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중국사 속 군주는
당나라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입니다.

당나라의 초대 황제는 이세민의 아버지 당 고조 이연이었지만,
수나라 멸망 후 혼란스러웠던 군벌들을 다 정리하고
당나라를 건국한 건 이세민이었습니다.

다만 이세민은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자가 되지 못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이세민은
쿠데타를 일으켜
형과 아버지를 제거하고 2대 황제에 등극했죠.

그래서 당 태종 이세민은 등극 과정에서
정통도 아니고 도덕적이진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점을 그의 업적으로 다 커버해버렸죠.

당 태종 이세민은 즉위 직후
몇 년에 걸쳐
기병 중심의 군사력을 강화한 뒤
630년 바로 동돌궐을 멸망시켰습니다.

돌궐이 무너지자
초원의 모든 유목부족들이 당 태종에게 충성을 맹세했죠.
당 태종 이세민은
안북도호부를 설치하여
최소한의 행동만 규제할 뿐
나머지는 유목민족 부족들의 자치권을 보장해주었습니다.

돌궐 여러 부족의 부족장들이
당 태종에게 고귀한 호칭을 바치니
바로 ‘천가한’
그들 발음으로는
‘텡그리 카간’이었습니다.

카간, 칸, 카한 등은
유목민족을 제패한 유목군주에게 붙이는 이름으로
돌궐족들은 당 태종 이세민을
본인들을 복속시킨 중국 한족의 황제보다
유목세계까지 주름잡는 유목세계의 군주로 떠받힌 겁니다.

중국역사상 정말 찾아보기 힘든
유목 세계와 농경 세계의 통일된
최고지배자 뜻하는 칭호를 얻었던 거죠.

이후 당 태종 이세민은 더 대외적인 팽창전쟁에 나서서
640년 오늘날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던 나라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비록 티베트의 국가 토번에게는 무력으로 밀렸지만
641년 황실의 공주였던 문성공주를
토번의 왕과 혼인시켜 토번과의 외교도 잘 마무리합니다.
고구려만 원정에 실패했죠.

당 태종 이세민이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대외정책보단
대내정책이 더 영향이 큽니다.
당 태종 이세민 대에 당나라는 율령제를 완성하거든요.

이 덕에 당 태종 이세민은 중국정치사와 중국법제사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죠.
율령제란 더 상세하게 나누면 ‘율령격식’이라고
‘율’은 형법, ‘령’은 행정법,
‘격’은 개정 및 추가 법령,
‘식’은 시행 세칙을 의미합니다.

우선 북위 때부터 시행되어온
토지제도 균전제를
수나라에 이어 다시 실정에 맞게
개편 후 확대시켰으며,
수나라 때 처음 실시된 군역제도인 부병제와
세금제도인 조·용·조 제도가 완전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더불어 동아시아의 기본적인 정치관제 3성 6부제와
지방을 주·현으로 나누는 지방행정제도도 이때 만들어집니다.
당나라의 3성 6부제와 지방행정제도는

이후 발해, 고려,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도 채택하였으며
명나라, 청나라, 조선 등의 정치구조도 그 연원은
당 태종 이세민의 율령에서 기인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된 체제 속에서 율령의 질서가
안전하게 자리를 잡아 이상적인 부국강병을 이룩한
당 태종 이세민의 치세를 연호를 따와
‘정관지치’라고 부릅니다.

훗날 당 태종 이세민 사후
‘오긍’이라는 학자가
당 태종 재위기 23년간 당 태종 이세민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여
책으로 엮는데
이 책이 그 유명한 <정관정요>입니다.

군주로서의 덕목, 자질, 능력 등을 공부할 수 있는 서적으로
향후 동아시아 군주들의 필독서였습니다.
<정관정요>를 안 읽으면
감히 능력있는 군주라고 인정해주지도 않았죠.

<정관정요> 덕후였던 리더들도 있는데
청나라의 건륭제, 중국의 마오쩌둥, 덩샤오핑, 고려 광종, 조선 세종대왕,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있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다 보니까
<정관정요>는
리더십, 경영술 등 자기개발서 영역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