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뷰티 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조명합니다.

중소 뷰티 브랜드가 호황을 누리는 것과 반대로 아모레퍼시픽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최근 3년간 줄곧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전경.(사진=아모레퍼시픽)
위탁생산(OEM·ODM) 업체를 등에 업은 중소·신진 화장품 브랜드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며 뷰티산업의 패러다임이 흔들리자 전통의 '강자' 아모레퍼시픽은 마치 '새우싸움에 고래 등이 터지는' 상황에 놓였다. 생산과 유통을 위임하고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한 인디브랜드들이 MZ 소비자들의 세분화한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매년 급성장하는 동안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은 물론 내수 시장에서조차 업황 회복에 실패하며 상반된 실적 궤적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의 배경으론 현행 화장품법상 효능의 표시가 제한적인 탓에 저가 화장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와 상당한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해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간의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는 자체 R&D를 통해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할 여력이 없는 중소·신규 업체, 즉 '새우' 입장에선 뷰티 시장에 진출하기 유리한 환경이지만, 연구개발부터 생산 라인을 모두 갖춘 '고래' 입장에선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최근엔 LF,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등 패션 대기업들까지 잇달아 뷰티 업계 도전장을 내미는 추세다. '계급장'을 떼고 무한 경쟁에 돌입한 뷰티 생태계에서 아모레퍼시픽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인디브랜드와 아모레퍼시픽의 상반된 성적표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선미녀, 달바, 스킨1004 등 주요 인디브랜드의 지난해 실적은 전년 대비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 역시 적게는 2배, 많게는 6배 안팎으로 불리며 곳간을 두둑히 채웠다.
먼저 모던 한방화장품 콘셉트의 조선미녀를 전개하는 구다이글로벌은 지난해 매출 1395억원, 영업이익 689억원을 거뒀다. 전년 대비 각각 237.8%, 385.2% 급증한 수치다. 구다이글로벌의 매출은 조선미녀를 인수한 첫해 1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30억원, 2022년 413억원으로 가파르게 올라 지난해 1395억원을 돌파했다.
비건 뷰티 브랜드 달바를 보유한 비모뉴먼트 역시 인디브랜드 전성기를 이끄는 주역이다. 지난해 매출 2008억원으로 전년 1452억원 대비 38.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45억원으로 전년 146억원과 비교해 136.3% 올랐다. 스킨케어브랜드 스킨1004의 크레이버코퍼레이션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매출은 798억원으로 전년 대비 108.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07억원으로 무려 1만1788.9%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들 브랜드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 규모도 전년과 견줘 크게 늘었다. 구다이글로벌은 110억원에서 426억원으로, 비모뉴먼트는 141억원에서 243억원으로, 크레이버코퍼레이션은 6억원에서 38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한 관계자는 "인디브랜드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이 늘었다는 건 곧 높아진 인기를 증명한다"며 "향후 투자 재원 마련까지 용이하단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인디브랜드가 K뷰티의 전성기를 이끄는 동안 전통의 강호 아모레퍼시픽의 성적은 상반된 궤적을 그렸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 4조1349억원 대비 11.1% 줄어든 3조6739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2142억원 대비 49.5% 감소한 1081억원에 그쳤다. 특히 같은 기간 미쟝센, 해피바스, 려, 메디안 등을 보유한 데일리 뷰티 사업부문은 36억원가량 적자까지 봤다.
이는 중국 시장은 물론 내수에서도 입지를 회복하지 못한 영향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의 지역별 매출 비중에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 매출은 2019년 2조 920억원에서 지난해 1조 120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기간 국내 시장 역시 3조 3603억원에서 2조 1883억원으로 1조원 넘게 매출이 감소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뷰티 업계 지형도가 정통 대기업에서 신진 중소 브랜드로 넘어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효능 표시 제한하는 화장품법... 아모레 부활 장벽
현행 화장품법은 아모레퍼시픽의 부진을 장기화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인디브랜드는 물론, LF와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등 패션 대기업들까지 잇따라 뷰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지만, 정작 아모레퍼시픽이 이들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기능성 화장품의 범주는 좁고, 효능 표시나 광고 문구의 제약 또한 많기 때문이다.
현행 화장품법이 정의하는 ‘기능성화장품’의 효능으로는 미백, 주름개선, 자외선차단, 탈모 증상 완화, 여드름성 피부 완화, 가려움증 개선, 튼살 관리 등으로 전체 미용 분야에서 극히 일부만 해당한다. 이마저도 과거엔 미백, 주름개선, 자외선차단 3가지에 불과했으나 지난 2017년 픔목이 확대된 것이다. 기능성화장품 허가를 받는다 해도 이들 효능과 관련해 광고 표현은 엄격히 제한된다. 이를테면 ‘탈모(증상)를 예방한다’, ‘여드름 피부를 치료한다’ 등의 표현이나 ‘즉시 주름이 사라진다’와 같은 속효성 표현, ‘모발의 성장을 억제한다’ 등의 단정적 표현은 모두 사용할 수 없다.
물론 이는 과대 광고 및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매년 연구개발(R&D)에만 1000억원 이상씩 투입하는 아모레퍼시픽으로선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OEM·ODM업체에 생산 및 제조를 맡겨 연구개발 단계를 축소하는 신생, 중소브랜드의 제품들과 효능이 별반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론 식품의약안전처가 인정하는 기능성 화장품의 범주 자체가 좁은 탓에 R&D에 막대한 예산을 붓고도 제품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2021년 2.64%(1283억원)에서 이듬해 2.93%(1211억원), 지난해 3.71%(1362억원)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화장품 ODM 업체 관계자는 "현행 화장품법상 ‘미백 효과가 있음’과 같이 정해진 문구만 표기할 수 있다"며 "화장품은 의약품으로 오인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효능 표시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능성화장품 범주를 넓히는 게 기업의 R&D 투자 측면에서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학과 교수는 "국내 화장품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광고실증제와 이를 강화하는 화장품법"이라며 "효능을 표현하는 데 제한적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국내 기능성 화장품은 대기업이나 중소브랜드나 똑같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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