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협회 '조용하게' 투헬을 선임한 비결은?

사진출처=잉글랜드 축구협회 SNS

잉글랜드가 삼사자 군단을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토마스 투헬을 선택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16번째 감독이다. 계약기간은 1년 6개월.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이다.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감독이다. 다만 묘하다. 이전 두 번의 외국인 감독 때와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얼마전 별세한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은 스웨덴인이었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이탈리아인이었다.

동시에 사상 첫 독일인 감독이기도 하다. 의미가 남다르다. 잉글랜드와 독일은 묘한 라이벌 관계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한다. 영국인과 독일인은 여전히 묘한 감정을 서로에게 가지고 있다. 이후 축구 역사에서도 서로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다. 국제 무대에서 둘이 만나면 서로를 꼭 이겨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잉글랜드 감독 자리에 독일인이 앉게 됐다.

마크 벌링엄 FA CEO. 사진캡쳐=스카이스포츠 SNS

인상적이었다. FA의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잡음은 없었다. 잉글랜드 언론에서는 FA가 몇몇 감독들과 접촉했다는 보도는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내부 분위기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국내 상황이 떠올랐다. 몇몇 감독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여기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재생산됐다. 대표팀 감독 선임 자체가 하나의 난장판이었다. 여전히 지금도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그에 반해 조용한 잉글랜드.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FA의 대응 방식이다. '무대응' 원칙을 고수한다. FA는 언론의 보도 확인에 대해 응하지 않는다. 그저 '확인할 수 없다'고만 답변한다. FA는 기술 위원회를 통해 감독 후보를 검토하고 후보들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사회가 이를 평가하고 인터뷰하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올 수도 있다.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FA가 공식 확인을 하지 않기에 이런 정보들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모든 대응은 공식 발표를 통해서만 한다. FA가 특정 기사에 대해 한 마디라도 공식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면 더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잉글랜드 구단들도 마찬가지이다. 필자 역시 이적이나 재계약 등에 대해서 따로 문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마다 각 구단들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한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도, 또한 계속 단독 보도가 나오고 있더라도 이들은 자신들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 답한다.

두번째는 대표팀 감독에 큰 관심이 없다.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넘버원 관심사는 자신들의 클럽팀이다. 대표팀은 한번씩 찾아오는 이벤트일 뿐이다. A매치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클럽팀 경기가 빽빽하게 이어진다. 리그, 컵대회, 유럽 대항전이 계속 펼쳐진다. 여기를 챙기고, 여기에 반응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굳이 대표팀 감독 자리에 왈가왈부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마지막 말. 사진출처=잉글랜드 축구협회 SNS

#잉글랜드 감독이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FA는 독일인 투헬 감독을 대표팀 수장에 앉혔을까. FA는 갑자기 감독을 구하게 됐다. 유로 2024 이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과 FA의 계약 기간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결별을 선언했다. 유로 2024 준우승의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유로 2024 내내 신통치않은 경기력에 발목이 잡혔다. 잉글랜드는 대진운이 좋았다. 꾸역꾸역 결승까지 올라갔다. 준우승도 평가절하됐다. 결국 결별이었다.

FA는 새로운 감독을 찾아나섰다. 유로 2024 이후 9월 A매치, 10월 A매치는 감독 대행으로 팀을 꾸렸다.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인 리 카슬리 감독이 대행을 맡았다. 그 사이 FA는 여러 감독들과 접촉했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세계 최고 수준의 감독을, 잉글랜드 인이라면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이 됐거나,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지금 주축 선수들을 잘 알거나, 미래가 밝은 감독이어야 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인 감독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없었다.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보자. 20개의 팀이 있다. 20명의 감독이 각 팀들을 지도하고 있다. 여기서 잉글랜드 감독은 단 3명 밖에 없다. 에버턴을 이끌고 있는 션 다이 감독, 뉴캐슬을 지도하는 에디 하우 감독 그리고 황희찬과 울버햄턴의 수장 개리 오닐 감독이다. 대영제국으로 폭을 넓혀본다. 키어런 메케나 입스위치 타운 감독(북아일랜드), 러셀 마틴 사우스햄턴 감독(스코틀랜드) 감독, 스티브 쿠퍼 레스터시티 감독(웨일스)이 있다. 영연방으로 확대하면 엔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호주)이 있다. 짜고 짜고 짜내서 범 영국권이라 할 수 있는(모국어가 영어인) 감독이 7명이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18명의 감독 가운데 9명이 독일인이다. 스페인 라리가는 20명 중 15명이 스페인인이다. 이탈리아 세리에A 역시 20명 중 이탈리아인 감독이 15명이다.

