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고수익 투자하자는 강석훈 산은 회장…뒤늦은 '테마섹' 벤치마킹?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사진=강승혁 블로터 기자)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가 없어진 이후를 대비한 투자를 굉장히 확대하고 있다. 인재가 거의 유일한 자산인 한국은 위기의식이 그 나라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가. 싱가포르는 국가투자지주사 테마섹(TEMASEK)을 통해 전세계 수많은 기업의 지분을 사들이고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면서 국가의 미래산업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도 국가 전략산업에 꼭 필요한 해외기업에 직접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정부, 국회, 산업은행, 한국투자공사, 국민연금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국형 테마섹'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재무부가 지분 100%를 가졌지만 정부로부터 자산을 넘겨받고 회사법을 적용받아 세금을 납부하는 일반 상업 투자회사다. 유연한 투자전략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부펀드나 연기금보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보인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테마섹의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비상장자산(Unlisted assets)의 비중이 52%에 달했다.

그런데 테마섹의 고위험 투자를 벤치마킹하자는 것은 세계 자산시장이 완전히 회복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다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테마섹의 2022년 3월 기준 투자 수익률은 5.8%로 전년 기록한 24.5%에 크게 못 미쳤다. 투자 수익 악화를 이유로 림밍페이(Lim Ming Pey) 테마섹 투자전략부장은 투자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말 테마섹은 파산을 맞은 가상자산거래소 FTX에 투자한 2억7500만 달러(약 3500억원)를 손절했다. 로렌스 웡(Lawrence Wong) 싱가포르 부총리는 테마섹이 금전적 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테마섹의 평판이 실추됐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테마섹은 내부 감사를 벌인 뒤 FTX 투자를 주도한 팀과 고위 경영진의 보수를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강 회장의 발언에선 이 같은 테마섹의 고위험·고수익 투자성향의 이면에 대한 맥락을 읽을 순 없었다. 강 회장은 "대표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은 자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딜소싱 능력을 활용해 한국형 테마섹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더욱이 현재 산업은행의 자산건전성을 고려하면 고위험 투자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올 1분기 말 기준 산은의 BIS비율(자기자본비율)은 13.11%로 2020년 말 대비 2.85%포인트 하락해 금융감독원의 권고치(13%)를 간신히 넘기고 있다. 주식은 위험가중치 100%로 보유를 늘릴수록 BIS비율은 더욱 하락할 수 있다.

강 회장은 당정의 도움으로 자본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산은의 비전을 달성하기에는 13%대 BIS비율로는 부족하다"며 "충분한 정책수행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산은 자체적으로 수익성을 개선해 나가는 한편 정부, 국회와 추가 출자 등 자본확충을 위한 협의를 지속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당정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는 산은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HMM과 KDB생명보험의 매각 성과가 있어야 명분이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 HMM 주가가 1000원 하락하면 산은의 BIS비율이 0.07%포인트 하락해 1조8000억원 규모의 자금 공급 여력을 감소시킨다는 게 강 회장의 설명이다. 강 회장은 HMM과 KDB생명 모두 매각 성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강 회장은 "HMM은 지난 4월 매각자문사를 선정하고 다수 전략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인수의향을 태핑하고 있다"며 "매각작업이 차질 없이 수행된다면 연내 SPA(주식매매계약) 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KDB생명의 경우 산은이 신종자본증권 차환발행분 전액을 매입하는 등 자본구조와 관련한 여러가지 조치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매각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EU 경쟁당국의 심사절차가 까다롭고 기업결합 과정이 녹록지 않지만 양대 국적항공사의 통합은 아시아나항공의 근본적인 생존과 대한민국 항공산업 재편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며 "해외 경쟁당국 설득을 위한 대한항공의 적극적인 대응을 독려하고 정부부처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조속한 심사 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에 대해 직원들의 비토여론이 여전한 것에 대해서는 정부의 국정과제를 실현해야 하는 회장의 위치를 고려해달라며 '한계론'을 언급했다. 강 회장은 "그 이슈 때문에 취임 1년간 하루도 편하게 잔 날이 없다"며 "제가 가진 한계 내에서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