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욕 먹을 줄 알았는데.." 50년 중식대가 여경래, 호평 울컥한 이유 (인터뷰 종합) [단독]
[OSEN=연휘선 기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가 한국과 중국 사이 반목에 상처받은 50년 경력의 중식 대가 여경래 셰프를 치유시켰다. 귀화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화교 2세대를 향한 설움을 버텨온 그가 후배 요리사와의 대결에서 아름다운 패배를 향한 호평에 감사를 표했다.
여경래 셰프는 최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 위치한 홍보각에서 OSEN과 만나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약칭 '흑백요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을 그린 서바이벌 예능이다. 지난달 17일 첫 공개된 뒤 뜨거운 호평 속에 지난 8일 12회(최종회)로 막을 내렸다. 이 가운데 여경래 셰프는 백수저 중 중식을 대표하는 셰프로 출연했다.
요리 인생 50년,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는 중식 대표 셰프인 그가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도 아닌 참가자로 출연한다는 점이 화제를 모았던 바. 심지어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와의 1대 1 대결 끝에 탈락한 반전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경래 셰프는 깔끔하게 승복하고 후배를 인정해주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이러한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반응에 대해 여경래 셰프는 "해외에서도 외신 기자들이 연락을 해오고 있다. 대만의 호텔에서도 협업을 해오자고 컬래버레이션 제안을 받기도 했다. 방송 공개되고 홍콩에 오픈하는 식당에 도움을 줄 일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여사부'라고 알아보는 경험을 했다. 원래도 그런 일이 없지 않았지만 그 빈도가 더 잦아졌다. 귀한 경험을 한 것 같다"라며 인자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잃을 게 많았던 출연에 대해 그는 "사실 후진 양성 개념이 컸다. 처음엔 제작진만 7~8명 정도가 오셔서 섭외를 요청하시더라. '이겨도 손해, 지면 더 손해'라고 생각해서 고사하려고 했다. 제가 한국 나이로 65세다"라고 웃은 뒤 "그런데 젊을 때 열정을 통해 동기부여를 만든 사람이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현역 시절 그런 에너지를 뿜어낼 열정을 발휘하고 싶었다. 음식을 만든 건 사실 10년 정도 안 했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강의, 방송에서만 만들고 이제는 애들이 못하게 한다. 제가 요리 좀 해보고 싶다고 하면 '셰프님 왜 그러시냐고 화나신 게 있냐'고 물어보면서 걱정한다. 그래도 요리하는 기술자이다 보니 그런 감각을 놓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여경래 셰프는 "솔직히 촬영 당시만 해도 졌으니까 끝났다고 생각했다. 후배한테 졌다는 데에서 창피함은 전혀 없었다. 탈락 그 순간에는 '드디어 집에 가서 잘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라며 웃었다. 이어 "당시 촬영이 밤샘 촬영이었다. 새벽까지 승부를 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고도 저희는 요리사니까 잠깐 쉬었다가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려면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요리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체력의 한계를 철저하게 느끼고 있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그는 "방송 시기랑 촬영 시기랑 차이가 있다 보니 그렇게 촬영하고 잊고 살았다. 그런데 방송이 공개되고 졌는데도 보시는 분들이 그렇게 호응을 해주실 줄 몰랐다. '세상이 변했나?' 싶었다. 과거 '중화대반점' 같은 요리 예능에 출연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때는 요리 대결에서 지면 욕 먹기 바빴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세상이 변한 것 같더라. 한국은 여전히 유교사상을 가진 나라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놀라워 했다.
더불어 여경래 셰프는 '철가방 요리사'와의 대결 과정에 대해 "도전해주는 후배들이 많았다. 제가 누구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는 마이크를 땅에 굴려봤다. 룰렛처럼 돌려서 마이크가 서는 쪽으로 지목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 멈추더라"라고 멋쩍어 한 뒤 "그래서 직접 고르려 보니 저도 철가방 시절이 생각나고, 또 얼굴은 본 적 있지만 잘 모르는 친구라는 생각에 '철가방 요리사' 그 친구를 지목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그 친구가 냅다 절을 해줬다. 깜짝 놀랐다. 나중에 승부를 이기고도 저한테 넙죽 절을 해주는데 당황해서 '나한테 인사할 게 아니라 백종원 씨, 안성재 씨 한테 인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다행히 보시는 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여경래 셰프는 "촬영이 끝나고 그 친구(철가방 요리사)가 아내와 동료와 우리 가게에 밥을 먹으러 왔다. '제자로 받아주시면 좋겠다'라고 하더라. 그렇지만 바쁜 시간이라 얼굴만 간신히 보고 깊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때가 아니라 선뜻 받지 못하고 보류했다. 그렇지만 이후에 많은 분들이 그 친구도 힘든 시절 보내고 열심히 자랐다고 알려주면서 관심을 갖게 돼서 '언제 소주 한 번 하자'고 연락했다. 막상 '흑백요리사' 공개 이후엔 서로 예약도 밀리고 너무 바빠서 얼굴을 못 보고 있다. 열기가 좀 수그러들 때 같이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저도 유튜브를 하니까 솔직 담백한 이야기도 나누고 공개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여경래 셰프는 "제가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이라 아무래도 해외에 한국 셰프들을 많이 데리고 다닌다. 'K푸드'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고 중식을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환영을 해주는 분위기"라며 '흑백요리사'의 흥행에도 함께 기뻐했다. 또한 "저는 기본이 '한중 합작'인 사람이다. 어머니가 한국 분이고, 국적은 대만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양국 관계가 좋을 때가 제일 좋다. 그런데 '흑백요리사' 공개 전까지만 해도 유튜브나 SNS에 서로 양국 사이 잘못된 '가짜뉴스'들과 그로 인한 편견들이 너무 많은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 저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다 할 줄 아니 정확한 내용을 아는데, 유튜브나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을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을 악의적으로 번역해 퍼트리는 영상들이 한국어나 중국어나 서로 존재하더라. 명백한 '가짜뉴스'다. 이런 상황엔 서로가 배울 게 전혀 없지 않겠나. 이건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래서 '흑백요리사'에서도 후배들을 위해 나름의 의미를 갖고 출연했지만 탈락했는데도 저를 응원해주시는 반응들을 보고 놀라웠다. 사실 반발 감정이 너무 커져서 한국에서 중식을 하는 화교로서는 욕만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저야 업무상 대만이나 홍콩 같은 해외를 나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러지 못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다들 귀화 시험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다. 두 번이나 봤는데도 그랬다. '1948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우승자가 누구냐'는 문제들이 나온다고 하더라. 서윤복 선수였다는 걸 지금은 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손자까지 4대째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정착한 화교로 한국인이 되지 못했다는 건 아쉽더라"라며 씁쓸함을 표했다.
끝으로 여경래 셰프는 "한국의 중식, 세계의 한식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세계중식협회에서 해외에서 미팅을 할 때마다 보면 '현지화'가 가장 큰 화두다. 그런데 한식을 현지화한 방식으로 풀어냈을 때는 오히려 여전히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짜장면도 저는 한식이라는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국에서 짜장면이 700만 그릇이 팔리는데도 그렇다. 한식도 'K푸드'에 대한 애정이 높아졌을 때 해외에서 현지식에 맞춰 조금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융통성 있는 생각, 그만큼 요리사들의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여경래 셰프, 넷플릭스 제공.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