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NA 바꾸고 있는 '히어로콘텐츠'

윤수현 기자 2022. 9. 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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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아일보에 퀄리티 저널리즘 가능성 보여줘
5기 기자들 "언론계에 히어로콘텐츠 같은 시도 이어져야"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출범시킨 '히어로콘텐츠'가 기자들의 DNA를 바꾸고 있다. 5기까지 이어진 히어로콘텐츠는 디지털 역량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동아일보에 디지털화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고, 고품질 콘텐츠를 통해 독자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동아일보에 '퀄리티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히어로콘텐츠팀은 기자·개발자·디자이너 등 십수 명이 수개월 간 모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별동대' 개념의 조직이다. 히어로콘텐츠는 지면 중심의 기사를 넘어 네러티브·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13일을 끝으로 해산한 5기 기자들을 만나 히어로콘텐츠가 조직과 개인에게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물었다. 인터뷰는 15일 동아일보 사옥에서 실시됐다. 지민구(팀장)·위은지(기획)·김예윤·이소정·이기욱 기자 등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5기 히어로콘텐츠팀 기자들. 왼쪽부터 이기욱, 김예윤, 지민구, 위은지, 이소정 기자. 사진=정철운 기자.

히어로콘텐츠가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자신감'이다. 기자가 하나의 주제를 수개월 동안 취재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일간지 기자들에겐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히어로콘텐츠는 시간적 제약 없이 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는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타사 기자는 우리를 보고 '부럽다'고 했다. 이 한마디로 히어로콘텐츠를 설명할 수 있다. 일반적인 탐사보도 부서는 데스크와 취재기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운영 방식과 성과가 바뀐다. 하지만 히어로콘텐츠는 2년 가까이 일관성 있게 운영됐다. 누가 오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지속성이 히어로콘텐츠의 가장 큰 장점이다.” 팀장으로 5기 히어로콘텐츠팀을 이끈 지민구 기자의 설명이다.

김예윤 기자는 '히어로콘텐츠 출범'을 동아일보가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김 기자는 “히어로콘텐츠를 통해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며 “연차가 쌓이면서 슬럼프가 왔는데, 히어로콘텐츠팀에 참여한 후 왜 기자가 됐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 직업적 효능감을 느끼는 구성원이 많아진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히어로콘텐츠는 동아일보의 디지털 역량을 한 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달 기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전략을 가장 잘 실천한 언론사'를 꼽는 질문에서 “동아일보”라는 응답은 1.9%가 나왔다. 이는 지난해 대비 1.0%p 증가한 수치다. 기자협회보는 “히어로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디지털 시도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프로젝트 기획을 맡은 위은지 기자는 “동아일보를 디지털 불모지로 여기는 인식이 사내외에 있었다. 변화에 가장 늦고, 디지털화에 관심 없는 조직이라는 것”이라면서 “히어로콘텐츠가 만들어진 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가 저널리즘 측면에서 좋은 디지털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심층취재 부서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각이 긍정적이기는 쉽지 않다. 심층취재 특성상 업무 속도가 느리고,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경원 SBS 기자는 2020년 12월 열린 한 포럼에서 “내부에서 탐사보도 부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일선 취재 부서는 '죽어라 일하는데 너희들은 여유롭게 일한다'는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 기자들은 히어로콘텐츠팀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언젠가 자신도 배속될 팀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모든 구성원에게 히어로콘텐츠 참여 경험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예윤 기자는 “과거 기획 기사를 계획할 때는 불만 섞인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면서 “하지만 히어로콘텐츠는 편집국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히어로콘텐츠 참여 기회가 있고, 편집국 차원에서 인원 확대를 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소정 기자는 “히어로콘텐츠를 경험한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밝혔다.

경영진·편집국의 전폭적 지원도 한몫했다. 히어로콘텐츠는 동아일보 신년사·창간 기념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히어로콘텐츠는) 디지털과의 통합을 고민하는 언론계에 저널리즘 혁신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인정을 받았다”고 자평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히어로콘텐츠의 성과를 조명하기도 했다.

