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딥페이크 대응, “특효약 있는데 놓치고 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가 프랑스 파리에서 체포됐다. 이틀 뒤인 8월26일, 파리 검찰은 두로프가 받고 있는 혐의 12가지를 공개했다. 두로프가 텔레그램 CEO로서 해당 메신저를 통해 일어나는 아동 성학대, 마약 거래, 사기 등 각종 범죄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주장이다. 나흘간 심문을 받은 두로프는 출국 금지되고 일주일에 두 번 경찰서에 출석하는 조건 아래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원)를 내고 풀려났다. 파리 검찰은 두로프를 예비 기소하고 추가 조사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을 통해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대의 얼굴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면, 딥페이크 기술로 노출된 신체와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텔레그램 채널(대화방)에만 22만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텔레그램이 사법기관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해자들의 오랜 ‘믿음’은 쉽게 깨지지 않고 있다.
메신저 앱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가능할까? 지난 2월 논문 〈텔레그램에 대한 사법적 대응-각국의 규제 시도 및 그 좌초 원인에 대한 시론〉을 쓴 조훈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9월3일 만났다.
파벨 두로프가 체포되자, 프랑스 정부가 ‘통신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통신의 자유 측면에서 본다면 텔레그램은 훌륭한 앱이다. 다만 부작용이 커졌다. 텔레그램은 처음부터 그런 범죄에 활용하기 위해 앱을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앱을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텔레그램을 규제할 수 있을까?
카카오 같은 경우 정부가 자료를 요구하면 준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외국 기업이고 서버 위치가 불분명하다. 압수수색을 하려 해도 영장에 장소를 어디로 적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법적으로 텔레그램을 규제하려다 실패한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2017년 소셜네트워크법(NetzDG)을 도입해 텔레그램을 규제하려고 했지만, 텔레그램은 스스로 소셜네트워크 제공자가 아니라 개별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리가 있다. 만약 개인 대 개인, 혹은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방까지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으면 누가 어디에서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하겠나.
최소한 한국 정부가 ‘텔레그램을 통해 심각한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으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응할 의무가 있지 않나?
텔레그램에 그 의무를 지우는 실정법을 만들어야 했다. N번방 방지법을 만들었으나 정작 텔레그램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즉 현재 한국에는 텔레그램이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없다. 텔레그램은 항상 자기들이 나라별 국내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텔레그램을 얽어맬 수 있는 법이 애초에 없는 거다.
국내법이 없다면 국제협약은?
만들어진다고 해도 강제력이 없을뿐더러,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지금 프랑스 정부가 나선 김에 당장 텔레그램을 규제하는 국제협약을 만들자고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반대할 것이다. 전쟁 중에 쓰이는 믿음직한 통신수단이니까.
국내법이나 국제협약이 없더라도 도의적인 차원에서 수사에 자발적으로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도 법원의 사례가 가장 이상적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영어 강의가 저렴한 가격에 불법 공유된 사건이었는데, 인도 델리 고등법원은 텔레그램 측에 해당 채널에 가입한 사람들의 휴대전화 번호와 IP 주소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텔레그램은 법원이 요구한 자료를 밀봉해서 제출했다. 아마 인도 정부가 상당 부분 용의자를 특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텔레그램도 움직인 게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디테일한 과정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다. 물론 텔레그램은 ‘현재까지 정부를 포함한 제3자에게 제공한 사용자 데이터는 0바이트’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인도 법원의 사례는 텔레그램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낸 유일무이한 케이스다.
최근 전 세계적 추세가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왜 텔레그램만 요지부동인가?
이때 말하는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와 사업자 간 약관이 있다. 만약 이용자가 약관을 어기면 사용자가 수익배분을 안 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텔레그램은 약관이 없다. 텔레그램이 이용자의 데이터를 외부에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귀하가 테러 용의자임을 확인하는 법원 명령을 받았을 때’다. 그러니까 딥페이크 성범죄는 텔레그램의 관심 밖인 거다.
기술적으로, 법적으로, 도의적으로도 텔레그램을 규제하기 어렵다면 왜 텔레그램 CEO는 예비 기소됐나?
‘예비 기소’라는 건 한국에는 없는 프랑스 형사소송 제도다. 확실히 기소를 할 만큼 증거가 쌓이지 않았으니 추가 조사를 하겠다는 의미다. 유죄를 인정할 확실한 증거를 더 모으지 못하면 용의자는 풀려난다. 현재 파벨 두로프가 받는 혐의는 각종 범죄를 ‘방조’했다는 것이다. 그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만약 두로프가 방조범이라면, 검찰은 이 사람이 세계 어딘가에서 텔레그램을 매개로 구체적인 범죄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애초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텔레그램은 지난 4월부터 1000명 이상 구독자를 모은 공개 채널에 광고 수익의 50%를 나눠주고 있다. 일종의 범죄수익 분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텔레그램에서 각 채널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을까? 그래서 정부와 텔레그램 사이의 핫라인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가 핫라인을 통해 “지금 우리나라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물 자꾸 늘어나는데 조치해달라”고 통보하면, 그 시점 이후로는 텔레그램이 범죄 발생 인지를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월3일 텔레그램 측은 딥페이크 성범죄물 25건을 삭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소통할 수 있는 전용 이메일 주소를 보내왔다.
물론 반길 일이지만 그 핫라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실제 개인정보가 제공될지가 관건이다. 텔레그램이 처음에만 해당 국가의 요청에 따르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그 요구를 수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단순한 파일 삭제를 넘어 실제 수사가 진척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노력해야 할 일은?
물론 텔레그램이 협조를 잘 안 해주니까 수사가 어렵고 힘들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면 현상금이라도 걸어서 채널 내 내부고발을 이끌어내야 한다. 냉정히 말해서 텔레그램은 수사를 도울 의무가 없다. 우리가 법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협조만 바라고 있을 게 아니라 정부가 텔레그램 규제법과 딥페이크 범죄 처벌법도 만들어야 할까?
그렇다. 특효약인 처방이 있는데 지금 정부는 그걸 계속 놓치고 있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법인을 내사하겠다는 등의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관심이 떨어지면 다시 딥페이크 범죄가 활개 칠 거고, 범죄자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서 ‘나만 믿고 코인 내’라고 말할 것이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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