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때 처음 연필잡아 유니스트 합격한 천재가 아버지를 위해 만든 것
4565 시니어 남성을 위한 패션 쇼핑몰 '애슬러'
중장년층 남성은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소외되던 소비자였다. 특히 의류 분야에서 그랬다. 아내가 남편 옷을 대신 사는 경우가 많아 온라인 쇼핑몰은 더욱 ‘여성 소비자 잡기’에 혈안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쇼핑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졌다. 비대면 소비가 일상이 되면서 남녀 구분 없이 온라인 쇼핑을 활용하게 된 덕이다. 여기에 은퇴 후 소비와 여가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중장년층 남성이 온라인 소비의 주축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스타트업 ‘바인드’는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4564 남성을 위한 패션 앱을 만들었다. 바인드의 김시화(25)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고1 때 연필 처음 잡고, 3년 만에 유니스트 합격
바인드가 운영하는 ‘애슬러’는 4565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의류·잡화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중장년층이 이용하기 편리한 UX(이용 환경)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타 쇼핑몰보다 글씨 크기를 20% 이상 키웠고 상품 배열 방식을 단순화하는 등 중장년 소비자 관점에서 서비스를 설계했다. 앱 내 모든 화면에 문의 배너를 띄워 어떤 상황이든 터치 한 번으로 채팅 및 전화 상담이 가능하다.
애슬러는 안드로이드 앱과 웹사이트 서비스다.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54.8세이고, 이용자 중 97.3%가 남성이다. 2022년 말 패스트벤처스로부터 초기 투자금을 유치했다. 2023년 4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운동선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3학년까지 탁구 선수 생활을 했다. “중학교 때는 전교생 400명 중 300등 정도 했을까요. 기본적인 산수도 잘 못했어요.”
운동밖에 모르고 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돌연 부모님께 영어·수학 학원에 보내달라 조르기 시작했다. “지금 공부하지 않고 운동만 하면, 성인이 돼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어진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부모님께 잠시 훈련을 관두고 1년만 공부해 보겠다고 했죠.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겠다며 설득했어요.”
고등학교 1학기, 김 대표는 대전의 한 영어학원에서 유명인사였다. 기초, 기본, 심화반까지 한 번에 결제해 모든 수업을 다 들었기 때문이다. 수학도 같은 방식으로 공부했다. “선수 생활에서 체화된 승부욕이 공부에도 발동했습니다. 별명이 독서실 귀신이었어요. 1학기 때 형편없던 성적이 2학기 때는 전과목 1등급으로 바뀌었죠.”
원하던 대학에도 입학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유니스트)의 환경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과학 과목을 좋아해 선택한 전공이죠.”
◇첫 창업 쓴맛 보고 사업 아이템 다시 기획
애슬러가 첫 창업 아이템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성적을 빠르게 올린 경험을 살려 2020년 하반기, 과외 앱 ‘올타’를 개발했다. “대학생 시절 과외로 용돈을 벌었어요. 코로나19로 비대면 학기가 이어지면서 과외를 꽤 오래 했습니다. 대전에서 이름 좀 날렸죠. 학교에서 배운 데이터 분석법을 조금만 적용하면 좋은 앱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학생의 성향과 학습 스타일에 맞춰 적합한 선생님을 매칭해주는 방식을 구상했죠. 결제일에 맞춰 앱 내에서 과외비를 결제하고, 알림장처럼 활용할 수 있는 메모 기능도 덧붙였습니다.”
첫 창업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수익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 “주요 수익원은 과외비 결제 수수료였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앱 이용자는 학생이나 선생님을 찾을 때만 앱을 사용하고, 정작 수업이 진행되면 과외비 결제는 따로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용자들이 알림장 기능을 쓰기 위해 굳이 이 앱을 계속 사용할 필요성까지는 못 느낀 거죠.”
비록 프로젝트 자체는 실패했지만, 창업이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탁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강렬한 기억처럼, 창업도 제 열정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창업으로 꼭 한 번은 성공하고 싶었죠. 유니스트 동기,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시작한 일이었는데, 함께 새로운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보기로 했어요.”
2022년 4월 다시 사업 아이템 발굴에 나섰다. 팀원과 전 세계 유니콘 스타트업 1063개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국내외 투자 정보 사이트, 뉴스, 논문을 모두 살펴봤습니다. 케이스 스터디를 하며 배운 성공 공식이 하나 있어요. ‘오프라인에서 성장하고 있거나 이미 성숙한 시장인데 온라인으로 전환되지 않은 아이템’을 찾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한국 시장에 적용해 보니까 45~65세 사이의 중장년층 남성이 보이더군요. 분명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소비 액수도 크고 소득 수준도 가장 높은 소비자층인데 정작 온라인에선 그들만을 위한 서비스가 전무했어요.”
