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락론 빗나간 이유…금융위기도, 과잉공급도 없었다
[혼돈의 부동산 시장 어디로 ①] 빗나간 폭락론
[땅집고]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은 집값이 가계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데다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최상위권이어서 주택 버블이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상승의 직격탄을 받아 올해에도 폭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작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22% 급락하면서 폭락론이 적중하는 듯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예측은 크게 빗나가고 있다. 상반기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9.99% 올랐다. 이는 2006년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6월 누계 기준으로 2009년(17.84%), 2021년(10.1%)에 이어 셋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작년 하락분(-22.24%)의 절반 가까이 회복했다. 지난해 집값 폭락을 주도했던 서울 잠실, 경기도 동탄, 인덕원, 인천 송도 신도시 등의 집값이 폭락 전 고점에 근접했거나 넘어서고 있다.
■가계 부채론의 허와 실
급반등한 이유는 뭘까? 일단 한국의 가계 부채가 지나치게 높아서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부터가 사실과 다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은 가계부채비율이 105%로 미국(74.4%), 일본(68.2%), 프랑스(66.2%)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그러나 가계 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거나 비슷한 나라들은 많다. 스위스(128%), 호주(112%), 홍콩(96%), 뉴질랜드(94.5%) 등은 가계부채 비율이 높고 집값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급상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이 변동금리여서 금리 변동에 취약하다. 이들 나라들도 2023년 상반기에 집값이 강하게 반등하고 있다.
집값, 부채와 대출 구조의 특수성만으로 특정 국가의 버블붕괴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주기적으로 집값이 급등과 급락을 경험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집값 폭락의 조건
그렇다면 집값 폭락이나 장기침체는 어떤 조건에서 발생할까. 과거 사례를 보면 금융 위기의 발생, 경기의 장기침체, 주택 과잉 공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집값이 조정 이상의 폭락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집값 폭락 혹은 장기침체를 했던 경험은 3차례이다.
첫째, 1990년대 신도시 개발 등 주택공급 급증에 의해 장기하락했다. 주택 인허가 물량이 87년 24만4301가구에서 89년 46만2159가구, 90년 75만378가구로 급증했다. 가구 증가(30만가구)보다 2배 많은 공급 폭탄이 터지면서 폭등하던 집값은 1991년 4.5% 하락세로 전환했다. 1996년까지 하락이나 보합세를 유지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집값은 매년 10% 하락했다. 공급 폭탄과 집값 하락으로 미분양 아파트는 1995년 15만가구까지 늘었다.
둘째, 1997년 IMF외환위기로 금리가 치솟고 기업들의 연쇄부도 등의 충격으로 집값이 폭락했다.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한때 환율이 달러당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대출 금리가 20%대까지 오르면서 1998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4.6% 폭락했다. 하지만 1년도 지속되지 않았다. 1999년 서울 아파트 가격이 12.5% 올랐으며 2001년(19.33%)과 2002년(30.79%) 집값 대폭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V자형 반등은 외환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했고 금리 하락과 주택 담보대출의 폭발적 증가가 집값을 밀어 올렸다.
셋째, 2008년 리먼쇼크로 인한 금융위기로 집값이 폭락했다, 당시 한국은 1년만에 급반등한 후 2010~2013년 하락세를 지속했다. 당시 주택공급이 급증한데다. 미국, 유럽의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았다. 집값 폭락의 촉발점은 글로벌금융 위기(리먼 사태)였지만, 침체가 오래 간 것은 미분양 아파트가 16만 가구를 넘어설 정도로 공급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과 판교·위례·동탄 등 2기 신도시 입주도 집값 하락에 기여했다. 올해 이명박 정부때와 달리, 대규모 신도시 입주는 없고, 미분양도 지난 1월 7만가구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6만 가구 수준으로 줄었다.
■폭락의 조건은 오지 않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금융위기와 공급과잉이 폭락의 조건이었다. 경제가 좋지 않지만 국내외적으로 현재까지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주택공급도 폭락이 아니라 급등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한국의 주택공급량(인허가 기준)은 연간 52만가구이다.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76만과 72만 가구까지 급증했다. 2020년 45만가구까지 줄어들다 2021년 54만가구로 늘어났지만, 2022년 52만가구로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인허가 물량은 전년 대비 27%, 착공 물량은50% 감소했다.
주택공급 과잉의 또다른 지표가 미분양 물량이다. 과거 집값 폭락기에는 미분양주택은 16만가구가 넘었다. 그런데 작년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면서 7만가구까지 늘었다가 다시 6만가구로 줄어들고 있다.
물론 미국의 금리가 다시 치솟고, 중국발 경제위기가 몰려들면 상황이 다시 180도 바뀔 수 있다. 중국발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한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지원으로 버티고 있는 부동산 PF시장도 뇌관이 될 수 있다.
글=차학봉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