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타 셰프들]④ 정호영, 숙성의 미학으로 완성하는 우동 한 그릇

이정수 기자 2024. 9.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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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우동의 최적의 면 찾기 위해 숙성은 필수
한 그릇의 우동 위해 하루 이상 소요
“숙성은 시간만이 가능한 ‘기다림’의 미학”
정호영 카덴 오너셰프가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카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요리사 외에도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시간’이다. 같은 재료여도 조리 시간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숙성’이라고도 표현하는 이 기법은 보다 응축된 맛을 내기 위해 사용된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손에 얻는 열매가 더욱 달콤하듯이 기다림의 미학으로 탄생한 요리는 오직 시간만이 낼 수 있는 독창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힘’을 십분 활용하는 셰프가 있다. 바로 카덴의 정호영 셰프다. 누구 눈에는 간단해 보일 수 있는 우동 한 그릇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는 오랜 시간을 들인다. 먼저 그는 육수를 내기 위해 완도 다시마,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 등을 이용해 70도의 낮은 온도에서 한나절 이상 끓인다.

면발 역시 마찬가지다. 카덴의 우동면은 밀가루, 소금, 물로 반죽해 1차로 숙성시킨다. 이후 발로 밟아 탄성을 준 이후 다시 숙성기에 넣는다. 이후 어느 정도 숙성이 되면 기계에 여러 번 접어서 누른다. 이때 생기는 글루텐이 점성을 더해주며 우리가 아는 ‘쫄깃한 면발’이 탄생한다. 이 과정은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린다.

정호영 카덴 오너셰프가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카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긴 숙성 기간을 거쳐 탄생한 카덴의 우동은 먹을수록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특히 국물이 그러하다. 등 푸른 생선이 한껏 들어간 육수의 첫맛은 담백하다. 그러나 숟가락을 이어 뜨면 그 쯔유(일본식 간장) 향이 더욱 또렷해진다. 먹을수록 풍미가 겹겹이 쌓이며 여운을 길게 남긴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다 보면 체온 역시 올라가 따뜻한 느낌마저 감돈다. 국물이 담백하기에 계속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차갑게 먹는 붓카케 우동(육수를 면에 끼얹어 먹는 우동)은 일반 육수보다 좀 더 쯔유(일본식 간장) 향이 강하다. 훈연한 가쓰오부시의 향이 한입 크게 들어오며 그 시작을 알린다. 이어 갈은 무의 아릿함, 상큼한 레몬향이 한데 어우러지며 보다 상큼한 맛이 난다. 면은 삶아낸 직후 얼음장처럼 찬물로 행궈냈기 때문에 보통 면보다 단단하고 쫄깃하다. 함께 나온 튀김을 곁들여 먹으면 바삭하고 탱글해 식감 또한 재밌다.

또한 정 셰프가 자랑하는 메뉴 중 하나인 갈치 튀김도 별미다. 갈치는 살이 단단하고 맛이 고소하지만 잔가시가 많아 먹기 불편하다. 그러나 카덴의 갈치 튀김은 뼈를 하나하나 다 골라내 살 모양 그대로 튀겨낸다. 같이 나온 카레 소금을 곁들이면 부드러운 갈치 살 속에 짭짤한 카레 향이 퍼지며 간을 잡아준다. 갈치의 담백함 외에도 매콤한 꽈리고추, 구수한 표고버섯 등이 다채로운 식감을 더해주며 눈과 입 모두 즐겁게 해준다.

정 셰프는 우동 외에도 저온 조리 메뉴 개발에 열심이다. 그가 현재 개발 중인 메뉴는 로스트 비프(오븐에 구워낸 소고기 요리)다. 낮은 온도로 긴 시간 동안 익혀낸 이 메뉴는 보통 스테이크보다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다. 그는 로스트 비프를 이용한 덮밥이나 안주용 메뉴를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셰프의 손에서 무엇이 새로 만들어질지 기다리는 즐거움은 우리들의 몫이다.

정호영 카덴 오너셰프가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카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간략한 소개 부탁 드린다.

“우동 카덴의 정호영이다. 요리 경험은 올해 24년째다. 일본 오사카으로 3년 6개월간 유학을 다녀왔다. 돌이켜보면 유학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단순 요리만 배운 것이 아닌 언어, 문화, 식습관 등을 배우며 견문을 넓혔다. 한국에서는 현재 연희동에서 우동 카덴, 이자카야 카덴을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합정, 제주, 압구정, 부천 등에 우동 및 샤브샤브 업장 등이 있다.”

―카덴의 이름 뜻이 궁금하다.

“카덴(花伝·화전)은 일본에서 다니던 요리학교의 실습실 이름에서 따왔다. 실습실에서 배울 때의 마음가짐을 잃지 말자는 의미다. 또한 감명 있게 읽은 책 중에 ‘풍자화전’이라는 책도 있다.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歌舞伎)와 노(能)에 관한 내용인데, 음식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짓게 됐다.”

―카덴은 어떤 곳인가.

