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도 1.5도가 바꿔놓은 것들 : 헌재 8·29 결정의 배경 [視리즈]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함의➊
헌재,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
헌법 불합치 결정 내린 이유들
2031년 후 탄소감축 목표치 없어
헌재 “미래에 책임 떠넘기는 일”
쉽게 풀어본 헌재 8·29 결정문
지구온도 1.5도 상승의 심각성
# 2024년 여름이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만큼 기후위기를 향한 관심도 늘어났겠지만 여전히 너무 어렵고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때마침 헌법재판소가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의 결정문을 내놨다. 요약하면,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에 좀 더 분명하게 대응하라는 건데, 여기엔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이 담겨 있다. 더스쿠프가 이 이야기를 쉽게 풀어봤다.
2024년을 뜨겁게 달군 여름은 추석까지 이어졌습니다. 추석 연휴(9월 14~18일) 기간, 전국 기온은 평균 28도로 평년보다 약 6도 높았습니다. 이 때문에 명절 분위기도 예년과는 좀 달랐을 겁니다.
남의 일만 같았던 '지구 온난화'의 부메랑이 이제 일상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뜨거워진 지구'를 체감할 수 있다는 말도 곳곳에서 나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변곡점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지난 8월 29일 결론이 나온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이 바로 그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과 아기기후소송단, 녹색당이 함께 제기했던 기후소송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이날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을 꼬집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2030년 이후 탄소 감축량을 정하지 않은 건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참고: 헌법 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나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합니다.]
의미 있는 결정입니다만, 아쉬운 게 있습니다. 내용이 복잡한 데다, 간단치 않은 법적ㆍ학술적 용어가 숱해서 기후소송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번 결정문의 함의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스쿠프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8ㆍ29 헌재 결정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 배경➊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 = 먼저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온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의 내용부터 살펴볼까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
이 조항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가 줄이기로 한 '탄소(온실가스) 목표치'는 2030년까지뿐입니다. 2031년 후 탄소를 얼마나 감축할지는 법 조항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헌재가 지적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결정문을 쉽게 풀어서 읽어볼까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탄소감축량을 얼마만큼으로 할 건지 정량적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탄소감축 목표치를 2030년에 한정하지 말고, 2049년까지 길게 잡으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헌재는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법에서 탄소감축 목표치를 2030년까지만 잡아놓은 탓에 우리에겐)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점진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탄소 감축을 담보할 수 있는 아무 장치도 없다." 자! 어려운 용어가 하나 더 나왔네요. 여기서 말하는 탄소중립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2050년이 기준일까요?
■ 배경➋ 탄소중립 = 탄소중립이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걸 의미합니다. 탄소 배출량과 탄소 흡수량이 '똑같아야' 가능한 목표죠. 2015년 유엔 회원국들은 그 유명한 '파리 협정'을 통해 탄소중립 시점을 2050년으로 잡았습니다.[※참고: 이 이야기는 중요한 부분이어서 다음 섹션에서 설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법은 2030년까지만 '탄소감축 목표치'를 정해놨으니, 헌재가 '헌법 불합치 결론'을 내린 겁니다. 헌재는 이를 미래세대에 책임을 떠넘긴 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2031년 이후 탄소감축 목표치가 없다면, 아마도 정부는 탄소감축의 시기를 '내년으로 또 내년으로' 미룰 겁니다. 예산도, 정책적 노력도 많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러면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2050년이 가까워질수록 정부는 필연적으로 '탄소감축량'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탄소감축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한다는 걸 시사하죠.
헌법재판소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결정문을 다시 읽어볼까요. "(탄소중립법 제8조 1항은)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정했다.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써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
자! 이제 헌재 결정문의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될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파리 협정'을 이야기해볼까요?
■ 배경➌ 파리 협정 = 파리 협정은 온실가스(탄소) 감축을 위해 국가끼리 약속한 결과물입니다. 유엔 회원국들이 모여 2015년 체결했죠. 유럽연합(EU)을 포함해 195개국이 참여했습니다. 목적은 크게 세가지인데, 지구 온도 상승 억제, 온도 상승 억제를 위한 국가별 계획 평가, 개발도상국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금 지원입니다.