◇비즈니스 모델 만들며 알게 된 중년 남성의 소비 패턴
2022년 4월 바인드를 창업하고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돌입했다. 4565 남성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기로 했다.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45~65세 사이의 남성을 인터뷰했다. “모든 접점을 활용했습니다. 부모님 친구는 모두 만나봤고요. 창업 지원 프로그램 신청을 위해 서울에 올라가야 할 땐 일부러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기사님과 대화했어요. 온라인 쇼핑을 해봤는지·안 한다면 왜 안 하는지·주로 어떤 앱을 쓰는지·어떤 제품을 사는지·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생긴다면 어떤 물건을 사고 싶은지 꼼꼼히 물어봤습니다.”
인터뷰를 하며 4565 남성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4565 남성이 제품을 구매할 때 가장 중시하는 건 가격과 브랜드입니다. 브랜드가 옷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아니면 아주 저렴해야 했고요. 또 쇼핑의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연령대 남성들은 옷을 한번 살 때 여러 벌씩 구매합니다. 가격 비교나 교환·반품은 가급적 안하고요. 한번 쓰는 앱은 잘 바꾸지 않는다는 특성도 발견했어요. 대신 평균 온라인 쇼핑 시간이 짧았습니다. 회원가입이나 결제는 빨리 끝나야 했죠.”
4주 만에 패션 쇼핑 앱 ‘애슬러’를 개발했다. “제품의 가격과 브랜드명이 가장 잘 보이도록 글씨 크기를 키웠습니다. 앱 내 상담 버튼을 눈에 띄는 곳에 노출시켰죠. 남성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쇼핑 앱인 네이버와 쿠팡의 결제방식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결제정보를 한 번만 입력하면 다음 결제 건부터는 터치 한 번으로 결제가 끝나게 설계했습니다.”
폴로, PXG, 몽벨, 제이린드버그 등 국내외 스포츠·정장 브랜드의 의류를 입점하고, 2022년 11월 서비스를 공식 출시했다. “여성 소비자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특정 물건을 검색해서 가격 비교까지 마치고 물건을 구입해요. 반면 4565 남성은 먼저 앱에 접속한 후 옷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또 쇼핑 시간은 짧아야 하죠. 이들은 추천 제품을 모아둔 ‘기획전’ 탭을 적극 활용하더라고요. 제품을 인기순으로 나열해서 보는 분도 많았고요. 이용자의 활동 양상을 추적하면서 기획전을 늘리고, 제품 추천 기능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4565 남성 온라인 소비 독점이 목표
애슬러의 주요 수익원은 결제 수수료다. 최근 회원 수 1만명을 돌파했다. 앱의 성장 지표로 여기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한 달간 서비스를 사용한 실이용자의 수)는 4~5만명이다. 첫 출시 이후 거래액이 매달 4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성장세에 힘입어 유명 남성 패션 브랜드, 고급 골프복 브랜드도 빠르게 애슬러에 입점하고 있다.
‘온라인 백화점’을 표방한다. “요즘 이용자 문의 대응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 직원 6명 모두 밤낮없이 고객 문의를 받고 있어요. 앱을 친절하게 만든 덕에 사용법에 대한 문의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품 추천 문의가 많아요. 예컨대 ‘63세이고 키 175cm, 70kg인데 어떤 사이즈가 좋을 것 같냐’ 또는 ‘어떤 색상이 잘 팔리냐’ 등이요. ‘00 브랜드 제품은 없냐’, ‘취미 용품도 팔아 달라’는 등의 요구 문의가 많고요. 문의 사항들은 모두 데이터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추후 추천 챗봇을 만드는 데 활용할 계획입니다.”
4565 남성의 온라인 소비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 목표다. “분야를 넓혀 골프·낚시 등의 취미 용품까지 판매할 계획입니다. 4565 남성 온라인 쇼핑 영역에선 저희가 초기 진출 기업이기 때문에 좋은 제품만 빠르게 입점시킨다면 회원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사소한 문의 사항도 귀담아듣고 있어요. 타깃층의 95%가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기반의 휴대폰을 사용해 우선 안드로이드 앱만 출시했었는데요. 최근 들어 아이폰용 앱을 개발해달라는 문의가 늘고 있어 2023년 안으로 아이폰용 앱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창업을 고민하는 이에게 ‘온·오프라인 시장의 격차가 벌어져 있는 지점을 노리라’고 조언했다. “선례가 없으니 처음에는 정보도 부족하고 사업 진행 속도도 더디겠죠.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영역에 도전한다는 건 바꿔 말해 내가 조금 실수하거나 헤매도 된다는 뜻이에요. 뒤따라오는 경쟁자가 많지 않으니까요. 꾸준한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오히려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보다 성공 확률이 더 높을 수 있어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