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현대미술 몰려온다
반체제 작가의 저항으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되면서 현대미술이 서서히 일어났다. 이 시기 중국에서 활동한 파란 눈의 외국인이 있었다. 중립국 스위스의 기업가 울리 지그(77)는 엄격한 통제 국가였던 중국에서 현대미술 태동기를 목격하며 작품 수집에 나서 최대 규모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홍콩 M+(엠플러스)뮤지엄에 기부했다.
그의 소장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대규모 전시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이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 지난 10일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와 외교관계 악화 등으로 멀어졌던 중국이 동시대 미술의 매력을 담뿍 발산하는 전시를 서울에서 잇달아 연다.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을 공식 확정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다음주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명성을 떨쳤던 아트바젤 홍콩이 코로나19 이후 본격 재개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중국 작가와 작품들이 '컨벤션 효과(전당대회 등 어떤 특정 사건을 계기로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현상)'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으로 중국 미술 열풍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쩡판즈 등 다양한 중국 현대예술가들 전시가 봇물 터졌다. 그러나 미·중 관계 악화 등 정치·외교적 문제가 겹치면서 최근 중국 작가들 작품을 보기 어려웠다.
서울에서는 송은문화재단이 컬렉터 기획전으로 중국현대미술 감상의 포문을 열었다. 1946년생 푸훙부터 1995년생 찬위엔쿠까지 중국 작가 35인의 회화와 조각, 영상과 설치까지 다채롭다. 지그는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980년 외국 기업 최초로 합작법인을 설립했던 그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 현대미술사 흐름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2012년 홍콩 M+뮤지엄에 소장품 1510점을 기증했다.
주연화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이 전시는 컬렉터(지그)의 관점이 반영된 작가들의 작품들로, 중국의 정치 사회적 현실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작가들, 즉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기반으로 이를 작품의 시작점으로 삼아 비록 그것이 정치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모호함의 전략 속에서 중국 상황을 비판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겪었는데 이것이 중국 작가들 작품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초입에는 '가면' 연작으로 유명한 중국 아방가르드 대표 화가 쩡판즈(59)가 본인 화풍을 살려 표현한 지그 초상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3년 '최후의 만찬'이 1억8000만홍콩달러(약 250억원)에 낙찰돼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 중 최고 가격을 기록했었다.
전시작 중에서는 선지(宣紙)와 나무패널 위에 머리카락을 이은 찬위엔쿠(28)의 작품 'Self-Control'(2017)이 신선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선을 그으며 다잡았다는 작가는 빠진 머리카락을 연필 선 대신 이어 붙였다. 흔한 단색화로 인식했다 가까이 가서 보고 놀랐다.
한멍윈(34)은 아랍어와 불교 이미지가 뒤섞인 회화와 거울 설치를 통해서 실크로드 문화 교류와 연계된 맥락을 표현했다. 차오위(35)와 겅이니(41) 등 여성주의 작가들 작품은 강렬하다. 이처럼 1970~198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의 70~80허우(后)세대 작가들은 국내외 미술기관을 거치며 급성장하고 있다.
80허우 대표 작가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허샹위(37)는 관념적이면서도 발랄한 빛깔의 대형 회화 '79 lemons'(2017)는 물론, 지하 전시장에 쓰러진 아이웨이웨이를 닮은 남자 조형물 'Death of Marat'(2011)처럼 비판적 작품까지 보여줘 폭넓은 작품세계를 과시한다.
이 작품은 인근에 있는 중국 갤러리 탕컨템포러리아트에서 아이웨이웨이의 개인전과 함께 보면 더욱 풍성해진다. 난민 이슈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튀르키예 해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이민자 소년 알란 쿠르디의 죽음을 본인 모습으로 재현한 대형 레고 작품 'After the death of Marat'(2019)를 선보였다. 까마득한 후배 허샹위와 예술적 소통을 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아이웨이웨이는 루벤스, 고흐, 뭉크, 몬드리안의 명작은 물론 본인의 과거 작품들을 레고로 재현해냈다. 레고가 가진 픽셀화, 디지털화, 세분화, 단편화, 단절과 같은 특성을 활용해 독창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십이간지 동물들을 재해석한 'Zodiac' 연작을 조각과 레고 작품으로 선보였다. 이 작품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중 베이징 원명원(위안밍위안)에서 파괴된 분수시계의 일부를 재현한 작업에서 시작해 전쟁 중에 일어난 국제적인 약탈 문제, 문화유산 본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계 페이스갤러리도 서울지점에서 류젠화(61)의 개인전을 오는 31일 시작해 코로나19 이후 처음 중국 작가를 선보인다.
중국 경덕진(징더전)에서 도예가로 경력을 시작하고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그는 도자와 발견된 오브제, 폐기물로 만든 도자 설치작업을 통해 세계화의 맥락에서 중국문화와 유물론적 역사가 조응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중국관 대표로도 유명하다.
페이스 서울 측은 "홍콩 바젤 기간 중국 작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작가의 광주비엔날레 참여가 맞물려 전시 일정을 맞췄다"고 전했다.이 갤러리 홍콩지점은 장샤오강(86) 개인전을 열어 중국 대표 작가의 최신작도 소개한다. 페이스갤러리는 전속 작가 125명 중 중국 작가만 11명을 두고 있다.
정준모 미술칼럼니스트는 "중국 시장 개방 열풍이 강할 때 미술시장 활황을 경험한 1980년대 전후 작가들은 해외 유학파도 많고 실력과 자신감이 강하다"며 "이들은 중국 작가로서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 미술 시장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작가들도 긴장하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모두 무료. 송은은 5월 20일까지, 탕컨템포러리아트는 4월 22일까지다.
[이한나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아이 낳지 않는 이유’ 물어보니…일본 여성들의 충격적 답변 - 매일경제
- “무섭다, 살려주세요”…웃통 벗은 전두환 손자, 마약 생중계 ‘충격’ - 매일경제
- “공항 무서워 가겠나”…‘인산인해’ 인천공항서 대체 무슨 일이 - 매일경제
- “나한테 했듯이 똑같이 하라” 버럭 정유라…조민 뭐라 했길래 - 매일경제
- “이곳 땅값 많이 오르려나”...공항에 급행철도까지 생긴다니 - 매일경제
- “5억이나 떨어졌네”…‘춘래불사춘’ 오피스텔 시장, 어쩌나 - 매일경제
- “낯선 사람들이 집을 들락날락”...출동한 경찰 들어가보니 - 매일경제
-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요동치는 장세에 개미 레버리지 더 샀다 - 매일경제
- 가위에 목 찔리고도 근무한 경찰...“동료·팀장 외면 원망스럽다” - 매일경제
- 中쇼트트랙 임효준 국제빙상연맹 주간 MVP 선정 [오피셜]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