“우동 전문점이나 밤에는 이자카야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맛있는 요리 외에도 손님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다. 사실 좋은 재료를 비싸게 파는 것은 쉬운 일이다. 카덴은 그보단 다른 곳이고 싶다. 귀한 재료를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싶다. 가령 금태라는 생선은 단품으로 구해도 3만원 정도 하는데, 카덴은 판매가가 이와 비슷하다. 마진을 줄여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보다 알리고 싶다.”

모시조개를 활용한 우동. /우동 카덴

―우동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앞서 말한 맛있는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기에 최적인 메뉴 중 하나다. 사실 일본 유학 전만 하더라도 우동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 우동을 먹어보니 국물과 소스, 그리고 그 면발이 지닌 매력에 빠지게 됐다.”

―카덴의 우동 면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먼저 밀가루, 소금, 물 등을 반죽해 1,2차 숙성 과정을 거친다. 이후 기계에 여러 번 접어 누른다. 누르면서 생기는 글루텐이 곧 면발의 탄력을 결정한다. 이후 여러 분할로 나눠 보관한다. 면 숙성에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

―카덴의 면은 어떤 스타일인가.

“우동 면은 여러 가지 종류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가령 사누키 같은 경우 탄력이 강해 사람에 따라 질기다고 느낄 수 있다. 카덴은 보다 부드러운 면을 추구한다. 굳이 말하자면 오사카 스타일과 비슷하다. 남녀노소 편히 즐길 수 있도록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카덴의 육수는 어떠한가.

“완도 다시마, 가쓰오부시, 훈연 생선 여러 종류를 사용해 국물을 낸다. 단단하고 큰 생선을 먼저 우리고, 이어 자잘한 생선을 넣어 서로 속도를 맞춘다. 팔팔 끓이기보단 천천히 그 맛을 낼 수 있도록 70도에서 우린다. 카덴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은 육수는 두 가지로 보면 된다. 차가운 육수는 일본 전통 육수보다는 덜 달게 만들었다. 면과 튀김에 먹어도 어울리도록 단맛은 줄이고 감칠맛을 살렸다. 따뜻한 육수는 간을 삼삼하게 해 자극적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맛볼수록 그 향이 쌓이며 입안에서 은은히 퍼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호영 카덴 오너셰프가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카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카덴의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인가.

“여름에는 붓카케 우동을 추천한다. 면발의 쫄깃함과 시원한 육수가 어우러지는 메뉴다. 우동을 차갑게 먹어도 맛있다는 평을 받고 싶었다. 겨울은 한우 힘줄이 들어간 우동을 추천한다. 이 우동은 힘줄을 부드럽게 3시간 익혀 진하게 뽑힌 육수를 가다랑어포 육수와 함께 섞어 만든다. 한우 힘줄의 특이점은 다른 소에 비해 살점이 더 붙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물이 확실히 더 깊다. 쫄깃한 힘줄과 살점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또 은갈치 튀김도 자랑하는 메뉴다. 갈치는 사실 발라먹기 귀찮지 않나. 이런 점을 고려해 뼈를 세심하게 발라낸 살을 바삭하게 튀겨서 드린다. 뼈도 바삭하게 튀겨내 과자처럼 먹으면 고소하다.”

―저온 조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숙성은 사람의 힘이 아닌 자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현재 빠진 메뉴도 저온 조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바로 로스트 비프인데 부드러운 살점과 오랜 시간 익혀내면서 피워낸 육고기 특유의 향은 정말 매력적이다. 덮밥 또는 술과 함께 곁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연구 중이다.”

―우동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면?

“금방 내왔을 때 먹는 것을 추천한다. 음식은 다 때가 있다. 또 우동을 맛있게 먹으려면 그 삶는 과정도 중요하다. 가급적 커다란 냄비에 삶고 면이 다 익었으면 차가운 물에 빠르게 전분기를 털어내야 면발이 쫄깃해진다. 또 차가운 우동을 먹고 싶으면 얼음 물에 다시 한번 담그고, 따뜻한 우동은 따뜻하게 토렴해줘야 더 맛있다.”

돈까스와 일본식 카레가 담긴 우동. /우동 카덴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한결같이 꾸준한 음식을 내오고 싶다. 바쁘고 힘들면 지칠 수 있다. 하루에 500 그릇 넘는 우동을 만들지만 각 손님에게는 단 한 그릇의 우동이다. 499개 잘 만들고 1개 못 만들면 그 손님에겐 큰 실례다. 정성껏 한 그릇 한 그릇 만들어 내는 게 목표다.”

―마지막으로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분 좋게 와서 기분 좋게 갔으면 좋겠다. 기대하고 오는 발걸음, 실망시키지 않겠다. 좋은 경험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가격과 맛에도 신경 썼다. 그 고민을 한번 느끼고 가시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정호영 우동 카덴 셰프는

▲우동 카덴 現 오너 셰프 ▲이자카야 카덴 現 오너 셰프 ▲샤브 카덴 現 오너 셰프 ▲소바 카덴 現 오너 셰프 ▲한국호텔관광실용전문학교 現 특임교수 ▲츠지 조리사 전문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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