여기서 '온도 상승 억제'란 문구를 살펴볼까요. 파리 협정을 통해 세계 각국은 온도 상승의 기준점을 무엇으로 잡았을까요? 답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산업화'라고 말하는 시기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겠지만, 파리 협정의 기준점은 달랐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8세기 무렵의 세계 평균 기온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리 협정에선 1850~1900년 지구 표면 평균 온도 '13.5도'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2023년 지구 평균 온도가 14.98도였으니, 파리 협정의 기준으로 따져보면 1.45도 오른 셈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온도가 0.05도에 불과하군요. 다만, 이 지점에선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파리 협정에선 왜 '온도 상승 기준'을 1.5도로 잡은 걸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 배경➍ 섭씨 1.5도 = 사실 과학자들은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ㆍ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보고서에서 "14도에서 2도 이상 오르는 걸" 우려했습니다. 마지노선을 '2도'로 잡은 셈인데요.
그러자 적도와 가깝거나 '투발루'처럼 해수면이 높지 않은 국가들이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온도상승 마지노선'을 2도로 잡으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래서 IPCC가 발간한 게 바로 '1.5도 특별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오르면 연간 어획량이 150만톤(t)이 줄어듭니다. 우리나라 2023년 한해 어업량(367만8000t)의 60%가량이 감소한다는 겁니다. 어획량은 줄지만 해수면은 높아집니다. 2100년까지 온도가 1.5도 오르면 적게는 26㎝, 많게는 77㎝까지 해수면이 상승합니다.
이는 위험한 상승폭입니다. 해양환경공단의 해수면 상승 시뮬레이터를 보면, 우리나라의 해수면이 34㎝ 상승하면 3448명이 침수 피해를 겪습니다. 해수면이 72㎝까지 올라가면, 침수 피해자가 1만3563명으로 3.9배가 됩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오르면 여름이 얼마나 더 뜨거워질지 예측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서울의 여름철 기온에 적용해 볼까요? 지구 온도가 2100년까지 지금의 13.5도보다 3도 이내로 올라갈 경우 2021~2040년 서울의 여름 평균 최고기온을 봅시다.
31도 이하인 곳은 서대문구ㆍ종로구ㆍ금천구로 3곳뿐입니다. 영등포구ㆍ서초구ㆍ강남구ㆍ송파구ㆍ강동구ㆍ동대문구ㆍ광진구ㆍ중랑구ㆍ성동구는 31.5~32.0도에 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머지 서울 지역의 여름철 평균 최고기온 역시 31.0~31.5도일 겁니다. '못 살겠다'는 말이 나왔던 2024년 여름철(6~8월) 평균 최고기온이 29.7도였다는 걸 감안하면, 미래의 서울은 '뜨거움'을 넘어설 게 분명합니다.
파리협정에서 지구온도 상승의 '제한선'을 산업화(13.5도) 이후 1.5도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네요. "IPCC의 보고서는 신뢰하는 게 상책"이냐는 겁니다. 그럼 IPCC는 어떤 단체일까요?
■배경➎ IPCC = IPCC는 앞서 설명했듯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로 국제기구입니다. 이런 IPCC에서 보고서를 발간하려면 유엔 회원국 195개국이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IPCC 보고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동의하는 현재의 기후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IPCC는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보고서를 냈습니다. 2015~2023년 인간 활동을 바탕으로 만든 6차 보고서의 핵심은 "1850~ 1900년의 평균 온도보다 미래의 평균 온도를 1.5도 이상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2도 상승보다는 1.5도 상승이 파멸적 미래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포함돼 있습니다.
IPCC는 7차 보고서를 5년 후인 2029년에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 보고서엔 우리나라를 포함한 195개국이 2030년까지 목표로 삼았던 '탄소감축량'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이 제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 보고서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헌재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탄소중립법 제8조 1항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다른 법이 없기 때문에 이 조항의 효력은 2026년 2월 28일까진 유지됩니다만, 취해야 할 조치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2031년부터 2050년까지의 탄소감축량 목표치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산업적 측면에서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또 전략 발전 구조는 어떻게 바꿔야 할지 등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겁니다.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할 국회도 할 일이 숱합니다. 무엇보다 국토교통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같은 상설위원회를 기후위기 분야에도 설립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났던 8월 29일 그날. 소송을 제기했던 이들은 "이제는 대응의 시간"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제 법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법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와 국회는 비로소 찾아온 '대응의 시간'에 어떤 일을 할까요?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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