실 단위 조직으로 기본적으로 생산 부문에 속했기 때문에 생산의 입장을 대변할 때가 많았다. 이런 관행이 품질 개선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그래서 김 전무가 반강제적으로 품질 과제를 배분한 것이다.”

정 회장의 지원 사격

―정몽구 회장은 어떻게 지원했나?

“서로 책임 전가하는 풍토에서, 그리고 내부 반발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김 전무가 품질 과제를 반강제적으로 배분할 수 있었던 것은 정 회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세영 회장 시절에는 상황이 달랐다. 품질회의를 하면 누구 책임인지 두고 서로 핑퐁만 쳤다. 생산 부문은 설계 부문이 잘해야 한다고 하고, 설계 부문은 생산에서 잘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다 보면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정세영 회장은 합리적인 경영자였다. 그래서인지 품질에 관심은 많았지만 이런 상황을 제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 취임 이후는 전혀 달랐다. 품질 문제의 책임 소재는 기본적으로 품질본부가 판정했다. 품질본부가 재판관 역할을 한 것이다. 김상권 전무는 이 판정 결과를 정몽구 회장에게 수시로 보고했다. 그러면 정 회장은 이 보고에 기초하여 관련 부문에 지시를 내렸다. 품질본부의 판정에 반발할 수도 없었다. 그 뒤에는 정 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자였다. 이미 보고까지 마친 일에 대해 ‘우리 책임이 아니고 저쪽 문제다’라는 식으로 책임 전가하다간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이렇게 화를 당해 짐 싸고 집으로 간 임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정 회장 취임 이후 서로 핑퐁 치는 나쁜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외에 정 회장이 품질경영에서 강조한 것이 있나?

“공동책임을 강조했다. 어느 부문이 품질 과제를 맡든 관련 부문 모두가 협조하도록 했고, 잘못되면 공동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자 실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계없이 생산·품질·설계 등 관련 부문이 모두 서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정몽구 회장은 생산에 들어가기 전 설계 부문에서부터 품질을 개선하는 시도를 해 성공했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 라인에서 직원들이 차를 조립하고 있는 모습./현대차그룹

―정 회장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다른 사례가 있다면?

“정 회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나쁜 관행도 완전히 고쳐 놓았다. 예를 들어 어떤 품질 과제를 연구개발본부가 맡기로 정해지면 정 회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일정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본부장에게 ‘너, 언제까지 고칠 거야?’ 하고 물었고, 연구개발본부장이 ‘3개월 걸릴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면 그 노트를 꺼내 ‘어이, 이거 어떻게 됐어?’ 하고 반드시 결과를 물었다. 이때 ‘아직 못 했습니다’고 했다간 불호령이 터졌다. 그러니 무조건 일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연구개발본부장이 일정을 좀 넉넉하게 잡아 보고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정 회장은 정말 몰라서 ‘언제까지 고칠 거야’ 하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정몽구 회장 특유의 특징 중 하나로 다른 사안에서도 종종 일어났던 일이다. 그런데 3개월이면 될 일을 ‘6개월 내로 완료하겠습니다’고 했다간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정 회장은 ‘너, 그럼 집에 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겁나서 감히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정 회장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품질경영을 추진하자 그렇게 잡히지 않던 품질 문제가 정말 거짓말처럼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품질개선에 대한 임직원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면서 현대차는 품질개선의 선순환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정 회장에게 혼난 김 사장

―정몽구 회장과 김상권 전무의 관계는 어땠나?

“정 회장은 김 전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무척 아꼈던 것 같다. 실제로 김 전무는 정 회장의 두터운 후원 아래 2년 3개월 동안 품질본부장으로 있으면서 마음껏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 김 전무가 딱 한 번 야단을 맞은 일이 있었다.”

―언제인가?

“어느 날 품질회의에서 연구개발본부가 품질 과제 결과를 보고했을 때다. 정 회장이 김 전무에게 ‘이거 잘한 거냐?’고 물었다. 김 전무가 ‘과제를 105% 달성했습니다’고 답했다. 실제로 잘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 회장이 ‘뭐야? 너 연구소 편드는 거야?’ 하며 야단을 쳤다. 이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나고 회장실로 불려 가서까지 야단을 맞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 회장은 그날 연구개발 부문을 야단쳐서 더욱 품질 문제에 매진하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김 전무가 눈치 없이 ‘잘했습니다’고 말해 버린 것이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 회장은 뛰어난 연극 배우이기도 했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현대차 임원 출신으로, 현대차그룹 전직 고위 간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 발전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에게 현대차의 품질 향상은 패배주의를 털어내고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이었다. 일단 물건이 좋아야 시장에서 팔리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품질경영 성과를 요약해 보자.

―품질경영은 결국 어떤 성과를 낳았나?

“정 회장 특유의 카리스마로 나태해진 조직을 바로잡자 품질 개선을 위한 환경이 드디어 조성되었다. 그러자 그렇게도 안 되던 품질이 드디어 잡히기 시작했다. 10년 내로 도요타를 따라잡겠다는 김상권 전무의 10개년 계획은 불과 5년 만에 거의 목표를 달성했다. 2005~2006년경부터 현대차는 신차 품질에서 도요타와 세계 1등을 다툴 정도로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품질경영이 성과를 낸 비결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2000년대 현대차가 이룩한 획기적인 품질 개선에는 담대한 계획을 짜고 차질 없이 추진한 김 전무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런데 그가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 회장이란 커다란 존재가 뒤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신념, 집요할 정도의 집념,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현대차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 ⑦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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