잉글랜드인 감독들 모두 최정상급 감독은 아니다. 션 다이 감독은 왓포드, 번리에 이어 에버턴을 이끌고 있다. 에디 하우 감독은 본머스와 번리를 지도했고 2021년부터 뉴캐슬을 이끌고 있다. 개리 오닐 감독 역시 본머스에 이어 울버햄턴이 감독직 두번째 경력이다.

차세대 감독도 신통치 않다. 40~50대 감독들을 보자. 이 시기 잉글랜드 감독들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 그레이엄 포터, 스콧 파커, 딘 스미스, 네이선 존스, 웨인 루니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잉글랜드 무대에서 감독으로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감독은 없다.

반면 명문팀들은 잉글랜드 감독을 기피하고 있다. 맨시티와 리버풀은 각각 펩 과르디올라 감독(스페인)과 위르겐 클롭 감독(독일)이 오랜 시간 팀을 이끌었다. 올 시즌 리버풀은 클롭 감독이 사임하고 네덜란드 출신인 아르네 슬롯 감독을 데려왔다. 감독 갈아치우기에 능한 첼시 역시 잉글랜드 감독이 있을 때는 실패를 거듭했다. 램파드 감독 이후 투헬이 팀을 맡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시켰다. 이후 포터 감독이 팀을 맡았지만 단 7개월만에 경질됐다. 이후 포체티노 감독(아르헨티나)에 이어 올 시즌은 이탈리아 출진 엔조 마레스카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아스널 역시 프랑스인 아르센 벵거 감독 이후 우나이 에메리(스페인)와 미켈 아르테타(스페인)가 팀을 맡아 고공 비행을 이끌고 있다. 맨유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이후 5명의 정식 감독을 썼다. 이 가운데 데이비드 모예스만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감독이었다.

잉글랜드 출신 젊은 감독들에게는 감독을 할 이유가 크지 않다. 프리미어리그에는 돈이 모인다. 이 돈을 바탕으로 각 구단들은 검증됐고 명망있는 외국인 감독들을 사온다. 잉글랜드인 감독들이 빅클럽에서 뛸 기회가 많지 않다.

감독 대신 갈 길도 많다. 잉글랜드 축구 산업은 상당히 발전해있다. 선수 은퇴 후 셀럽으로 사는 이들이 많다. TV 방송국에서는 해설 위원이나 패널로 프리미어리그 스타 선수 출신을 좋아한다. 이들을 스카웃해 계약을 맺고 출연시키곤 한다. 여기에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도 수요가 넘친다. 스타 선수 출신이라면 은퇴 후 적당히 방송에 출연하고, SNS를 통해 인기를 모으면서 여러가지 광고를 받아서 사는 '셀럽'의 삶을 걸을 수 있다. 굳이 감독으로 살면서 갖은 비난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비선수 출신 감독은 그다지 설 자리가 없다. 잉글랜드는 여전히 감독에게 '선수 시절 명성'을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편견이 심한 나라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거나,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면 감독으로서도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반면 독일은 다르다. 프로 선수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비선수 출신의 감독들이 많다. 투헬 감독이나 유리안 나겔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일찌감치 젊은 지도자들을 위한 여러가지 교육 과정을 갖추고 있다. 또한 구단들도 이를 적극 활용해 지도자들을 키우고 있다.

결국 FA의 선택은 투헬 감독이었다. 감독 경력을 통해 성적을 내왔다.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DFB 포칼에서 우승했다. 파리 생제르맹 감독으로서는 리그 1 2연패, 프랑스컵과 프랑스 리그컵에서 각각 1회씩 우승했다. 첼시에서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이끌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독일과 프랑스, 잉글랜드를 거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또한 스타 선수들을 다루는 법도 알고 있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치는 것이 흠이긴 하다.

무엇보다도 같은 시기 투헬 감독을 능가할만한 이가 별로 없었다. 언론들은 FA가 포체티노 감독, 하우 감독, 클롭 감독 등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포체티노 감독은 미국으로 향했다. 하우 감독은 여전히 뉴캐슬을 이끌고 있다. 클롭 감독은 레드불 글로벌 사커의 총책임자로 갔다.

투헬이 남아있는 카드들 가운데 가장 좋았다.

#확인해줄 수 없다

16일 영국 런던 웸블리에서 투헬 신임 대표팀 감독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잉글랜드 축구협회(FA)의 CEO인 마크 벌링엄이 선임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과정은 비밀이다. 여기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략 이야기를 한다면 10명 정도의 감독을 만났다.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