▲동아미디어그룹 뉴센테니얼본부가 2020년 뉴스룸 혁신 전략 메시지를 반영해 제작한 스티커. 사진=동아미디어그룹 사보.

다양한 직군 모여 콘텐츠 제작…'통역' 버금가는 소통 과정

히어로콘텐츠팀에는 취재기자 뿐 아니라 사진·편집·그래픽 기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직군의 팀원들이 하나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위은지 기자는 팀 내 소통 과정을 '통역'이라고 표현했다.

“실무적으로 다들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한데, 쉽지만은 않다.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업무를 이해하기 위해 혼자 코딩·디자인 공부를 하기도 했다. 중간에서 적극적으로 통역을 했고, 회의도 자주 열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모인 만큼, 의견 교환을 통해 잘 조율해나갔다.” (위은지 기자)

지민구 기자는 개발자·디자이너에게 '텍스트'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지 기자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텍스트 취재 과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취재 과정에 참여시키려 노력했다. 기사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 투표권을 주고, 기사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같이 만드는 콘텐츠'라는 동기부여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전 기수가 쌓아 올린 성과는 부담이자 원동력이 됐다. 2기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환생-장기 기증' 시리즈는 관훈언론상 저널리즘 혁신 부문, 한국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상 등을 수상했다. 지민구 기자는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면서 “하지만 과거의 콘텐츠를 비교 대상에 두지는 않는다. 독자들의 시간을 끌어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이소정 기자는 “히어로콘텐츠팀에 오자마자 부담이 생기는 건 사실이지만, 곧 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히어로콘텐츠 인터랙티브 콘텐츠 갈무리

제복 공무원 조명한 '산화' 시리즈…네러티브 작법 위해 스터디도

5기 히어로콘텐츠팀은 제복 공무원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콘텐츠를 제작했다. 지민구 기자가 기획한 콘텐츠이며, 편집국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히어로콘텐츠팀은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고 허승민 소방위의 배우자를 심층 인터뷰하고, 한국·미국의 보훈 시스템을 비교해 대안을 마련했다.

기사는 네러티브 형식으로 쓰였다. 스트레이트 기사에 익숙한 일간지 기자들이 네러티브 기사를 작성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네러티브 작법에 익숙해지기 위해 스터디를 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전 기수의 콘텐츠를 네러티브 형식으로 다시 써보기도 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임현석 동아일보 기자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대학교 교수님께 원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소 4~5명의 피드백을 받고 기사가 나갔다. 사실 기자들은 자기 기사를 보여주고 검증받는 걸 두려워하는데, 이 과정을 거쳐 좋은 기사가 나온 것 같다.” (지민구 기자)

유가족을 섭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소정 기자는 “유가족 입장에선 인터뷰 중 그때의 감정과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인터뷰 섭외를 왜 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납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인터랙티브 콘텐츠

이밖에 히어로콘텐츠팀은 2건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작했다. 유품을 통해 유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소방차량 출동 과정·소방관 개인보호장비 등을 직관적으로 보여줬다. 전국 119종합상황실에 2.6초에 한 번씩 신고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2.6초마다 스마트폰 모양의 아이콘이 한 개씩 떨어지게 했다. 위은지 기자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전달력이 극대화됐는지 중점적으로 봤다. 단순히 취재 결과물을 이쁘게 포장하는 것을 넘어,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히어로콘텐츠 참여를 통해 알게 된 건 '전달'의 중요성이다. 이기욱 기자는 히어로콘텐츠 경험을 통해 취재뿐 아니라 전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기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기사를 작성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소정 기자는 “솔직히 어떻게 하면 기사가 더 잘 읽히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전달'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히어로콘텐츠팀이나 탐사보도팀은 없어져야 한다.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퀼리티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과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현재는 과도기인데, 히어로콘텐츠가 그 계기가 됐으면 한다.” (지민구 기자)

기자들은 동아일보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에 히어로콘텐츠 같은 시도가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었다. 위은지 기자는 “히어로콘텐츠의 노력이 시도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며 “언론계에서 히어로콘텐츠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나오고, 선의의 경쟁이 이뤄질 만한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져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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