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이 15년 걸린 OLED를 BOE는 3년 만에 따라잡았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OLED 패널을 들고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업계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중국도 OLED를 만든다”가 아니었다. OLED는 유기 발광층을 진공 상태에서 증착해 RGB 분자를 0.1 단위 수준으로 제어해야 하는 정밀 공정의 집약체다. 삼성은 이 구조를 양산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만 10년이 넘는 시간을 들였고, 그 사이 수많은 실패와 라인 재구축, 장비·소재 최적화 과정을 거쳐서야 지금의 스마트폰용 OLED 시장 1위 자리를 확보했다.
그런데 후발주자인 BOE가 짧은 시간 안에 아이폰 패널 공급선까지 따내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기술 도약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단순한 투자 확대와 인력 영입만으로 수십 년 축적 기술을 몇 년 만에 재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디스플레이 업계의 공통 인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과 곧바로 경쟁 구도를 형성할 정도의 성능과 수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삼성 내부에서는 “이건 단순한 추격이 아니라 뭔가 빼내 간 결과가 아니냐”는 의심이 커졌다.

OLED 증착·구동 핵심이 어떻게 중국 공장에 등장했나
OLED 패널 생산에서 가장 비밀스럽게 관리되는 영역은 패널 구조 설계와 박막 증착 레시피, 구동 알고리즘이다. 어떤 재료를 어떤 순서로, 어느 두께까지, 어떤 온도와 진공 상태에서 쌓느냐에 따라 수명·밝기·색 정확도가 갈린다. 여기에 구동 회로 설계와 보정 알고리즘까지 결합되어야 아이폰·갤럭시 같은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패널이 만들어진다. 이런 조합은 외부에서 장비만 들여온다고 따라 할 수 있는 종류의 기술이 아니다.
삼성이 이상 징후를 감지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BOE가 적용한 일부 패널 구조와 공정 조건, 회로 설계 패턴이 삼성 내부에서만 쓰이던 방식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이후 삼성은 퇴직·이직한 엔지니어 동선, 부품 공급선, 설계 문서 유출 가능성 등을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BOE가 삼성 협력사와 인력을 겨냥해 조직적으로 정보를 모았다는 단서가 드러났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결국 삼성은 “단순 특허 분쟁이 아니라, 영업비밀 침해”라는 판단을 내리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삼성의 선택은 미국 ITC 제소였다
삼성이 택한 무대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였다. 2022년 말 삼성디스플레이는 BOE와 미국 내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자사 AMOLED 패널 관련 특허 침해와 부당한 기술 사용이 있었다며 ITC에 제소했다. 이어 2023년에는 특허를 넘어 영업비밀·기술 유출까지 포함한 추가 소송을 제기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ITC는 미국 내 수입·유통을 직접 제재할 수 있는 기관인 만큼, 여기서의 판단은 단순한 손해배상 판결과 차원이 다르다. 조사 과정에서 ITC는 BOE가 삼성의 OLED 특허를 침해했을 뿐 아니라, 삼성 협력사·전·현직 엔지니어를 통해 영업비밀을 부적절하게 취득·활용했다는 삼성 측 주장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2025년 ITC는 BOE와 그 계열사들이 삼성의 OLED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예비·본 판정을 내리고, BOE OLED 패널의 미국 수입을 사실상 막는 수준의 배제를 권고했다.

BOE가 얻은 건 애플 물량이 아니라 15년짜리 수입 금지 권고였다
ITC의 권고 내용은 강력했다. BOE와 관련 회사들이 생산한 OLED 패널에 대해 약 14년 8개월, 사실상 15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미국 내 수입을 제한하는 ‘제한적 배제 명령’과, 이미 미국 내에 들어와 있는 제품의 판매·광고·유통을 금지하는 ‘중지·금지 명령’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애플·삼성·기타 스마트폰 업체에 패널을 공급하며 입지를 넓히려던 BOE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사형선고에 가까운 조치였다.
여기에 더해, 삼성과 BOE는 미국과 중국, 텍사스 연방법원 등에서 진행 중이던 특허·영업비밀 소송을 일괄 정리하는 방향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비공개지만, 업계에서는 BOE가 삼성디스플레이에 상당한 규모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일부 기술 사용 제한과 합의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BOE가 “25년 걸릴 기술을 3년 만에 따라잡은” 대가로 얻은 건 단기적인 아이폰 패널 물량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의 긴 제약과 삼성에 대한 기술 사용 대가였다.

삼성의 빠른 고소장은 ‘기술 굴기’ 시대의 생존 전략
이번 분쟁은 단순히 삼성과 BOE 두 회사의 싸움이 아니라, 중국의 ‘기술 굴기’ 전략이 선진국 기업의 지적재산권과 정면으로 충돌한 대표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중국 업체들은 막대한 보조금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 능력을 빠르게 키웠고, 그 과정에서 해외 인재 영입과 협력사 인수·지분 투자 등을 통해 선진 기술과 노하우를 가져오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BOE 역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이런 전략의 핵심 플레이어였다.
삼성 입장에서 OLED는 단순한 한 품목이 아니라 그룹 전체 수익과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캐시카우’다. 이 핵심 기술이 중국 경쟁사에 그대로 흘러들어가고, 그 결과 가격·물량 공세까지 겹치면 시장 지배력과 수익성은 빠르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은 의심 단계에서 시간을 끌지 않고 ITC와 미국 법원을 동시에 활용해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미온적 태도가 아니라, “핵심 기술 침해에는 곧바로 고소장”이라는 대응 원칙을 보여준 셈이다.

베낀 속도보다 지킨 기술이 오래 간다는 걸 계속 증명하자
중국의 BOE가 “수십 년 걸릴 OLED 기술을 몇 년 만에 따라잡았다”는 찬사를 받는 동안, 삼성은 그 이면에서 벌어진 기술 유출과 특허 침해를 집요하게 추적해 결국 미국 ITC의 인정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BOE는 미국 수입 제한과 로열티 부담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고, 삼성은 자사의 핵심 OLED 기술과 시장 지위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복잡한 공정과 수천 건의 특허, 수많은 엔지니어의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15년짜리 기술’을 지키는 일은 앞으로도 한국 제조·IT 경쟁력의 생명선인 만큼, 베낀 속도의 화려함에 휘둘리지 않고 정당한 기술 보호와 지적 재산권 수호를 더 강하게 실천해 나가자는 방향을 분명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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