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안 하는 삶의 반전… 가장 먼저 사라진 건 "사람"

퇴사했더니, 내 인간관계도 퇴사하더라

“하루 종일 핸드폰에 아무 알림이 안 뜨는 날, 처음엔 평화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무서워졌어요. 진짜로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게.”

37세 김도현(가명) 씨는 퇴사한 지 8개월째다. 서울의 중견 IT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한 회사원이었고, 누구보다 확실한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번아웃, 상사와의 갈등, 끝없는 야근. 퇴사는 당연한 선택 같았다. 하지만 퇴사 후 그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이 사라지자, 사람도 함께 사라졌다.

출근이 끊기자, 대화도 끊겼다

그는 퇴사하고 한동안은 자유를 만끽했다. 늦잠, 여행, 독서, 헬스. “이게 진짜 삶이구나 싶었죠.”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통화 목록과 메시지함이 점점 조용해졌다. “퇴사 전에는 매일 누군가와 얘기했거든요. 동료, 후배, 협업자들. 근데 퇴사하고 나니 전부 업무로 얽힌 관계였다는 걸 알았어요.”

그가 퇴사 소식을 알렸을 때는 많은 이들이 “부럽다”, “나도 그만두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그 이후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땐 ‘서로 바쁘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바쁜 게 아니라, 그냥 멀어진 거더라고요.”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감각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예전 회사의 일이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빠졌는데도 프로젝트가 잘 끝났고, 팀은 승진도 하고, 새로운 팀원이 내 자리를 대신했어요.” 그는 그걸 보고 묘한 상실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회사에서 나는 되게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니었어요. 나 하나 없어도 아무 일 없더라고요.”

이후 그는 소속감에 대한 결핍을 강하게 느꼈다. 이전에는 ‘회사 사람’이었고, 어디를 가든 ‘누구의 팀장’이었다. 퇴사 이후 그는 그저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명함도 없고, 속할 무리도 없었다.

다시 연결된 건,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그는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독서모임, 퇴사자 모임, 블로그 운영자 그룹 등. 그중 가장 마음이 맞았던 건 ‘퇴사 후 루틴 공유방’이라는 단톡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사람들이 매일 루틴을 인증하고 서로 응원해 주는 곳이었어요. 그 방이 없었으면 진짜 우울증 왔을지도 몰라요.”

그는 지금도 그 커뮤니티에 매일 출석하고, 함께 온라인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최근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퇴사 이후 인간관계 회복법을 주제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작은 유료 뉴스레터도 운영 중이다.

진짜 나를 만나는 과정엔 ‘공백기’가 필요했다

김 씨는 지금도 매달 일정한 수입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과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 덕분에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일보다 더 무서운 건 혼자라는 감정이었어요. 지금은 그걸 많이 벗어났어요. 누구 덕분이 아니라, 나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서요.”

퇴사는 끝이 아니라, 관계의 재정의였고,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회사에 있을 땐 외롭지 않았지만, 사실 그건 진짜 관계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적지만 진짜 연결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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